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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남희석, 웰컴 투 코미디!

1991년 KBS 개그맨 공채 7기는 지금도 코미디 프로그램과 예능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코미디언들이 무수히 데뷔했던 등용의 장이었다. 국민MC 유재석을 비롯 전국민적인 신드롬과 인기를 얻었던 김국진, MBC의 상징과도 같은 MC였던 김용만,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여성팬들의 지지가 높은 박수홍등이 있었으며, 이 외에도 양원경, 최승경등의 연예계에서 이름을 드높인 개그맨들이 모두 KBS 공채 개그맨 7기 출신이었다. 하지만 오직 이들만 거론되며 그쳐서는 안된다. 공채 7기를 대표하는 개그맨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SBS의 버라이어티 좋은 친구들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하였으며, 이내 최양락, 이봉원등의 전임 간판 진행자들을 밀어내고 메인 MC가 되어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빠라빠라밤 열풍의 주인공. 그는 바로 남희석이다.

남희석은 흔히 현대적 스타일의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의 창시자격 진행자로 손꼽힌다. 그가 90년대 후반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에 있었던 버라이어티 진행방법의 형식 파괴를 주도하는 MC였고,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전달해주는 전도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교체험 극과 극 열풍을 일으켰던 좋은친구들이나, 이휘재와 더블 진행자로 나섰던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만남에서의 남희석은 진행자가 가지고 있던 한계점과 스타일을 넘어서는 아주 진보적인 형태의 진행솜씨를 보여주었다.

남희석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버라이어티 진행자는 프로그램 내에서 주도적인 위치보다는 한 발자국 뒤떨어진 위치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8-90년대 일밤을 쥐었다 놨다했던 주병진이나 이경규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끝임없이 말을 이어나가고 뛰어난 진행솜씨를 보이다가도 이미 녹화되어 있는 화면을 향해 큐 사인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주로 마무리하고는 했다. 하지만 남희석은 달랐다. 출연한 게스트와의 적극적인 소통은 물론 녹화분량을 해설하는 것에 그치던 메인 진행자의 역할을 주도적인 중심으로 가져다놓았다. 유행어를 만들어냈고 끝임없이 애드립을 시도했다. 이는 역시 같은 시기에 폭팔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클래식한 형태의 대본형 개그나 재연 개그를 펼치는 것으로 인기를 끈 김국진과는 비교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독특함을 무기로 삼아 높은 인기를 누리던 남희석은, 그러나 20세기가 끝나가고 21세기에 진입하는 순간부터는 점점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가 선구자였으나 최고는 아니었기 때문에 일어난 숙명이었다. 분명 남희석은 버라이어티 진행자로서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낸 선구자였다. 하지만 최초라는 타이틀만이 있었을뿐 버라이어티 무대에서의 뚜렷한 자기만의 장점이나 지속적인 강점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무명에 가까웠으나 완벽한 진행능력을 지닌 유재석, 자기만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며 발전해나가는 이휘재, 러브버라이어티와 현장형 행사진행에 능숙한 강호동처럼 뚜렷한 자신만의 장점이 없었고 이를 만들어내지도 못한 것이다. 90년대 후반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폭팔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서서히 추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와 같이 뚜렷한 장점이 전무한 남희석의 아킬레스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에 남희석이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스스로 내려오며 방향전환을 시도한 것은 진행자로서는 확실히 옳은 선택이었다. 그는 애써 버라이어티 진행자로서의 역할을 잡으려 아둥바둥대지 않았고 스스로 이를 내던졌다. 그리고 차분한 진행자를 선호하는 교양 프로그램들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X맨이나 무한도전이 아닌 미녀들의 수다나 느낌표, 꼭 한번 만나고 싶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선택하였고, 이 프로그램들에서 차분한 진행솜씨를 뽐내며 이내 교양쪽 MC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심지어 그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방송한다는 아침용 토크쇼 프로그램까지 진출한다. 코미디 버라이어티 진행자로서의 모습을 내던지고 롱런할 수 있는. 오래갈 수 있는 에너자이저 MC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결정이었다. 남희석은 분명히 발군의 진행솜씨나 뛰어난 애드립 혹은 강호동처럼 파괴력으로 무대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진행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 그 누구보다 공개 코미디 무대 위에서 폭팔적인 열정을 발휘하던 개그맨이었다. 지금 최고의 MC라 불리는 유재석이나 강호동 또한 처참한 실패만 남겼던 그 무대 위에서 그는 최고의 개그맨이었던 것이다.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찬호파크라는 SBS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박수홍이 박찬호 역할을 맡았고 남희석이 박찬호의 팀 동료인 몬데시 역할을 맡은 야구 패러디 개그 프로그램이었다. 이 안에서 남희석은 마스터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만큼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들 웃음들을 매 분마다 창조해내며 쓸어담았다. 주인공이던 박수홍이 뒤로 밀려나고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다던 심현섭이 무쓸모하게 느껴질만큼 그는 최고중에 최고였다. 그는 이토록 개그를 창조해낼줄 알고 개그를 사랑하는 몇 안되는 진정한 개그맨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트렌드에서 밀려난다는 이유로 개그와 한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그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슬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희석이 다시 코미디의 무대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웰 컴 투 코미디라는 프로그램으로 후배 개그맨들을 이끌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호스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들려온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남희석은 개그 무대에 섰을때 그리고 개그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후배들과 있을때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진행자다. 그런 그가 진정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주무대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한 반가운 소식이다. 남희석이 진짜 자신의 장기를 보여줄 철호의 찬스를 잡은 것이다.

또한 남희석으로는 이번 웰컴 투 코미디 출연이 자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화려했던 과거 전성기를 다시 끄집어내 감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최근 예능계에는 무조건 유재석 아니면 강호동이라는 법칙이 통용되어 오랜 시간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지루하고 진부한 균형이 한순간에 깨지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심심찮게 언급하고 있다. 과거 남희석처럼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도 결국 자기 복제와 매너리즘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서히 지는 해가 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듯, 최근의 유재석과 강호동 또한 미세하지만 그런 틈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양쪽에서 주로 활동하던 남희석이 다시 코미디 무대의 주류로 돌아와 유재석 강호동과 경쟁할 수 있을만한 원동력을 만들어낸다니. 이는 정말이지 반갑고 또 반가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또한 남희석에게는 어렵더라도 다시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가치를 창조해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희석, 말 그대로 웰 컴 투 코미디다. 그가 큰 무대에서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무대에서 다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