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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두 아내, 남자를 싸이코패스로 전락시키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가장 커다란 수혜를 입은 배우는 신애리 역을 맡은 김서형이었다. 그녀는 비록 드라마 속에서 지독한 악역을 연기했으나, 소리지르고 악쓰는 장면들만 가득했던 이 불륜극 안에서, 농짙은 감정신들을 능수능란하게 폭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덕분에 그녀는 막장극 논란에 시달리며 드라마가 곱지 않은 평가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재발견되었다는 격찬까지 받았다.

그러나 같은 악역을 맡았음에도 정교빈 역을 맡은 변우민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 어울리지 않는다. 비호감이다. 연기를 못한다. 거의 대부분이 악평으로만 국한되어 있었다. 극 중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신을 비롯한 사실상의 모든 장면들을 드라마가 원한 그대로 소화해낸 일등공신이 변우민이었음에도, 그는 철저하게 소외된 뒷전이었다. 그렇다면 왜 김서형은 칭찬받고, 변우민은 비판받아야만 했을까. 해답은 간단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악역이어도 김서형은 공감할 수 있는 여자였고, 변우민은 공감되지 않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 있었어도 김서형과 변우민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이런 간극과도 같은 차이가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 특히 아줌마 시청자층을 주요 시청 타켓으로 노리는 일일극과 아침드라마들은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작위적인 캐릭터들이 드라마 속에 가득하다. 특히 큰 인기를 끈 아내의 유혹에서도 이미 표현된 부분이지만, 이런 드라마 속의 남자 캐릭터는 대단히 평면적이고 단순한 바보 멍청이들이다. 간단하게 설명해 최악이거나 혹은 최고다. 결코 보편적이고 중도적인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임신한 아내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남자가 있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벼랑 끝에 몰린 여자. 그것도 남편에게 버림받고 표독해진 아줌마에게 이유 없이 호감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멋지고 잘생긴 남자가 있다. 이런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은 다 이렇다. 입체적인 부분, 인간적인 부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노력해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새로 시작된 아내의 유혹의 후속 드라마 두 아내 또한 마찬가지 길을 걷고 있다.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1%의 죄책감도 없이 아내에게 내가 지금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충격받은 아내가 유산했다는 소식에는 그나마 죄책감이 느껴지는지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되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신경질을 부린다. 왜 내 전화를 안 받는거냐며 끝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짜증을 부린다. 그런데 이런 아내에게도 남자가 있다. 그냥 잘 알고 지내는 사이. 공교롭게도 남편의 불륜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직후부터 알게 된 남자다. 그는 잘생겼다. 돈도 많다. 성격도 끝내준다. 호감가는 사건으로 엮인 사이가 아닌데도, 계속 실의에 빠진 아줌마를 조언해주는 관계를 맺는다. 당연히 그 멋진 남자는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의 돈도 쿨하게 아줌마를 위해 거절한다. 그리고 석양이 비추는 해변가로 아줌마를 데려간다. 아줌마가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 있나요. 그러자 그는 말한다. 3년간 죽도록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상처만 주고 날 떠나갔어요. 그는 여기서 쐐기를 박는다. 전 사랑을 못할 것만 같아요. 이제 앞으로의 대사는 뻔할뻔이다. 저 아줌마가 좋아요. 아줌마를 사랑해요일 것이다.

그래서 섬뜩하다. 정말 이유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미워하고 이유도 없이 움직여대는 저 남자들을 보고 있으면 강호순, 유영철을 보는 것보다 더 섬뜩한 기분이 들어 닭살이 돋는다. 물론 드라마는 극적이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따라 흘러가는 장르다. 그렇기에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해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두 아내 속 불륜녀 손태영은 어떠한가. 그녀는 이미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 눈에 피눈물나게 하고 싶지 않다며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에게 해외로 가겠다고 말한다. 그런 여자를 잡는 사람은 불륜남이고, 못된 악당으로 전락하는 사람은 남자다. 아내의 유혹 신애리가 그렇게 된 이유도 결국 정교빈의 겁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친절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듯, 결국 이런 드라마 속에서 여자는 이유에 기승전결을 갖춘데다가 이면에는 여린 심성까지 가지고 있다. 바보로 전락하는 것은 오직 남자다. 그것도 남자를 대표하지도 못하는 바보같은 싸이코패스와 싸이코패스보다 더한 멍청한 남자뿐이다.


물론 일부 드라마 속 남자 캐릭터의 모습과 여자 캐릭터의 모습을 비교해놓고 저울질하는 것이 어찌보면 대단히 부질없는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질없는 현상 자체가 하나의 팬덤을 형성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드라마를 제작하고 만드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이와 같은 현상들을 그리고 그런 캐릭터들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막장’이지만 ‘명품’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문제가 더욱 불거지는 것은 아닐까. 이젠 생각이 필요할 때다. 살인범들보다 더 무서운 싸이코패스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드라마를 왜 시청해야만 하는지 생각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