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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자명고의 실패가 아쉬운 이유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쓸쓸하게 종용된 SBS 월화드라마 자명고는, 올 상반기에만 해도 방송사 드라마국에서 사실상 사활을 내걸고 기획한 기대작이었다. 수십억원의 거액이 투입된 제작비부터, 드라마 방영 초기 막강한 경쟁작들을 피해가기 위한 편성의 배려까지 있었고, 각종 자사 프로그램과 예고를 통한 물량전을 기초로 둔 홍보전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이는 그만큼 방송사에서 이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증거다.

실제 자명고는 방송 전, 상상할 수 있는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대작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가 끊이지 않은 작품이었다. 대중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친숙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극적인 설화, 자명고라는 북을 실존 인물 그것도 공주로 처리한 맛깔스러운 허구의 효과, 방영 전부터 입소문을 모은 매끈한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는 이 드라마의 성공을 담보하고 확언시켜줄 요소가 될 것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자명고는 방영되는 내내 기대와는 달리 경쟁작들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한 자릿수 시청률에만 머물며 결국 조기종영의 쓴맛을 맛보고 말았다.


그렇다면 자명고는 정말 형편없는 드라마였을까. 형편없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드라마가 지녀야 할 성공의 포커스를 대중적인 재미와 눈높이에 맞춘다면 분명 실패작인 것이 맞다. 시청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명고의 가장 큰 문제는 혼란스러움에 있었다. 자명고는 사극이라는 장르에서 중요시되는 보편적인 대중들의 마인드를 뒤따르기에, 진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 파격적인 극단의 성향을 가진 작품이었다. 다 아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맛깔스럽게 재미있게 풀어내질 못했고, 실화와 판타지가 엇갈리면서 대중들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중심이 없었다.

이런 어려운 순간 필요한 요소는 스타의 파괴력이지만, 주인공들의 모습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려원의 연기는 극히 실망스러웠고, 그녀는 드라마의 20부가 넘어가도록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것 같았다. 낙랑공주 박민영은 거침없이 하이킥 시절 꺼벙한 유미의 모습보다 훨씬 좋은 연기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그 위치에서 그 역할을 해내기에는 미흡했고, 적합하지도 못했다. 들쑥날쑥 중심이 없는 이야기에 이를 잡아줄 수 있는 스타의 파괴력과 연기도 아쉬움만 제공하며 결국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숱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명고는 이렇게 보내기에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은 드라마다. 물론 진부한 출생의 비밀, 판에 박힌 삼각관계, 지루한 멜로극으로서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할 설정들이나 무리수들도 적지 않지만, 그 시대를 표현해내는 정치극으로 또 역사극으로서의 가치는 결코 여타의 사극에 뒤지지 않은 모습과 재능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드라마의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번뜩이는 장면들은, 현재 30% 내외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 고공행진을 달리는 선덕여왕보다 도리어 더 나은 부분도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덕만이 보여주는 대립은 어떤 시각에서 보면 단순한 10대들의 투닥거림이나 가끔 목적이 없어 보이는 싸움처럼 보이는 순간도 적지 않다. 이는 실제 그 시대가 가진 역사적 배경, 관계와 드라마적인 허구가 보여주는 차이와 간극 때문에 느껴지는 이질감이다. 하지만 자명고는 이런 부분에서는 허구임에도 훨씬 설득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특히 제국과 제국이 엮인 관계와 설정에서 비롯되는 목숨을 내건 싸움 그리고 그 밑배경을 두고 치열하게 전략적인 다툼을 벌이는 인물과 군상들을 비춰준 장면들은 분명 훌륭하다는 평가를 이끌어낼 정도로 괜찮았다. 특히 사랑, 자신의 제국 그리고 왕이 되고 싶은 정치적인 욕심까지 두루 폭발시킨 정경호가 연기한 호동왕자의 모습은, 드라마의 시청률만 좋았다면 분명 현 시대의 정치, 제도권과 비교되며 재평가가 가능한 캐릭터였다. 여러모로 드라마의 실패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명고의 실패는 여러 단점과 장점을 남겼고, 뼛속 깊숙이 사무칠만한 교훈도 남겼다. 또 사극이나 드라마가 어떤 방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매끄럽게 다가가야지만, 성공이라는 수확을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해 화두도 남겼다. 자명고는 실패했지만, 자명고가 남긴 이런 수확들은 분명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드라마를 아쉬운 마음으로 보내지만, 막판에 이 드라마가 보여준 훌륭한 도전과 가능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다. 부디 자명고가 갖추었던 장점들이 더 완성도를 갖춘 모습으로 다시금 시청자와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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