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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선덕여왕, 덕만 그리고 지배자의 고뇌

사실 선덕여왕은 사극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그 사실을 중요하게 판단하는 이들에겐 비난받아야 할 요소가 곳곳 가득한 작품이다. 실체조차 불분명해 위작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역사서를 기본적 토대로 두고 있는데다가 그 내용조차 제 멋대로 자기 입맛에 맞게 비틀어 놓은 작품이고, 이야기의 논리적 구조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 시청자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40% 가까운 높은 시청률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선덕여왕에 대해 과연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일부 비난이 지속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만큼 선덕여왕의 초창기나 중반은 악평이 어색하고 틀리지 않다 싶을 정도로 여러 부분에서 허약하고 허접한 부분이 가득했다. 몇몇 흥미로운 정치적 상황에 대한 논의나 이야기가 존재했지만 드라마 속에서 사회적인 지도층을 상징하는 이들에게 결국 중요한 것은 왜곡된 사랑 놀음, 그릇된 밥그릇 싸움뿐이었고 그 와중에 자기 캐릭터로서 온전하게 매력적인 면모가 한껏 강조되는 인물은 비정상적이지만 측은하게 권력에 집착하는 미실밖에 없었다. 다그치자 울고 쫓아오자 도망가려는 덕만에게선 매력과 카리스마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고 그녀에겐 그저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표현 외에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원사이드로 쏠려버린 극적이지 못한 극의 상황에 시청자들이 거짓된 이야기와 사랑 놀음에 끄덕거리는 것 외엔 아무 것도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덕만이 공주의 신분을 되찾고 뚜렷한 자기 목표점을 잡으며 본격적으로 미실과 대적하는 카리스마를 갖추게 된 순간부터 대단히 놀랍고 영리한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은은하지만 힘을 갖춘 이야기, 그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제기, 역사에서 현재를 비춰주는 적절한 패러디를 포함.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도발적인 주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 또한 제공하고 있다. 특히 후반기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주제를 관통하고 상징한다 할 수 있는 덕만공주가 보여주는 지배자로서의 고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며 우리 모두에게도 생각할 수 있는 주제로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고 있다.

지난 39회에서 오직 백성을 위한 결정을 내리려 애쓰지만 결국 백성을 위하지 못하고 버림 받는 덕만의 모습과 백성에겐 상이 아닌 매를 내려야 한다고 말하며 지배계층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조삼모사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실의 두 극단이 충돌하는 모습은, 지금껏 방영되었던 이 드라마의 여러 장면들 중 단연 최고의 베스트 컷이었다. 이는 드라마 속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더욱 절실했고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현실 속의 대중에게 필요한 것이 진심을 갖춘 정책인지 아니면 원숭이처럼 그들을 농락하는 속임수인지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물고 있었다. 사실상 덕만과 지배자의 고뇌를 보여주면서도 그 지배자를 향해 깨어나지 못하는 대중의 낮은 의식에 대해 칼로 그들을 베는 극단적인 방법과 수단까지 가하며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몇몇 이들은 선덕여왕이 불필요한 연장의 길에 접어들며 지루한 이야기만 늘어지고 있으며 내용 또한 실종되었다고 볼 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의 이런 주장들은 명백하게 틀리고 잘못된 것이다. 만약 이 드라마가 연장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균형추 위에서 대결과 대립구도를 이어나가야만 했을 미실과 덕만공주의 싸움이 팽팽한 긴장감 위에 각별한 의미까지 담아낸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비정상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어린애 투정과 사랑 놀음 그리고 과거에 보여주었던 캐릭터들의 그릇된 밥그릇 싸움박질만 이어졌을 확률이 높다.


선덕여왕은 극이 후반부에 다다르게 된 지금에서야 제대로 된 하나의 드라마로서 또 작품으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온통 거짓만 가득한 이야기로 연명한다는 일부 비난을 사람의 진실과 시대를 표현해내는 각별한 의미의 힘으로 극복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지금의 선덕여왕은 마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87년작 마지막 황제를 연상시킨다.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에서 그 시대의 배경을 현재와 대입시키고,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 모두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견지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정말 역사적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진심 하나만으로 걸작이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덕만 아니 앞으로 왕이 될 선덕여왕은 과연 향후 어떤 고뇌와 뜻이 담긴 진심으로 현재 시청자들을 다시 매혹시킬 수 있을까? 앞으로 여왕 그리고 지배자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며 현재 시대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대입시켜 보여줄 이 드라마의 풀이와 덕만의 모습에 더 큰 기대를 담아 환호성을 보낼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