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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황정민, 너무 멋지고 완벽했다

정말 끝내준다. 완벽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황정민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많은 영화에서 팔색조 캐릭터들을 모두 완벽한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배우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녀를 사랑하는 순정남을 아주 처절한 밑바닥 방식의 근원적 혼으로 연기해냈던 그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는 입에 짙은 상흔을 지니며 말끝마다 욕을 퍼붓는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극과 극의 지점을 달리는 어떤 캐릭터를 요구하더라도 이를 관객들에게 몰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진짜 이 시대에 배우라고 불릴만한 가치를 지닌 흔치 않은 연기자 중에 한 명이다.

주로 영화와 연극에서만 활동해오던 그의 드라마 진출 소식에 큰 기대를 가졌던 이유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배우로서 완벽한 연기력과 바탕까지 지니고 있는 그가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 안에서도 색다른 캐릭터를 창조해낼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그저 바라 보다가(이하 그바보)로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황정민은 대단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완벽하고 훌륭했다.


물론 드라마가 시작 되기 전에 불안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배우로서 황정민이 검증되었더라도 그 이면에는 처음이라는 쉽지 않은 난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문소리는 영화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여배우였다. 그녀는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과 같이 자기 캐릭터가 강하게 두드러지는 작품에서 그 누구보다 환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는 드라마 진출 이후에 2연타로 쓰디쓴 악평만을 안아야 했다. 450억짜리 대작 태왕사신기에서 남자 주인공인 배용준의 이모같다는 악플과 더불어 미스캐스팅 논란에 시달렸다. 뒤이어 야심차게 도전한 주말극 내 인생의 황금기에서도 모든 면에서 부적절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악평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 문소리의 연기가 그렇게까지 악평 일색이어야 했을 정도로 나빴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여타의 배우들에 비하면 되려 탄탄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을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른 여타의 배우가 아닌 문소리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서 실감나게 장애인의 처절한 사랑을 그려낸바 있는 문소리였다. 그래서 대중들은 드라마에 출연한 그녀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황정민 또한 이번 드라마 출연 이전까지 이런 딜레마와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미 대한민국 각종 영화제 주, 조연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밥상 수상소감까지 보유하고 있는 그는 송강호와 더불어 사실상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중에 한 명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가 조금이라도 드라마 속에서 빈 틈을 보여준다거나 예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연기력을 선보인다면, 심한 악평이 뒤따를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만큼 그의 드라마 출연에는 안고 가야 할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황정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능력으로 이를 당당하게 정면 돌파해냈다. 정말 바보처럼 착하고 모든 이들의 부탁을 다 들어만주는 우체국 직원 구동백 역할을 능수능란한 모습과 자신만의 매력적인 방식으로 소화해낸 것이다. 40세의 나이. 배우로서 훌륭하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기에 그가 로코 드라마 속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소화해내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바로 연기력이었다. 위험하고 또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그는 같은 남자가 봐도 사랑스럽다고 느낄만큼 완벽했다. 자칫 찌질하고 답답할수도 있는 캐릭터에 신선하게 느껴지는 착한 매력을 불어넣었을뿐만 아니라, 드라마 전체의 내러티브를 자신의 존재감 하나로 장악해내는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첫 드라마 출연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40세 남자가 눈물 흘리는 멜로 드라마의 한 장면이 이토록 가슴 설레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첫 스타트를 끊은 드라마 그바보에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극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장점으로는 첫 회부터 승부를 걸겠다는 듯 빛보다 빠른 속도와 전개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간 속도감. 화려하진 않지만 시나리오가 가진 매력을 깔끔하게 살려낸 듯했던 연출. 독하고 비현실적인 막장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타 드라마와 비교되는 착한 매력의 주인공들이 있었다. 단점으로는 밍밍하고 밍숭맹숭한 전개. 너무 착해서 답답하게 느껴졌던 평면적인 등장인물들. 비현실적이고 인위적인데다가 너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시나리오 구성등이 손에 꼽힐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단점과 장점이 모두 두드러지는 로코물이다. 그러니 드라마의 성공과 실패 가늠여부는 오로지 앞으로 이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펼쳐나갈 주인공들의 연기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바보가 기대를 걸만한 최대의 강점이자 히든카드는 바로 황정민이다. 마치 한국판 노팅힐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이 드라마 속에서 황정민은 자신의 캐릭터와 드라마 전체의 매력까지 업그레이드 시키는 첨병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고 있다. 드라마의 성공 여부와 별개로 정말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느끼며 황정민의 명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정도다. 비록 휴 그랜트처럼 말끔하지도, 휴 그랜트처럼 젠틀한 모습은 없지만 그는 휴 그랜트보다 사랑스럽다. 그래서 진짜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황정민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황정민은 그만큼 완벽했다. 소름이 끼치도록 완벽하고 또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