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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라이프스타일

시인 조동범, "그럼에도 문학을 하는 이유"

흔히 문학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선입견은 문학이 어렵고 진부하다는 오해다. 사실 자극적인 것이 득세하는 시대에 문학이 조금은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문학이 지니고 있는 진정성이 더욱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에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사실 문학이 이 시대에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왜 존재해야하는지에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아마도 문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문학의 중심에서 직접 이를 창조해내는 생산자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의 현장 한복판에서 문학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문학인을 만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 중에 주목 받고 있는 시인이 한 명 있다. 평단의 주목에 값하는 그의 작품은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낯설고 암울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는데 독자들은 그의 그런 작품을 통해 낯선 충격을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파격의 극단을 향해 치닫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정교한 묘사력과 함께 기본기에 충실한 언어 감각을 보여준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지만 언어에 대해 예민하리만치 섬세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시인. 그는 바로 시인 조동범이다.

필자는 문학에 대해 그리고 시에 대한 조동범 시인의 생각을 듣고 싶은 마음에 그를 직접 찾아갔고, 어렵게 그를 만나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삶과 문학에 대한 진솔하고도 진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동범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그리운 남극」 등 5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문학동네, 2006)과 산문집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갤리온, 2008)를 펴냈다. 현재 한신대, 백석대 등에 출강중이다.


저서
조동범,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문학동네, 2006 
조동범,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갤리온, 2008


- 조동범 시인께서는 어떤 계기로 문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문학에 대해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서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고 우연한 기회에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하고 있던 것이 문학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 문학을 시작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문학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고민보다는 무조건 해야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 읽는 것이 문득 행복하다고 느꼈고, 시를 쓰는 것이 그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죠. 그런 감정을 오래도록 느끼다보니 시를 쓰고 문학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숙명처럼 느끼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2002년도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등단 이후에는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습작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겠지만 조동범 시인 역시 등단 전에 고통스런 습작기를 거쳤겠지요? 그리고 등단 전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학교를 참 오랫동안 다녔어요. 몇 곳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습니다. 학위에 대한 욕심은 아니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문학에 대한 끈을 놓게 될까봐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시를 쓰고 시인이 되고 싶은 소망이 간절했거든요. 최종심과 본심에도 너무 많이 올랐었는데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지치더군요. 어쨌든 시인이 되기 전의 삶을 되돌아보면 하나의 마음가짐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꼭 시인이 되어야겠다. 뭐 그런 마음 하나만 있었어요. 지금이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시인으로서 여러 활동도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단 하나의 목표. 시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만 바라보고, 그것만을 오랜 시간 소망했습니다. 물론 생계도 중요한 것이기에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하기도 했고 장사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시인이 된 것을 제외하고는 변변히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네요. 막상 시인이 되고 나니까 오히려 더 막막해지기도 했어요. 이런 심정은 저뿐만이 아니라 등단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것인데, 문단이라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지요. 등단을 하게 되면 금방 유명해지고 작품 발표도 하게 되고 책도 쉽게 낼 수 있을 것만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점에서 저는 비교적 행운아인 것 같고, 그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조동범 시인의 시집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시집을 읽기도 전에 놀라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시집의 내용이 대체적으로 비극적 정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 시집 제목이 워낙에 충격적이잖아요. (웃음)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그 제목 때문에 제가 쓴 시에 관심을 가지는 분도 계시더군요. 사실 처음에 제가 정한 시집의 제목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그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 망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출판사의 의견에 따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시는 묘사를 통해 도시의 비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음이 빈번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시적 화자의 시선 역시 언제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에서 따뜻한 정서적 교감을 찾고자 했던 분들은 제 시를 읽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 시는 지나친 파격이나 환상은 없으니 읽기에 거북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분들도 있어요.


- 시인이 아닌 일반인 조동범은 어떤 사람입니까.

