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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라이프스타일

제 친구는 마약중독자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고향에 살고 있을때 참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습니다. 운동도 잘했고, 잘생긴데다가 성격도 좋아서 그 누구보다 친구들에게 큰 신망과 지지를 받던 녀석이었습니다. 제가 수도권 지역으로 이사를 오고 난 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4년전 어느날 우연찮게 메신저에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며 근황을 물었더니 그 친구는 일주일 뒤에 군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저도 입대를 얼마 앞두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 친구를 꼭 보고 싶었고, 결국 다음날 모든 일을 미루고 고향으로 그 친구를 찾아가 술을 죽도록 퍼마셨습니다.

20대 초반이었던 우리는 고기집에 앉아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인 밤을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와 그 친구는 앞으로 펼쳐질 삶의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을 더 크게 가졌었습니다. 우리는 젊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을 정도의 무모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배우로서 성공하겠다는 자기만의 확고한 꿈을 갖고 있었고,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저는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었고, 일주일 뒤 배웅 속에서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입대 뒤에 몇 번의 연락과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부대에서 활동중인 사진을 한 장 보냈던 그 친구는, 이내 갑작스럽게 소식을 끊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친구의 집에 몇 번의 연락을 해보았으나 친구의 부모님은 뚜렷한 대답 없이 녀석이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 친구가 알려주었던 부대로 직접 전화도 해보았으나, 부대에서도 반기지 않는 불쾌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더 이상 이곳에서 그 친구를 찾지 말라는 대답만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저도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훌쩍 시간이 흘러가며 어느새 제 기억은 그 친구를 서서히 잊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받은 전화였기에 반가운 마음에 근황을 물었더니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자신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학병원 병실에 입원해있었고, 몇 년의 시간동안 그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내 친구는 입조차 가누기 힘들어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나 지금 너무 아프다."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그 친구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잠들지 못하다가 이제 진통제를 맞고 잠들었다는 간호사의 말과 그 환자는 지금 절대 깨우면 안된다는 주의 섞인 경고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 불리는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CRPS는 신경계 계통의 이상 증후군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약간의 부딪힘이나 염좌만으로도 발생할 수 있으며, 이후 병이 진전될수록 죽음과도 같은 엄청난 고통을 불러오는 질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병의 원인조차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이 없고, 한 번 발병하게 되면 치료하는 방법도 불가능합니다. 사람마다 증세도 다르고, 병이 발생하면 뚜렷하게 손을 쓸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만난 그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그가 군대에서의 사고로 이 질병을 앓은지 3년이 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군대에서의 작업 중 선임병사의 실수로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고통을 호소하였으나 이를 진단해주지 않는 군병원 때문에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약조차 먹지 못하고 고통과 맞서 싸워왔다고 합니다. 친구의 부대장과 관계자는 친구의 증세를 꾀병으로 취급하여 친구를 외면하고 모욕하였으며, 초기 6개월 내에 재빠르게 손을 써야 치료에 효과를 볼 수 있음에도 제 친구를 병원조차 보내지 않고 방치하였습니다.


제 친구는 지금 옥시콘틴, 듀로제식 디트랜스, 케타민과 같은 마약을 먹고 붙이고 있습니다. 옥시콘틴은 약물과용으로 올해 초 사망한 배우 히스 레저의 사망 원인을 제공한 마약성 약물로도 유명하고, 가수 전인권씨가 마약사범으로 체포되었을때 소지하고 있던 약물이기도 합니다. 해외 드라마 로스트에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잭 셰퍼드 박사가 약사에게 소리를 내지르며 요구하는 약물이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지금 그렇게 무섭고 독한 마약을 먹고, 마약 주사를 맞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며 하루종일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국가와 군부대에서는 보상은 커녕 이에 대해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친구의 병을 방치하고 키워낸 군부대장과 관계자들은 언제 자신이 그랬냐는듯 말을 바꾸어 고개를 돌려 그 친구를 외면하였고, 군병원은 자신들의 열약한 상황만을 강조하며 친구에게 싸구려 진통제만 건네주며 고통을 이기라고 강요하였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2년여간을 그렇게 군대에서 보낸 뒤에 바깥에 나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였으나 국가는 이조차도 외면하였습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확인될 수 없는 질병이기에 보상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 보훈청에서 그 친구에게 해준 유일한 변명이었고, 억울해도 할 수 없으니 이를 받아들이라는 강요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들 직원의 서류를 조작해가며 서로 국가유공자를 만들어주었던 그 보훈청이라는 집단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 다친 청년의 꿈은 외면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 친구와 소식이 닿기 전에 강의석씨가 군대 폐지를 주장하며 국군의 날 행사때 알몸퍼포먼스를 벌였던 사건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평범하게 군대를 다녀와 2년이라는 시간동안 큰 불만없이 현역으로서 복무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저는 그 당시 강의석씨의 기사에 지독한 악플을 달았던 기억도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힘쓰고 나라를 위해 몸바쳤지만 마약없이 버틸수 없는 몸으로 보상도없이 다리를 잘라달라고 애원하는 제 친구의 현실도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누가 탱크 앞에서 강의석의 옷을 벗게 만들었고, 누가 그런 강의석을 보면서 지독한 욕설로 그를 조롱하게 만들었으며, 누가 지독한 마약 없이는 고통을 이겨낼 수 없는 벌을 제 친구에게 주신건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날 제 친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녀석이 지인들에게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기에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며 제 손을 꼭 쥐어주셨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일하시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하나뿐인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퇴직금으로 치료비를 마련하고 지금은 공사장에서 일을 하십니다. 어머니 또한 저녁 시간대에 빌딩 청소부 일을 하시면서 치료비를 보태고 있습니다.

저는 고통에 몸무림치다가 잠든 제 친구를 뒤로 한 채로 병원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보다 더 한 고통속에서 마약과 환각에 의지하고 있는 제 친구의 삶. 그리고 제 친구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국가와 군대가 제 친구에게 가하고 있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외면과 소외. 앞으로 저는 제 친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우려 합니다. 그것이 같은 꿈을 공유했던 저의 친구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사는지 모르고, 다른 이들이 정해놓은 규칙과 규범 아래에서 조금만 어긋나는 사람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하는 슬픈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사랑하는 친구가 다시금 꿈을 꿀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