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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박기웅, 한국의 L을 창조해내다

배우 박기웅을 처음 떠올렸을때 그에게서 상상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는 바로 멧돌춤이다. 그는 모 통신사 CF에서 코믹스럽게 목을 흔들며 춤을 추는 장면이 화제가 되며 스타덤에 올라섰다. 우연치않게 가져다준 이 행운은 그에게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였고, 이후 그는 동갑내기 과외하기2, 싸움의 기술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신인답지 않은 꽤나 인상적인 연기력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바 있다.

그러나 그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클럽에서 목을 흔들던 CF 스타의 이미지를 벗겨내지 못했다. 이는 CF로 스타덤에 오르거나, CF에 출연한 스타의 이미지가 고정되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부작용이자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밀리언셀러이자 최정상급 가수였던 조성모는 매실 CF에서의 닭살스러운 모습덕분에 '조매실'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 별명은 아직까지도 그의 안티들에게 유효한 공격방법으로 남아있다. 왕의 남자에서 신인답지 않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준기 또한, 미녀들 틈바구니에서 피아노를 땅땅거리며 석류를 찾는 모습으로 한순간 우스꽝스럽고 닭살스러운 이미지를 얻고 말았다. CF로 금전적인 이득을 얻었으나 가수로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는 반대로 CF가 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기웅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클럽 안에서 멧돌춤을 추던 이미지는 배우가 되어야 할 그에게서 벗겨져나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를 극복해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 고정된 CF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창조해내는 방법. 결국 가수라면 노래로 배우라면 연기로 인정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배우 박기웅은 그러질 못했다. 그랬기에 늘 CF속에서 멧돌춤을 추던 남자라는 이미지를 벗겨내지 못하고 끝없이 제자리 걸음만 반복해야 했다. 젊은 배우치고는 꽤나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호평도 종종 받았으나 멧돌춤에 필적하는 캐릭터를 맡거나 창조해내지 못했기에 늘 그 자리에만 머물러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기웅은 최근 출연중인 드라마 남자 이야기를 통해 드디어 그 이미지를 벗겨낼만한 캐릭터와 색깔을 창조해내고 있다. 한국의 다른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드라마 속 자신의 인물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남자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이야기의 주제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대변하고 보여주려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첫 장면에서 김신(박용하)이 방송국에 들어가 석궁을 날리려는 장면, 쓰레기만두 파문으로 부도를 낸 김신의 형 김욱(안내상)이 끝내 자살하려는 장면, 타인은 물론 심지어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내몰려고 기도하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채도우(김강우)의 사이코패스를 본뜬 행동은 사회에서 이미 실제로 일어났던 각종 문제점들을 뒤섞어 드라마에서 보여준 예들이라 할 수 있다. 하고자하는 주제의식이 무척 뚜렷한데다가 매력적인 시놉시스와 시나리오까지 더불어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이와 같은 장점보다 더한 치명적인 약점들 또한 존재한다. 이는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기호와 성향이다.

알다시피 막장극은 이제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트렌드가 아닌 정석이 되어버린 상태다. 드라마가 슬퍼도 힘들어도 기뻐도 결국 막장이 아니면 무조건 대중들이 외면한다는 법칙마저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그런 시각에서만 놓고보면 남자이야기는 대단히 밋밋한 드라마다. 결국 한 남자에 의해 한 남자가 몰락하고, 이 때문에 철저한 복수를 계획한다는 이야기나 그 사이에 한 여자가 끼어있다는 밑그림이 진부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여기서 반전을 노리기 위한 승부수를 내던질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무엇일까.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훌륭한 캐릭터를 창조해내 이를 극복해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 이 남자이야기라는 드라마 속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가 바로 박기웅이 맡은 '마징가 제트' 안경태라는 인물이다. 주가의 흐름과 성향을 미리 예측했다는 이유로 윗 선에 찍혀 감옥에 들어왔다는 그는, 실제 미네르바를 본뜬 듯한 배경에 괴짜스러운 행동을 드라마 속에서 연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본의 유명만화 '데스노트' L의 모습을 모티브로 삼은 것 같은 안경태의 행동은 밋밋하던 드라마와 복수극이라는 설정에 새로운 활력과 자극을 불어넣는 신선함이 되고 있다. 평범한 밑그림 자체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이 인물상을 표출해내는 박기웅의 연기력은 쉬이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훌륭하다. 이미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막무가내로 덤벼드고 시비를 거는 고등학생 역할로 전형적인 꽃미남 배우의 연기스타일과 궤적을 달리한 경험을 가진 그는, 이 드라마에서 드디어 제대로 자신을 표출해내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의자에 앉아 초점을 잃은것 같은 눈알을 굴리며 중얼중얼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고 있음에도, 어느 하나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로 훌륭한 캐릭터 소화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로서 가진 가능성에 더해진 탄탄한 기본기로, 매력적인 캐릭터에 하나의 색을 더하는 능숙한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남자이야기는 발랄한 극을 표방하는 내조의 여왕에 밀려 한 자리대 시청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전개되어간다면, 반전의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수많은 히트작들을 완성해낸 송지나 작가의 탄탄한 극본과 자신들의 몸에 맞는 캐릭터를 맡은 주.조연 배우들의 시너지는 충분한 가능성을 엿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배우 박기웅과 그가 연기하고 있는 '마징가 제트' 안경태 또한 드라마에 계속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젊은 연기자로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영역의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그의 모습과 마인드는 활력이라는 표현을 써도 아깝지 않을만한 존재감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의 L을 창조해낸 박기웅의 매력과 명품 웰메이드 드라마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남자 이야기를 계속 주목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