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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박쥐, 김옥빈은 김혜수가 될 수 없었다

영화 박쥐를 봤다. 영화에 대해 간략한 평가를 내린다면,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이 모두 그러하듯 대단히 많은 논란을 야기시킬만한 장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는 영화를 꽤나 만족스럽게 관람했다. 로 결론을 내리고 싶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만한 이야기와 소재를 가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박찬욱이라는 중견감독은 남들이 쉽게 담아낼 수 없는 주제를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신의 영화에 늘 가득 담아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가진 존재감과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출연진들이 자기 위치에서 꽤나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좋았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군계일학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만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김해숙이 단연 돋보였고, 주연인 송강호나 신하균도 연기파 배우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만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다만 김옥빈은 아쉬웠다. 너무나 아쉬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일까. 정말이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옥빈은 좋은 배우다. 데뷔작이었던 여고괴담4에서 그녀는 신인답지 않은 꽤 괜찮은 연기력을 선보였었다. 이어진 SBS의 단막극 하노이신부와 KBS 미니시리즈 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도 그녀는 신인답지 않은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열렬한 지지층과 매니아층까지 끌어모았을 정도로 잔잔한 열풍 또한 일으켰다. 연기력뿐만이 아니라, 맡은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매력도 갖추고 있었기에 가장 기대가 될법한 유망주로 손꼽힐만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버 더 레인보우 홍보를 위해 게스트로 출연했던 놀러와에서 치명적인 말 실수를 저지르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데이트 할인카드 발언. 솔직하게 말해 지금 돌려봐도 그 발언이 그닥 문제가 될만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정말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당시 한창 이슈가 되었던 된장녀 논란과 여성이 헤프지 않느냐는 사회적인 논쟁속에서 그녀는 대표격 희생양으로 휩쓸려간 측면이 컸다. 물론 그녀가 후속 작품인 다세포 소녀에서의 뻣뻣함과 MKMF에서의 최악의 진행능력으로 스스로 구설수를 키워낸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김옥빈으로서는 자신의 가치가 깎인 것은 분명히 억울하게 느낄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오해가 있었건 어떤 외부적인 상황이 개입되었든지 그녀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렇게 그녀는 할인카드 발언 하나 덕분에 한순간 기대주에서 밑바닥으로까지 밀려나버렸다.


그런 그녀가 영화 박쥐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추락하는 자신의 스타성을 담보로 내던진 마지막 도박인 셈이다. 만약 이 상태 이대로 흘러갔더라면 그녀는 20대 초반 나이에 된장녀를 대표하는 여자 연예인의 표본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배두나, 이영애, 임수정과 같은 당대 톱으로 손꼽히는 여배우들이 앞다투어 작업하고 싶어하는 박찬욱의 영화는, 추락하고 있던 그녀를 구원시켜줄 빛처럼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박쥐를 보고 이 영화가 그녀에게 구원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아니, 명백하게 그녀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유명 감독의 작품에서 과감하고 폭력적인 신을 소화해내며 연기톤을 바꾼다고 진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작품에 출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왜 여타의 여배우들이 이 역할을 모두 거절했는지 꼼꼼하게 따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고해도 생각이 필요했다. 그만큼 박쥐는 구석으로 내몰린 김옥빈을 구원시켜주기는커녕, 남아있는 피마저 쪽쪽 빨아먹는다는 느낌을 노골적으로 풍기는 진짜 흡혈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과연 윤진서, 강혜정, 김혜수를 비롯한 여타의 여배우들이 가슴을 노출하기 싫다는 이유로 박쥐의 출연 제의를 거절했을까. 그녀들은 노출 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들이다. 하지만 모두 박찬욱이라는 엄청난 존재감을 지닌 감독의 신작인 박쥐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왜일까. 간단하다. 그건 영화 속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쥐는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 전체 톤이 어두컴컴하고 음습하다. 스포일러가 될 부분들이 가득하기에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김옥빈이 연기한 태주의 캐릭터 또한 대단히 음습했다. 특히 이 음습함은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고 전환될수록 더 강하고 자극적인 방법으로만 계속 꾸역대며 표출되었다.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로 파트가 나뉘어진 듯한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전체적으로 영화의 판이 튀면서 너무나 괴기스럽게 변질되어 갔다. 초반에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다가 후반부에는 정말이지 너무 당혹스러워진다. 이건 단순히 가슴을 노출하고 안하고의 차원과는 핀트가 어긋나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김옥빈이 연기한 태주는 이 영화를 위한 도구이자 송강호가 연기한 상현이라는 배역을 위한 소모품이었다. 별로 매력적이지도 진취적이지도 못했으며, 읍슴하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여배우들이 단체로 배역을 거절할만한 요소를 고로 갖추고 있었다.

또 노출이라는 상황이나 정사신을 표현해내는 박찬욱만의 미학이나 에누리 또한 극히 부족해보였다. 이는 작가주의적인 시각, 대중적인 시각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던 2003년도작인 올드보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부분이기도 했다. 박찬욱은 이 작품에서 자신 특유의 아이러니를 표현해내기 위해 적극적인 끊어치기를 구사했다. 덕분에 영화가 너무 덕지덕지 잘려나갔고, 상당히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 신을 만들어낸 진심은 충분히 전달되어 왔지만, 앞 뒤가 대충 덜렁덜렁 붙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들 또한 꽤나 많았다.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과 영상미학이 극한까지 발휘되었음에도 불편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이야기의 구성과 흐름을 위한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신들. 그런 신들이 영화에 너무 많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마치 의도적인 이슈를 만들어내기 위해 포함된 것 같은 송강호의 성기 노출 신도 그랬고, 김옥빈의 젖가슴과 정사신이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부분들 또한 그렇게 다가왔다. 저기서? 왜? 라는 물음에 대중들이 명쾌하게 대답을 받기 버거워 할 장면들이 너무나 많았다.



모르겠다. 박쥐가 노이즈 마케팅 바람을 타고 흥행에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칸느에서도 수상을 할지 아니면 혹평만 받으며 수상 실적을 거두지 못할지 그것도 예측을 못하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려움을 딛고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박쥐 출연을 결정했다던 김옥빈은 이 작품으로 바라던 배우로서의 도약이나 터전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는 가슴과 뒷태를 화끈하게 노출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출은 진심으로 연기한 캐릭터의 힘에 밀려 두드러지거나 강조되지 않았다. 영화 자체의 내러티브와 스타일이 자극적인 것을 밀어낼만큼의 힘과 기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쥐는 다르다. 보고 남는 것은 결국은 뻔한 박찬욱표 주제의식과 허무한 불쾌함뿐이다. 김옥빈의 내러티브도. 스타일도. 또 그녀가 연기했다는 태주도 전혀 기억되지 않는다. 또 남지도 않는다.

정말 그녀에게 반문해보고 싶다. 정말 모두가 꺼린다는 이 영화에 그녀는 꼭 출연해야만 했었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화 박쥐는 배우 김옥빈에게 실패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