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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박경림, 엇나가버린 트렌드와 전략

박경림은 MBC 최초이자 최연소 연예대상 수상자였다. 당시 그녀는 여성 예능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대표주자로 손꼽혔으며, 그 인기 또한 신드롬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하고 또 거대했다. 그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연달아 성공했고, 시트콤 파트너 조인성도 그녀의 인기를 등에 업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될 수 있었다. 그 당시 박경림은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그야말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성공을 창조해내고 완성해내는 가장 검증된 흥행카드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 대단한 것은, 그녀가 공채 개그우먼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경림이 한창 활동하던 그 시기 MC나 버라이어티 진행자는, 방송국 아나운서 혹은 공채 코미디언 시험을 통과한 검증된 몇몇 이들에게만 허용되었던 높은 장벽이었다. 그렇기에 박경림은 방송을 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숱하게 많은 견제에 시달리며, 대단히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 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각지고 예쁘지 않은 얼굴과 콤플렉스를, 확고부동한 자신감으로 극복해내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간 그녀는, 이내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박경림이 막강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연예대상을 차지한 결과는 정말 혁명이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이는 그만큼 그녀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뒤따라온 정당한 보상이자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현재, 박경림은 곤경에 시달리고 있다. 유학, 결혼, 출산으로만 기억되는 몇 년의 시간은 그녀에게 전혀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의 그녀는 공중파에서 단 하나의 프로그램 자리도 확보하지 못한 변방의 MC가 되고 말았다. 최근 그녀는 절친 사이인 장나라, 이수영과 함께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을 순회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고 있지만, 전혀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맥을 찾지 못하고 엇나가는 멘트들과, 부담스러움만 가득한 여러 에피소드들은 과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여성 예능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움 일색뿐이다.

그렇다면 박경림은 왜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일까. 일단 그녀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예능계와 지금 예능계의 수준차이가 그만큼 크고 넓다는 사실이 추락의 첫 번째 포인트다. 과거 박경림은 거침없는 자기 이미지의 발현을 앞세우며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다른 예능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여성 개그우먼들도 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비호감이지만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영역을 구축해냈고, 이는 색다른 모습을 원하던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박경림이 보여주었던 독특한 개성은, 지금 시점에서는 사실상 예능인들에게 성공을 위한 보편적 필수요소로 굳어진 상태다. 노홍철, 현영, 붐, 김나영을 포함한 개성 강한 포텐을 지닌 연예인들은, 당시 박경림이 보여주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자기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박경림이 가지고 있던 그녀만의 장점이나 매력이 이제 더는 그녀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거기에 끝없이 진화하고자 애썼던 박경림의 노력과 나아가고자 추구했던 부분들도 잘못된 전략이 더해지며 뒷걸음질의 요인이 되었다.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의 퍼포먼스를 성공의 밑바탕으로 삼았던 그녀는, 유학을 다녀온 이후부터는 몇몇 인터뷰에서 밝혔듯 미국의 유명 토크쇼 사회자 오프라 윈프리를 최종적으로 추구할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가 가진 편안함과 포용력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미치기에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와 같은 스타일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들과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녀는 이후 마치 노홍철이 큐시드를 들고 유재석을 흉내내는 것과 같은 갑작스러운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고, 결국 이와 같은 상황은 대중들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황새의 날갯짓을 따라하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박경림은 아마 박미선이 그랬듯 화려한 복귀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박경림은 지금 당장은 자신이 결코 박미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할 필요가 있다. 역시 전성기를 흘려보내고 긴 시간 방황하던 박미선이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누구보다 그녀가 준비된 방송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미선은 10년 넘도록 각종 프로그램 패널부터 시트콤과 드라마 출연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음지에서 내공을 다졌고,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웅크린 맹수처럼 꾸준히 발톱을 갈아왔다. 하지만 박경림은 이와 달리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색깔과 스타일을 너무 하루아침 만에 버리고 정착하며 적응할 시간적 여유 없이 맹수가 되길 원했다. 사육사가 주는 먹이만 받아먹던 동물원 코끼리가, 마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렝게티 초원을 내달리는 사자가 되어보겠다는 과한 욕심을 부린 것이다.

박경림은 너무 서두르고 있다. 진득한 여유와 쉬어가며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에서조차 너무 빨리 달리려고 애쓰고 있다. 스케치북에서 보여준 무대나 해피투게더에서 보여준 무리수를 두었던 멘트들은 이와 궤도를 함께 하는 성급함의 증거들이라 할 수 있다. 변화의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줄여보겠다는 욕심이, 지금의 박경림이라는 예능인이 몰락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즉 지금 박경림은 어떤 목표지점을 억지로 따라가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재 흘러가고 있는 트렌드를 읽고 엇나간 자신의 실패 전략들을 다시 바로잡을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지금의 그녀는 확고부동한 자신감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해내며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나간 박경림이 아닌, 그저 오프라 윈프리를 따라하는 짝퉁의 모습에 가깝다. 부디 그녀가 엇나간 트렌드와 실패한 전략을 바로잡고, 자신이 오프라 윈프리가 아닌 박경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꼼꼼하게 자신의 모습을 담아 변화하며 과거 그랬던 것처럼 예능 무대에서 활발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야성적인 본능이다. 과거 시대를 뒤흔들었던 그녀의 재능이 아낌없이 발휘될 수 있는 그날이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