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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몰락하는 일밤, 정답은 이경규다

추락이다. 그것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추락이다. 일밤이 드디어 밑바닥 중에서도 바닥이라는 3%보다 더한 1.8%의 시청률을 받아들었다. 새롭게 런칭했던 프로그램들은 모두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고, 변화를 부르짖으며 개혁을 가했던 프로그램들도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고 있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 왠만한 케이블 프로그램만도 못한 상황으로 철저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정말 심각하게 일밤이라는 브랜드 자체의 존폐를 고려해야 할 지경이다. 책임 프로듀서는 경질됐고, PD는 계속 갈리고 있으며, 진행자들도 바뀌고 있다. 그야말로 최악의 카오스 상태다.

이런 일밤의 몰락은 누구나 가능했던 결과였다. 오직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PD들과 MBC 수뇌부들만 모르고 있었을 뿐, 시청자들 입장에서 결과는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대중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스타일로 방송을 이끌어갔으며, 낡고 수구적인 방식의 프로그램과 형식들을 아이디어라고 계속 끝없이 내놓았고, 또 이미 절단이 나버린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사실상 추잡한 몸부림을 지속하며 흙탕물에 기어들어가는 우를 범했다. 예능과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들을 게스트로 불러들여 이미지 세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최악 그 자체인 소녀시대를 아직까지도 프로그램 메인으로 밀어 넣는 현상 또한 몰락을 자초했던 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일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벽에 가로막힌 현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높은 벽은 사실상 대한민국 예능계를 상징하는 투톱 유재석, 강호동이다. 일밤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앞서 말한 예시들도 있지만,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문제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SBS의 일요일은 좋다나 KBS의 해피 선데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까. 그건 결코 아니다. 지금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패밀리가 떴다나 1박 2일 모두 사실 그다지 새롭지도 않고, 기발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시청자들을 폭소의 한마당으로 이끌어낼 수준으로 재미있지도 않다. 도리어 그들의 고정 시청자층도 식상함의 도돌이표만 반복한다며 불만과 비난의 의견을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그런 비난과 현실들을 슬기롭게 넘어서고 극복해내고 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유재석, 강호동이라는 빛나는 상징 때문이다. 몰락하는 일밤과 상승세의 일좋, 해선의 결정적인 차이는 결국 인물과 상징인 것이다.

일밤은 그동안 유재석, 강호동의 벽을 넘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MC 군단들을 총출동시켰다.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이혁재를 비롯한 방송연예대상 수상자들을 섭외했고, 김구라, 신정환이라는 최고로 꼽히는 2인자들까지 섭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진정 일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도리어 이름만 번지르르한 이들은 대망, 퀴즈 프린스를 연달아 말아먹으며 꺼져가는 일밤의 기세에 더욱 찬물만 끼얹었다. 그러니 일밤으로서는 마지막 승부수로 제대로 된 상징을 다시 되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결국 일밤의 상징이자 아이콘 이경규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이경규의 일밤 투입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그가 일밤을 버리고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해선의 메인 MC가 되는 결단을 내린지도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뿐이다. 게다가 이경규가 해선에서 런칭한 남자의 자격 또한 기대했던 수치의 성적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갑작스러운 이경규 카드는 도리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일밤에 더욱 불을 지피는 악수가 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과 위험을 끌어안고서라도 지금의 일밤에는 이경규가 필요하다. 그만큼 일밤이 자신들 브랜드를 유지한 상태로 방송을 지속하고 싶다면 그가 꼭 필요하다.


이경규는 1000회 넘도록 진행되었던 일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MC이자 브랜드이다. 그가 곧 일밤이고, 일밤이 곧 이경규라는 법칙이 있을 정도다. 예능인 이경규가 더는 매력적인 카드가 아닌 퇴물이라는 평가도 분분하지만, 최소한 일밤의 테두리 안의 이경규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만큼 상징이란 무시무시한 것이고, 이와 같은 상징은 지금의 기운 빠진 일밤이 꼭 가져야만 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또한 최근 이경규가 부진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그의 재능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방송국이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실제 이경규가 최근 실패를 겪은 라인업, 간다 투어와 같은 방송은 그가 재능을 발휘하기 어려워하는 장르의 리얼 버라이어티였고, 이런 스타일의 방송들은 그동안 이경규가 추구하던 방송의 형식과는 들어맞지 않았기에 그가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이경규는 여전히 토크쇼나 미션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는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최근 게스트로 출연한 상상플러스를 포함해 지난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놀러와 그리고 최근 케이블 최고 인기작 화성인 바이러스까지 이경규가 가진 재능은 아직도 스튜디오 토크형 프로그램에서 빛나고 있다. 유재석, 강호동의 리얼과 차별화되는 형식의 능력자가 필요한 일밤에게 이경규는 실력적으로도 가장 들어맞는 카드인 것이다.

초반 반짝했으나 다시 패떴의 벽에 막힌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가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형식의 리얼 버라이어티다. 즉 이경규가 곧 KBS와 해선을 떠나게 될 것을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그 순간, 일밤은 이경규를 꼭 영입해야만 한다. 그렇잖아도 내년에 월드컵을 앞두고 있고, 월드컵때마다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이경규가 간다의 리턴을 위해서도 그가 재영입되는 결정은 꼭 필요하다. 2005년도에도 X맨에 밀려 위기에 빠졌던 일밤은 이경규의 돌아온 몰래카메라와 더불어 다시 상승의 길을 걸은 바 있다. 그 때의 추억을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는 셈이다.

사실 일밤은 지금 시점에서 폐지를 결정해야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대중들은 일밤을 단순하게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식상함 그 자체의 아이콘으로 인식하고 있다. 유재석, 강호동의 벽도 분명 높지만 이제는 일밤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다. 과거 KBS 슈퍼선데이는 브랜드의 식상함이 지적되는 순간 프로그램을 폐지했고, KBS 주말 예능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임백천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이제는 일밤에게도 그런 벼랑 끝 위에 서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 그들에겐 마지막 해답을 찾기 위한 패가 필요하다. 몰락하는 일밤의 정답이 오직 이경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