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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이경규, 유재석을 롤모델로 삼아라

김영희 PD가 출연한 이번 무릎팍도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출연 당사자가 아닌 이경규였다. 김영희 PD와의 친분으로 단발성 게스트로 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한 이경규는, 언제나 그랬듯 누구도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웃음을 연달아 창조해내며 정말 오래간만에 무릎팍도사를 예능의 원칙에 충실한 프로그램으로 격상시켰다. 그런데 내내 웃음보와 더불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어떤 한 가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게스트로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이토록 상상하기 어려운 웃음만 창조해내는 이경규가, 왜 MC로 활동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는 그토록 활약이 미비하고 저조하냐는 의구심이었다.

이번 무릎팍도사 출연자이자 의뢰인이었던 김영희 PD는, 이경규를 버라이어티의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을 갖춘 무시무시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말은 현재 시점에서는 절반만 통용될 수 있는 주장이다. 이경규는 육감대결, 붕어빵, 절친노트, 남자의 자격을 비롯한 4개의 공중파 프로그램에 메인 MC로 출연중이지만, 실상 그 중 제대로 자리 잡고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은 없으며, 프로그램 내에서 이경규의 활약도 미비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가 출연중인 몇몇 프로그램들은, 빠르면 이번 가을 개편 때 정리될 것이 유력하다는 루머마저 들려오고 있다. 게스트이자 예능인인 이경규는 여전히 훌륭한 모습으로 정상의 위치에 우뚝 서 있는 천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MC이자 진행자인 이경규는 현시점에서 궁지에 몰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경규의 이중적인 문제점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는 애당초 그가 자신의 스타일과 모습을 내던지면서 시작된 문제였다. 과거 이경규는 국민 MC였다. 90년대 후반 양심냉장고와 이경규가 간다를 진행하던 당시의 그는, 지금의 유재석과 같은 위치에 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행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나 스타일이 본래 모습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과감히 내던졌다. 진행자 이경규에게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발단들은 이 시점을 지나 위기가 되었다. 자신의 오랜 스타일을 포기한 시점부터 진행자 이경규에게 여러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경규 본인이 불편하게 느낀 거짓된 이미지를 내던진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릎팍도사에서 말했듯 강연회나 공익 프로그램에만 섭외되는 자신의 모습을 답답하게 느꼈다는 그의 말도 충분히 이해되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경규가 잊은 것이, 그 당시 본인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불편하게 느꼈을지 몰라도,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이경규를 사랑하고 존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석하면 그는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 스타일을 바꾸다가, 반대로 시청자들에게 편안함을 전달하지 못하게 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게다가 국민 MC라는 칭호를 버리고 뒤늦게 선택한 이미지 또한 진행자로서는 최악의 악수에 가까웠다. 유재석을 상징하던 스타일을 버리고 그가 새롭게 선택한 옷은 놀랍게도 호통치며 제멋대로인 박명수의 스타일이었다. 이미 90년대 초에 시도했다가, 유례없는 참패와 비난만 맛봤던 스타일을, 그는 한참 후배인 박명수가 성공시킨 기세를 몰아 그대로 자신에게 가져온 것이다.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경규는 이런 모습들이 자신이 추구하려던 예능에서의 리얼에 가깝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또 이경규가 잊은 것이, 이경규 본인은 그런 제멋대로인 스타일이 편했을지 몰라도, 그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경규의 진행자로서의 몰락은 결국 스스로의 위치를 망각해 판단한 오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가 진행자로서 또 MC로서 자신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편안함을 희생하고 시청자의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영리한 타협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국민 MC인 유재석이 이경규에게 새로운 롤모델이 될만한 충분한 동기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경규가 다시 억지스러운 모습으로 유재석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이경규는 게스트로만 특화되어 있는 제멋대로인 자신의 모습과 캐릭터를, 과거 국민 MC로 불리며 신뢰감 있던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과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파니의 등에 얼음을 끼얹으며 음흉한 미소를 터트리거나, 버럭 성질을 부리고 소리만 지르는 몇몇 이미지로 단편적인 웃음이 가능해도, 진행자로서의 장기적인 신뢰나 롱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행자 이경규에게는 신뢰감을 되찾고 새로운 변화의 디딤돌을 내딛으며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다. 김영희 PD가 만든 느낌표나 양심 냉장고와 같은 잔잔하고 공익성을 갖춘 방송으로 일밤에 컴백해, 다시 유재석과 경쟁할 수 있는 이미지와 원동력을 되찾는 것은 어떨까. 어찌되든 부디 그가 지금보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거듭나 진행자의 위치에서도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게스트로 출연해 단편적인 웃음만 주는 예능인이 아닌, 다시금 유재석, 강호동과 경쟁할 수 있는 모습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영희 PD의 말처럼 게스트의 위치에서만 썩기에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