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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라이프스타일

KBS는 공영방송이 아니다

난 정치를 모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를 혐오한다. 지금까지 정치를 잘 모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모르고 살고 싶다. 솔직하게 그렇다.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정치가 싫다. 정치인들도 싫고, 그런 정치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싫다. 나는 그런 이유로 지금껏 노무현이라는 사람도 싫어했다. 그의 행동, 말, 성격 모든 것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랬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전 대통령이 죽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던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슬프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싸고 기차에 올라타기 위해 역까지 가고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관련된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멍했다. 그냥 보통 죽음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모든 것을 떠안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갈등과 분노를 모두 담고 있는 죽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하질 않다가 TV를 켜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TV 속 인물들이 웃고 있었다. KBS2 TV에 등장 중인 남자들이 광대처럼 떠들며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브라운관 너머로 집어던졌다.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무능력한 소시민인 내 유일한 취미는 TV를 보는 일이다. 직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퇴근 도장을 찍고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누워서 TV를 보는 일이 내 유일한 취미다. 드라마를 보고 예능을 보고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취미다. 나는 정치보다 드라마가 좋다. 정치보다 예능이 더 좋다. 하지만 그런 나도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전 대통령이 그냥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갈등과 분노를 모두 떠안고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당일날 태평하게 웃으라고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준 방송국이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방송을 틀어준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침을 뱉어주고 싶었다. 정치를 혐오하고 경멸하고 앞으로도 평생 모르고 살고 싶었던 나도 그렇게 느꼈다.

KBS, 당신들은 공영방송이 아니다. 관계자들, 당신들은 인간도 아니다. 당신들이 왜 봉하마을에서 그렇게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야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억지로 슬픔을 느끼라고, 억지로 분노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방송국이라면 방송국 관계자들라면 어떤 것을 떠나 비틀어진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언론인으로서 양심과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도덕이 상실되고 분노만 남은 이 세상을 정의로서 바라봐야 할 공영 방송국에 그게 없었다. 기본적인 것들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을 비판한다. 이 사회의 도덕과 양심을 모르고 살라고 대중들에게 강요하는 KBS 당신들을 비판한다.



추신합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영결식이 끝나는 날까지 연예계 관련한 글을 쓰지 않습니다. 부족한 곳을 늘 잊지 않고 방문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미리 알려드립니다. 참 웃기는 짓을 하고 있다고 속으로 비웃는 분도 있으실테고,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양 거들먹댄다고 말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같은 종류의 글을 쓰고 있는 다른 연예 블로거들에게 쓸데 없는 압박을 주는 행동이 아니냐고 말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무조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정치적으로 특정 집단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떠나 그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제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결정한 일입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에게 이를 강요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서거한 당일 날에 웃으라고 버라이어티 틀어제끼는 방송국에 분노하면서, 제 자신은 예능이나 드라마를 바라보며 낄낄대고 웃으며 입으로만 추모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영결식이 끝나고 그 분께서 남기신 모든 것들, 그 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그 순간 그 때. 그래서 TV를 보고 다시 웃으며 연예계에 대해 말할 수 있을때 되돌아오겠습니다. 그 순간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