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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김제동에겐 소신을 말할 권리가 있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혹자는 자신만큼은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고, 또 정치에 관심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오만한 확신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이도 이 사회에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상 언젠가는 어떤 입장에 휩쓸려가며 결국 정치적인 색깔을 가지게 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자 운명이다. 그래서 정치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이자 자유롭게 보장된 기본권에 버금가는 중요한 인간의 삶 그 자체이자 일부로 인식된다.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결국 이 사회의 근간과 미래가 결정되고, 개인의 전체적인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독 이 대한민국 사회의 몇몇 구성원들은, 연예인들이 이런 기본권이자 삶의 기초에 가장 중요시되는 정당한 행위를 누리는 행동을 저주와 비난으로 연결시키는 행동을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의 정치적인 소신을 전혀 다른 맥락의 직업적 부분들과 연관시키며 비난하는 야비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기사의 인터넷 댓글에는 어김없이 비난, 욕설, 지역적인 편 가르기에 관한 악플을 남기는 행동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음지에 어떤 목적을 두고 모여 있는 이들이기에, 결코 양지로 올라와 떳떳한 형태의 정당한 토론은 제시하지 못하고, 문제되고 중요시 되어야 할 논점들은 지독히 흐릿하게 만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진리를 진짜 가려보자는 대화의 목적보다는, 일단 상대를 물고 빨아먹고 뱉어내자는 심정으로 덤벼드는 모기떼들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방송인 김제동은 이런 모기떼들의 가장 유효한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를 비난하기 위해 퇴물, 쓰레기라는 표현이 동원되고 종국에는 좌빨, 빨갱이라는 단어까지 쓰인다. 그런데 우스운 것이, 그는 지금껏 어떤 정치적인 입장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김제동은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자신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성향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입장을 드러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대중예술인으로서의 고뇌를 토로하며 끝내 답변을 거부한 인물이다. 하지만 모기떼들은 간접적으로 드러낸 그의 입장과 색깔을 추론해 인민재판을 벌이며, 비판하고 비난하고 인격적인 모욕까지 가하는 행동을 그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테두리 안에 그가 있지 않고, 그 입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어떤 입장인지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개인이 가진 소신과 생각과 사상을 깔아뭉개는 짓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생각과 입장이 있고 또 그것을 자유롭고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어떤 특정 대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소신 없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복제된 생각만 가지고 일괄적인 것만 내놓는다면 그게 정상적인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나치들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반복된 구호를 외치며 살아가는 시대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어떤 누군가들은 김제동을 비난하며 그를 논리가 아닌 욕 그리고 악플로만 굴복시키고 사실상 자신들이 사는 나치의 세계 안에 들어오라고 강요하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닌 그저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궁지로 몰아가며, 논리가 아닌 빨아먹자는 마인드로 덤벼드는 모기떼에 어울릴만한 저질스러운 수준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제동이라는 인물이 꼭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로 추정되기에 하는 말은 아니다. 앵앵거리며 자기 의견은 없이 악플만 남겨대는 모기떼들이 두렵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다수의 불행한 사람들의 입장을 보호해주는 일은, 마땅히 정치적인 상황을 떠나 또 좌, 우를 떠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고려해야만 하는 일이다. 인간의 소신을 막고 생각을 막고 더불어 창의력을 막으며 복종만 강요하는 살리에르와 나치사상을 가진 이들에게 김제동을 굴복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분명 이 사회의 정당한 의견을 막는 패배이자 잘못된 현실의 어떤 단면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릇된 현실이 비춰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김제동의 소신은 지켜야 할 가치와 그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방송인 김제동이 지금과 같은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 것에는 그의 능력이 부족했고 또 실망스러웠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이전이라면 최고의 웃음을 만들어내던 순간에도 부진했고, 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엄청난 재능과 재치로 좌중을 압도하던 순간에도 주춤하며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말해야 할 순간에 입을 다물고 나서야 할 순간에 침묵했던 김제동의 소심함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하지만 2009년 현재 그는 분명 다른 모습의 대범함을 보여주고 있고 말하면서 부활하고 있다.

지금 김제동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또 주위의 산적한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피력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정치적이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또 다른 방법으로 제시하며 사회와 타협하는 방송인으로서의 멋진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김제동이 다시금 과거로 아니 과거 이상의 김제동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 수 있는 이유와 근간에는 용기가 있다. 끝없이 적들이 비판하고 비난하던 부분을 극복해내며 전진하는 소신을 응원하고, 또 앞으로 지금보다 더 찬란한 미래를 써나갈 김제동의 재능을 기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