시인 조동범의 모습도 저이고 일반인으로서의 조동범 역시 저겠죠? 그런데 문제는 제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비극성인 것 같아요. 시에 드러난 비극성을 통해 조동범이라는 사람을 상상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진지하고 삶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뭐 그런 무거운 사람으로 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실제의 저를 만나고는 깜짝 놀라곤 해요. 사실 저는 매우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방송작가를 하고 있는 선배 한 분은 저를 볼 때마다 “사람은 밝은데 시는 어둡단 말이야.”라며 의아해하곤 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사람은 방송용인데 시는 방송용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제가 저의 작품에 죽음과 같이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을 즐기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실제 생활은 쾌활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을 좋아해요. 결코 무겁지 않죠.



"문학은 결코 유행이 아니다."


- 조동범 시인은 최근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시인 중 한 명인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으로서 최근 문학계와 시의 경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대표적이라는 말도 쑥스러운데, 젊은 시인이라는 말은 민망스럽기까지 하네요. (웃음) 2005년도에 새로운 시인들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저는 그러한 논쟁이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한 논쟁으로 인해 우리 문학이 더욱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젊은 시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파격적인 작품과 이미지에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유행도 아닌데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목소리이지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저는 파격적이고 환상적인 시나 이미지의 사용에 능한 시인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행처럼 번져서 너나 할 것 없이 따라 하는 것은 분명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파격적인 최근 시의 어떤 경향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80년대나 90년대,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지금과 같은 파격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모두 같은 맥락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최근 시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보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의 맹신에 가까운 지지가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 학교도 여러 곳을 다녔고 오랜 습작기를 거치셨습니다. 그렇다면 조동범 시인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친 시인도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전환기 마다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만난 그 분들로 인해 저는 저의 문학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은인들이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85년도에 故기형도 선배를 만났습니다. 기형도 선배는 제가 만난 최초의 시인이었습니다. 선배와 저는 같은 동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동인에 들어가는 시기에 선배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면서 동인을 나오게 되었어요. 동인 후배로서 마지막으로 기형도 선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죠. 행운이었습니다. 기형도 선배를 비롯한 동인 선배들에게 처음으로 시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학(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는 故오규원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오규원 선생님의 시창작 강의는 정말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가르침 아래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으며 저 자신을 다듬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셨죠. 두 번째 대학(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와서는 황지우 선생님(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결혼식 주례까지 서주셨던 최두석 선생님(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을 만나 뵐 수 있었죠. 그 분들은 삶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고 인생의 한 부분에 시를 담고 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죠. 대학원(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만난 이승하 선생님(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을 통해서는 시인이 가져야 할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죠. 물론 누구에게나 좋은 스승이 있겠지만, 저는 제 스스로가 운이 너무나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한두 분 만나기도 힘든 훌륭한 스승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조동범 시인을 만나고 그와 이야기하며 가장 흥분되었던 시간은 故기형도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죽음마저 신화가 되어버린 전설적인 시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 故기형도 시인은 시인으로서, 선배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 기억 속의 기형도 선배는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인연입니다만 제가 기억하고 있는 기형도 시인은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었죠. 얼마 전에 선배의 20주기 추모제에 갔었는데, 20년도 넘은 선배와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르더군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85년도 겨울이었어요. 안양에 전람회라는 커피숍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희 동인이 시화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10년 정도 연상인 동인 선배들의 시화전에 저도 운이 좋아 작품을 하나 걸게 되었죠. 그때 기형도 선배를 처음 만났습니다. 선배는 제게 “시를 함께 쓰고 읽어줄 선배가 있다는 것”에 대한 행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군요. 80년대식 촌스런 시화전과 어두운 커피숍 그리고 기형도 선배의 모습이 말입니다. 또 하나 인상 깊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노래를 부르던 기형도 선배의 모습이에요. 안양에 동인 선배가 카페 개업식을 했는데 기념이라며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죠. 그때 <명태>를 불렀는데 정말 너무나 노래를 잘 부르더군요. 제 기억 속의 기형도 선배는 그런 사람입니다. 비범한 시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평범했고 따뜻하기도 했던 그런 선배.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장면이 어제처럼 생생하네요.



"문학은 결코 편견에 휩싸여있지 않다."


