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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윤종신 논란, 문제는 저작권자의 권리다

무한도전 듀엣가요계에서 공개되었던 애프터스쿨과 정준하의 노래 영계백숙이, 리믹스 버전으로 변형되어 주요 인터넷 음원 사이트에 공개되었다. 이에 몇몇 대중들이 곡의 이용 목적이 왜곡되었다며 상업화 논란을 제기하였고, 결국 이 논란은 문제로 변형되어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어려운 이에게 기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을 리믹스해 내놓은 원작자 윤종신을 비난하는 의견이 폭주하고 있고, 이에 윤종신 또한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러한 비난의 뜻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과 더불어, 곡을 유료화로 공개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글을 내놓았다. 서로 부딪치고 있는 첨예한 대립의 문제가 중단되지 않으며 끝없이 이어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일단 법적이나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프로그램에 기부한 곡을 다시 리믹스해 음원사이트에 내놓은 윤종신의 결정은,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구설수가 될 여지를 남기는 아쉬운 결정임이 틀림없다. 영계백숙은 지난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 사실상 성공 아닌 실패의 쪽에 더 기울어진 곡이었고, 실제 악마의 후크송이라는 별명과 더불어 대중들 사이에서 얻고 있는 높은 인기도 방송의 힘으로 얻어낸 부산물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몇몇 대중들이 기부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방송의 힘으로 얻은 인기를, 살짝 손만 보며 이용하려는 윤종신의 이런 결정에 반감의 뜻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정작 핵심사항이 계속 누락되며 거론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는 윤종신이 가지고 있는 저작권자로서의 정당한 그의 권리다.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윤종신의 결정이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비난으로 이어나갈 도덕적인 논조나 주장은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영계백숙이라는 곡은 무한도전의 것이 아니라 엄연히 저작자인 윤종신의 것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든 그것은 그의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은 윤종신이 무한도전이 추진했던 뜻을 저버렸다며 비난하고 있으나, 기부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두 번째 목적에 더 가까운 것이었고, 무한도전도 엄연히 상업적인 방송이다. 유재석을 포함한 출연진들과 김태호 PD를 포함한 제작진들이 매주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유의 이면에는,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한 상업적인 계산과 염두가 존재한다. 이는 비난할 수 없는 정당한 것이기에 윤종신에게도 마땅히 함께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작곡가로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윤종신에게 정당히 보상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까. 사실상 전무했다. 저작권자로서 가요제에 가장 중요한 곡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그 수익까지 모두 기부하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출연진이나 제작진과는 달리 그가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음원과 관련한 문제에는 무한도전 제작진이 실수를 저지른 부분도 있다. 애당초 듀엣가요제는 목적을 가지고 음반을 한정적으로 발표하고, 그 음반에서 나온 수익을 어려운 이들에게 돕는다는 취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 듀엣가요제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정작 음반 이상의 몫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비중을 가져가는 인터넷 음원 공개와 수익에 관해서는 이야기나 사전 조율이 없었다. 실제 녹화가 끝나고 방송이 방영되기 직전까지, 인터넷 음원 공개에 관해서는 아직 그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제작진의 입장이 있었고, 이는 저작권자들이 참여하기 이전에 음원 공개와 관련한 부분들은 그들과 전혀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곡을 만들어낸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미리 합의되지 않은 인터넷 음원 공개가 원작자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면 충분히 화를 낼만한 일이다. 이는 마땅히 주인으로서 자신의 지분과 몫을 가진 이를 소외하고 배척한 행동으로 해석될 여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계백숙 리믹스 논란은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부분을 누락하고 있다. 이는 윤종신뿐만 아니라 YB, 노브레인, 이트라이브를 비롯한 무한도전에 곡을 기부한 저작권자들의 정당한 권리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힘으로 창조해낸 권리를 마땅히 자기 몫으로 사용할 수 없고, 도리어 그것이 비난의 근거가 된다면, 누가 이를 유쾌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선의의 목적을 가진 기부의 뜻도 좋지만, 이와 같은 상황이 저작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할 수 있는 논리와 논조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집단의 이익과 권리도 분명 우선시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이익과 권리를 무시하는 결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부디 윤종신을 비난하는 몇몇 대중들이 개인이 가진 정당한 권리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아무리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봐도, 윤종신의 결정이 아쉽지만 그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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