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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친구, 돌아오지 말았어야 할 전설

2001년 당시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신드롬과 더불어 흥행신화를 달성했던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가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돌아왔다. 여타의 영화 리메이크작들과는 달리 감독 본인이 직접 드라마판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데다가, 영화의 주연인 장동건과 유오성의 빈자리를 그에 못지않은 톱스타 현빈과 김민준이 맡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작품은 공개되기 전부터 대중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야심차게 막을 올린 리메이크판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첫 회는, 이러한 시청자들의 기대심리를 깨부수며 어긋난 모습의 실망스러움만 잔뜩 남겼다.

사실 이제 겨우 첫 방송을 끝마친 드라마에 성급하게 이른 악평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드라마판 친구에는 화면이나 시나리오를 비롯한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필요성의 부재였다. 도대체 2001년도에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이 작품이 왜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브라운관으로 되돌아와야 했는지,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그 필요성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2001년 당시 개봉한 영화 친구는 참 좋은 작품이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가치관 중에 하나인 우정을 소재로 삼아 그것이 보여주는 믿음과 배신의 과정을 밑바닥까지 샅샅이 드러내고 폭로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영화가 관객 800만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작품이 재미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노스탤지어. 영화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한 시대의 특수성을 타고 대중들의 가슴을 적셨기 때문에 흥행작이 될 수 있었다. 재미? 솔직하게 말해 친구는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재미를 느낄 작품은 아니었다. 가슴으로 보고 느낀 뒤에 추억의 책장 너머에 꽂아두어야 했을 책갈피였다.

그러나 드라마판 친구는 묻어둬야 했을 그 추억을 끄집어내 깨부쉈다. 어려운 소재를 어려운 방법으로 끌고 온 것이다. 첫 장면부터가 가관이었다. 영화 속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두 친구의 갈등을 대변하며 필요악에 가까웠던 폭력과 살인이, 완전히 의미 없는 조폭들의 싸움놀음이 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감독은 어설픈 스토리의 역순배치로 영화판의 라스트이자 핵심이었던 장면을 가장 앞으로 끌어당겼으나, 이는 초반 시청자들이 극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무리한 자충수가 되었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내뱉은 ‘니가 가라 하와이’가 명대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장면이 영화 내내 강조되었던 두 사람의 엎어진 우정을 상징하는 함축적인 대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니가 가라 하와이’를 내뱉은 현빈의 대사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고, 이에 시청자들은 그 장면에 어떤 감정적인 압침을 가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미리 보지 않은 시청자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한 패러독스를 내던지고 이해를 강요한 것이다.

또한 원작을 거의 99% 가져온 감독의 화면 구성도 영화와 다른 드라마의 매력을 찾고자 했던 시청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요소가 되었다. 앞서 말한 ‘니가 가라 하와이’의 대사가 나온 극의 룸싸롱 라스트신을 비롯, 동수가 살인을 저지른 직후 냉장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 침입해 들어오는 동수 패거리들을 보고 똘마니가 냄비를 내던지는 장면들은 이미 영화 속에서 사용되었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이 장면들은 드라마에도 카메라 각도 하나 틀려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영화에는 없었던 동수의 권투시합신도, 감독의 다른 작품인 챔피언의 카메라 기법을 거의 대부분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연출자인 곽경택의 흔적만 있었을 뿐 드라마 친구의 화면으로 느껴지는 장면은 없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자신의 연출 커리어를 영화감독으로만 지내온 곽경택이, 드라마에 필요한 연출 기법에 몰이해를 보여주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영화의 극단적인 폭력신과 담배를 버리는 장면, 그리고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모여 포르노를 보는 장면도 드라마가 추구해야 할 특유의 편집 미학에 기준을 맞추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와는 달리 엄격한 심의가 가해지는 드라마 친구의 첫 회에는 화면 전체를 뒤덮는 모자이크의 우스꽝스러움을 수없이 많은 장면에서 목격해야만 했다. 브라운관 너머의 왜곡으로 느와르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도저히 전달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작품이 드라마로서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크린 아닌 브라운관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 태풍에서 조국에 배신당한 테러리스트조차 막판에 국수주의자로 만들고, 또 다른 작품 사랑에선 의미 없는 신파의 끝을 보여준 감독 곽경택이, 과연 이 극을 살려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배우의 테크닉을 말하기에는 단계가 너무 이르지만 거의 90%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현빈과 김민준은 극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드라마 봄의 왈츠와 시트콤 못말리는 결혼으로 최악의 연기자 대열에 올라섰던 극중의 다른 친구 서도영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곽경택 감독이 영화 사랑을 통해 박시연에게 부산 사투리를 쓰게 만든 경험을 가지고 있다지만, 드라마는 더욱 손이 많이 필요한 장르이기에 한층 더 냉혹한 평가와 잣대가 가해질 것이다. 결국 스토리의 구성과 배우의 면면에서도 앞으로 이 드라마의 메리트나 장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드라마 타짜는 영화 친구와 엇비슷한 관객을 끌어 모은 원작 영화 타짜를 등에 업고 여러모로 좋은 환경에서 시청률 경쟁의 출발선 위에 섰다. 그러나 영화와는 다른 축 늘어진 드라마적 스토리의 오류와 부적절한 것으로 비춰진 도박이라는 소재를 매력적으로 살려내지 못하며 결국 실패의 길을 걷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친구는 당시 타짜의 주인공이었던 김민준이 그대로 주연으로 출연중이고, 타짜처럼 장점이 되지 못하는 같은 약점과 편견을 초반부터 안고 가게 되었다. 험난하고 어려운 길 위에 올라선 것이다.

계속 전설의 책꽂이에 있을 수 있었다면, 친구는 분명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느와르의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말았어야 할 전설이 된 이 드라마는 이제 불편한 방법으로 과거의 영광과 이름값을 모두 짊어진 상태로 시청자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과연 친구가 예상되는 숱한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는 회의적이다. 돌아오지 말았어야 할 전설처럼 보이며 한없는 아쉬움만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