-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에 대하여 문학을 삶으로 택해 살아가는 시인의 입장에서, 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과거에 비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들이 순수문학의 범주에서 다뤄지고 있거든요. 결국 대중문학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다루고 있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똑같이 사랑을 주제로 쓴 작품일지라도 어떤 작품은 문학적으로 인정받는데 반해 어떤 작품은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하니까요. 결국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것을 쓰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중문학은 문학이 가져야 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망각하고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며 소녀취향인 것들일 경우가 많아요. 어떤 분들은 그런 것들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도를 언급하며 면죄부를 주려고 하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물론 과거에는 대중문학의 범주였다가 문학의 중심부로 진입한 사례도 있습니다. 장르소설 중에 그런 경우가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그런 경우라도 문학적인 완결성이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 최근에 독특한 소재를 다룬 산문집을 발표했다고 들었습니다. 자동차와 속도, 길에 대한 것을 다룬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가 바로 그것인데, 왜 자동차와 속도인가요.

절친한 친구가 산문집을 한 번 내보라고 자꾸 권유하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였어요.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글쓰기에 적합한 특별한 취미도 없었고요.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자동차였어요. 자동차 전문지에 시승기도 쓰고 그러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자동차에 대한 것은 산문집으로 쓰기에 그다지 적합한 것이 아니었어요. 자동차 시승기 같은 글로 산문집을 묶을 수는 없잖아요. 아무튼 그래서 자동차라는 소재를 읽을 만한 산문으로 구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글을 쓰는 것보다 자동차를 산문의 영역으로 불러오는게 더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자동차 산문집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두고 흔히 욕망의 이미지로 보잖아요. 사실 그런 것에 대한 부담도 너무 컸습니다. 자동차 이야기를 하는 저를 욕망 덩어리로 보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도 되었죠. 하지만 자동차는 우리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것은 차가운 쇠붙이에 불과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해 정서적인 교감을 느끼니까요. 혹자는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하면 속도광 폭주 이런 것들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저는 순정 상태의 차를 좋아하는 순정주의자이자 지킬 건 다 지키는 운전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속도를 즐기긴 합니다만 그것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요. 다른 자동차가 없을 때 달리고 일명 칼질이라고 하지요? 무리한 끼어들기를 하지 말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 시인으로서는 흔치 않게 개인 블로그를 운영중이신데 특별한 목적이 있으신지요.

사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는지라 그다지 블로그에 신경을 쓰고 있지는 못합니다. 저는 블로그를 인터넷 공간에서 나를 제대로 표현해내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만든 이유 중의 하나도 그러한 공간에서의 소통이었고요. 제가 시인으로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연회나 지면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 고작이지요. 굳이 독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운영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방문객이 그렇게 많질 않아요. 이참에 다음으로 옮겨볼까요? (웃음) 앞으로는 블로그는 우리 문화와 삶의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와 문학도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학이 살아 숨 쉬어야 하는 이유."


-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계신데 시인으로서의 활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저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열정 가득한 학생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 다닐 때에는 언제나 책과 함께 하는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의 글은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지를 못했지요. 예전에 장사를 했을 때 많을 때는 하루에 17시간씩 서서 일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 정말 미치도록 글을 읽고 싶었고 시를 쓰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죠.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는 요즘의 생활이 저에게는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 문학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시인으로서 조언을 좀 해주시죠.

저는 학생들에게 ‘오래도록 소망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오래도록 소망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문학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재능도 문제가 되겠지만 어쩌면 누가 더욱 간절히 소망하느냐가 더 절실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시를 투고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일 년에 한번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것이 전부였고 본격적으로 투고를 했던 것은 20대 중반부터였어요. 그때 문예지에 처음으로 투고한 것이 문학동네라는 계간지였는데 덜컥 최종심에 올랐습니다. 당선은 아니었지만 정말 기뻤습니다. 곧 될 것만 같았고요. 하지만 그 이후로 무려 13번이나 최종심과 본심만 오르락내리락하고 정작 당선은 되지 못했어요. 심지어는 등단 전 해에는 신춘문예에 두 명이 남은 최종심까지 갔던 적이 있었는데 ‘작품은 좋은데 내용이 비극적이고 우울해서 당선작으로 밀지 못했다’라는 요지의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운이 없을 수 있나 싶더군요. 그때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이 바로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이었거든요. 문학도 생활도 너무 힘들고 지쳐서 이민을 결심하기까지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2001년도에는 실제로 호주로 이민답사 여행까지 갔다 왔어요. 그때는 정말 모두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들게 등단이 된 만큼 습작기에 있는 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누군가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어떤 위로도 그 고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저 묵묵히, 오래도록 소망하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여러분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후회와 미련은 남지 않을 것입니다.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문학은 특히나 힘든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문학은 언제나 힘들었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힘든 상황일 가능성이 높죠. 그럼에도 저는 문학을 해 나갈 것입니다. 저에게 문학이란 공기와 같습니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 공기죠. 문학이 아무리 위기를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저의 숙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문학은, 숙명입니다.


