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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일밤과 소녀시대, 잘못된 동거를 시작하다

90년대 KBS 버라이어티의 왕은 단연 서세원이었다. 그는 방송국 출연자 수익 순위에서도 늘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던 인물이었고, 30% 내외의 높은 시청률로 꾸준한 사랑을 받은 서세원 쇼를 비롯, 주말 예능까지 섭렵하며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서세원이 진행하던 주말 예능 프로그램인 ‘서세원의 공포특급 돌아보지마’는 김희선, 최지우, 핑클, SES등 당대 최전성기를 누렸던 여성 스타들이 앞다퉈 출연을 자청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프로그램을 되돌아보면 단순하게 귀신의 집에 놀러가는 여자 스타들의 놀라는 모습을 그냥 두서없이 찍어놓은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즉 자극, 감동, 리얼이라는 요소가 범벅이 된데다가 만만치 않은 제작비까지 투입된 현시점의 예능과 비교해보면 수준이 떨어지는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나 통할 법한 프로그램이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2000년대를 맞이한지도 벌써 십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그런 서세원의 90년대 프로그램을 그립게 만드는 짝퉁이 등장했다. 일밤의 새로운 코너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가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대망을 단 4주만에 시원하게 말아먹은 일밤은 이제는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하다 싶은 패착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일밤의 PD들이 단체로 KBS나 SBS 교양국에서 넘어온 스파이들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앞서 말했듯 단체로 머리를 굴려 기획했다는 포맷에 도저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을만한 요소가 전무하다.

이번 공포영화제작소 또한 대망과 동급 혹은 그 이하의 포맷을 가지고 있다. 낡고, 진부하고, 반짝 계절 특수만을 노린 프로그램임이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다. 되도록 이제 겨우 첫 방영을 마친 프로그램에 비판적인 의견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눈뜨고 봐주기가 힘겨울 정도로 심각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장기적인 비전이나 계획이 전무했고, 대충 찝어넣은 카드 돌려막기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정도였다. 90년대나 통할 법한 진부한 예능에서의 고정적 공포 설정에 결합된 몰래카메라 시나리오는 마치 일밤이 아닌 저렴한 비용에 제작된 케이블 예능을 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또한 인기 아이돌인 소녀시대의 출연은 이런 실망스러운 프로그램 내부의 설정 안에 재를 끼얹는 악수가 되었다. 특색도 없어보이고 장점도 없어보이는 이 프로그램에 왜 소녀시대가 떼거지로 투입되어 있는지 시청하는 내내 전혀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에서는 마치 과거 SBS 일요일은 좋다에서 방영되었던 슈퍼주니어의 인체탐험대를 연상시켰다. 당시 일밤에 고정 출연하던 강인이 동시간대 겹치기 출연파동까지 일으키며 런칭했던 인체탐험대는, 곧 SM과 SBS의 어처구니 없는 무리수로 판명되며 한자리대의 경이적인 시청률로 종영을 맞이한바 있다. 당시 슈퍼주니어의 수십만 팬들을 철썩같이 믿었던 제작진은 되려 그들조차 끌어들이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대다수 대중들의 철저한 외면에까지 시달려야 했었다.

공포영화제작소는 그렇게 실패한 인체탐험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오마쥬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전혀 실체가 없는 아이돌 효과를 기대하며 어설픈 설정으로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어낸 것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돌 멤버들이 기계같이 예측된 행동만을 반복한다는 사실이 아주 똑같아보였다. 순수하게 방송의 퀄리티만 따지면 그나마 개그감각이 있는 몇몇 멤버를 거느린 슈퍼주니어의 인체탐험대이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보단 수준이 높아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예능 외적인 사항들이 결합된 것 같은 눈살이 찌뿌려지는 요소들도 적지 않았다. 방송국과 프로그램이 마치 소녀시대라는 그룹의 홍보를 위해 존재하는 CM방송의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았다. 그만큼 처음부터 대다수 시청자들을 잡을 의지가 전혀 없어보였다. 소녀시대에 대해서만 잡다한 설정들을 곳곳에 깔아놓고 그 캐릭터 그대로 카메라를 움직였고, 어지럽기만 했다. 거기에 촌극이나 다름없는 몇몇 상황에는 실소조차 터지지 않았다. 중간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가짜로 훌쩍거리는 효연과 단체로 어질어질대는 소녀시대의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싶을 정도였다. 마치 프로그램을 위해 소녀시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시대라는 그룹을 위해 방송국과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미련하게 거대 소속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휩쓸려가는 방송국의 처신도 분명히 문제가 되지만, 이는 냉정하게 소녀시대 소속사인 SM의 반성이 필요한 결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런 행보를 걸으면 걸을수록 소녀시대 또한 종극에는 피해자로 전락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아무 프로그램에나 그룹을 마구 무차별적으로 밀어넣고 집어넣는다고 좋은 결과가 노출될 수는 없다. 양보다 중요한 것이 질이다. 지금 소녀시대의 위치라면 충분히 그 정도 구분을 해야할 필요성도 있다. 예능감각이 전무한 소녀시대 멤버들을 실패할 것이 확실시되는 프로그램에 강제로 밀어넣어 얻게 되는 효과가 무엇이겠는가. 그건 자칫 소녀시대라는 그룹의 몰락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소녀시대에게도 독이 되는 것이다.

공포영화제작소의 눈에 훤히 보이는 실패요소는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일밤의 향후 행보를 더욱 어두컴컴한 암흑으로 밀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소녀시대 뿐만 아닌 수많은 SM 가수들은 도대체 어떤 라인을 타고 그렇게 MBC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며 엄청난 특혜까지 누리고 있는건지 아리송하다. 그들이 출연해서 잘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3사 방송사를 통틀어서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꾸준히 그것도 독점적으로 출연한다. 참 아리송할 수밖에 없다.

MBC라는 방송국이 미련해서 그러는 것인지. SM이라는 소속사가 위대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대다수 대중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왜 몰락해가는 일밤이 더욱 몰락의 길을 자초할 소녀시대와 SM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소녀시대와 일밤의 불편하고도 실패 가능성이 끝에 다다르는 끔찍한 동거가 이제 시작지점에 섰다. 여기까진 어쩔 수 없겠다. 다만 바라는 것은 다음이다. 부디 제발 이 프로그램이 SM와 MBC의 서로에게 독만 되는 불편한 동거의 마지막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