긴 시간동안 이어진 인터뷰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문학이라는 존재가 희미하게나마 지푸라기가 되어 손에 잡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멀고 길게만 느껴졌던 문학이 실상 사람들 가슴 속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동범 시인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진정 문학을 아는 사람이 느끼는 문학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숨쉬기 위해 필요한 공기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의 모습처럼 말이다.


저수지  /  조동범
여자가 떠오른 것은 저물녘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여자가 떠오른 순간 파문이 일었고, 파문을 따라 해넘이의 붉은 빛이 넘실댔다. 
여자가 떠오른 것은 바람이 잔잔해진 적막 속에서였다. 다시 바람이 불었고, 바람을 따라 산그림자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여자의 등은 단호하게 하늘을 향하고 있다. 
등을 돌린 채, 저수지의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바닥의, 깊은 어둠을 굽어보고 있다. 어둠을 훑는 여자의 시선을 따라 저물녘의 마지막 순간이 사라진다.
여자는 무엇을 놓고 왔는지, 하염없이 저수지의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까지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던 것인지, 여자의 시선은 어둠을 처연하게 헤집고 있다. 창백한 어둠 속에 시선을 풀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여자의 양 팔은 저수지의 바닥을 향해 있다. 무엇을 잡으려 했는지, 무엇을 건지려 했는지. 
뻗은 손의 끝은 힘없이 굽어 있고 수초처럼, 여자의 팔이 느리게 흔들렸다.
여자의 신발이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여자의 목걸이가 발견되었다고도 했다. 저수지를 향하던 여자의 발자국을 따라 풀이 눕기도 하고 그녀의 구두가 남긴 무늬를 따라 숲의 어둠이 들어섰다고도 했다. 저물녘의 마지막 순간과 해넘이의 산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눈을 감지 못한 것인지, 지금도 여자는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투명한 냉동고의 서늘함 속에 꽃잎처럼 피어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는 천천히 꽃잎을 지우고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은 무료하게 손톱을 만진다.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에선 빠른 템포의 음악만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판매원은 자신의 손을 뺨으로 가져간다. 냉동고의 서늘함이 판매원의 뺨 위에서 얼음처럼 부서진다. 냉동고에 손을 넣을 때마다 판매원은 살의를 감지한다. 냉동고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판매원은 생각한다. 마감을 넘긴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밤이 깊어질수록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더 밝고 서늘해져.
  사람들은 빠르게 심야로 흘러간다. 판매원의 좁은 미간이 예리한 주름을 만든다. 냉동고의 모서리에서 은빛 조각이 서늘하게 빛난다.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평화롭게 심야를 맞고 있는 중이다.
  평화롭게 심야가 다가오고,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평화로운 살의로 가득 찬다. 평화로운 살의를 가로질러 판매원은 냉동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냉동고에서 죽음. 판매원의 마지막 온기는 수증기를 만들어 냉동고의 덮개를 가린다. 판매원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냉동고 밖의 세상을 바라본다. 푸른 낯빛을 하고 서늘하게 누워 있는 판매원은 고요히 보인다.
  꺼지지 않는 간판만이 심야를 밝혀주는,
  은빛 조각 서늘하게 빛나던 심야 아이스크림 판매점,
  위로 하현달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깊고깊은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 해당 작품은 저작권자의 허락하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