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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강호동 짝퉁이 되어버린 이경규

사실 요즘 강호동, 유재석이라는 강력한 투톱을 제외한 모든 버라이어티 메인 MC들은 그 어느때보다 힘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에 맞설만한 유일한 대항마로 손꼽히던 이휘재는 유재석의 패떴에 밀려 세바퀴를 일밤에 남겨두는데 실패하였고, 스친소 또한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6개월 테스트 연장 포맷변경으로 서늘한 폐지의 칼날 아래에 놓인 상태다. 한때 최정상이었던 남희석은 이제 교양쪽에 더 어울리는 MC로 자리매김하였고, 탁재훈, 김제동, 김용만은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전성기때 3-4개의 프로를 쉴틈없이 연이어 진행하였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로 불리던 이들 모두 이제는 맡아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거의 대부분 상실하였다. 그만큼 유재석과 강호동은 예능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고 또 독점하였다. 자신들이 곧 예능이고, 예능이 곧 자신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역대 최고의 MC라 불려도 틀리지 않은 자리에 우뚝 올라선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 MC로 불렸던 이경규 또한 이렇게 변화된 녹록치 않은 현실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들 중에 한 명이다. 그는 무한도전을 잡아보겠다고 야심차게 출발시킨 라인업과, 리얼 로드 여행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던 간다 투어의 연속적인 흥행실패로 톱MC의 자리에서 순식간에 밀려나버렸다. 이후 공중파 프로그램 진행이 끊겼고, 케이블에서 이름을 내걸고 진행한 쇼마저 성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이번 봄 개편때도 특급 게스트로 시작해 메인 MC로까지 올라섰던 명랑히어로의 폐지과정을 손가락 빨며 지켜보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때 최고 중에 최고였던 이경규도 이제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최악의 핀치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이경규는 얼마 전 자신의 방송 커리어의 모든 것을 내걸고 엄청난 마지막 승부수를 내던졌다. 자신이 곧 상징이자 프로그램이 곧 자신이라 불리던 일밤과 전격적인 작별을 선언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경규가 내린 이 결정은 엄청난 충격과 동시에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그 결과여부를 놓고 대중들의 폭팔적인 관심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이경규는 20년 넘도록 진행된 일밤에서 절반 아니 4분의 3이상을 메인 MC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일밤과 경쟁하고 있는 타방송국 프로그램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에 단순하게 출연결정을 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만큼 파급력도 크고 이경규에게는 신중한 결정이자 승부수가 필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이경규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만큼의 선택을 내린 것인가. 그가 투입되어 첫 방송된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 첫 방송을 보고 내린 결론은 안타깝게도 아니라는 쪽에 가깝다.


일단 이경규는 하락세였다. 최악의 하락세에 있었기에 그에게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메인 MC 자리를 맡기려는 프로그램은 없었고,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말 프리미엄 시간대에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최후의 선택은 자신을 상징하던 일밤의 경쟁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해피선데이 제작진이 부진한 이경규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노림수가 저변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경규를 데려오면 그가 일밤을 버렸다는 것만으로도 경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상대로 심리적 우위를 점하고 화제 또한 끌어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기에 이경규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최고의 인기와 시청률을 끌어모으고 있는 1박 2일팀이 오프 더 카메라에서 이경규에 대한 사담을 나누고, 이를 방송으로 포장해 내보낸 이유도 간단하다. 제작진이 그만큼 이경규가 가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뒤집어진 일밤을 버렸다는 이미지를 처음부터 철저하게 자신들 프로그램에 이용하고자하는 반증이자 증거다. 그러니 그들은 이경규를 위한 것이 아닌, 실상 이경규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까지 빨아들이겠다는 의지를 위해 그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해피선데이 제작진의 이런 선택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해석될 수는 없다. 프로그램이 잘 되어가고 열심히 준비해 성공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일밤맨이라는 이경규의 상징이 무너져도 손해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만 거둔다면, 이경규 입장에서는 그동안 자신을 소외해왔던 일밤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가장 원초적인 것부터가 틀어졌다는데 있다. 그만큼 남자의 자격 첫 회는 진부하고 볼품없었다. 제작진은 이경규에게 새로운 캐릭터도 주지 못했고, 기존에 있던 그의 캐릭터를 영리하게 변화시키는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그는 평소 다른 버라이어티에서도 보여주던 모습들과 별반 다른 것 없는 행동을 프로그램 내내 계속 반복하였고, 마구잡이로 애드립을 치다가도 부쩍 약해진 모습으로 주변 캐릭터들에게 당해주는 특유의 패턴까지 답습하였다. 특히 아내에게 수화기 너머로 짜증섞인 호통을 당하는 장면은 우습다못해 처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부했다. 프로그램의 간판만 슬쩍 갈아치웠을뿐 이전에 그가 실패를 겪었던 간다 투어나 라인업의 모습과 전혀 변화가 없는 데자뷰 현상만을 시청자들에게 느끼게 한 것이다.

첫 회 시청률이 8%가 나왔고 인터넷에서의 평가가 좋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평가와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성공가능성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실 남자의 자격은 여러모로 이어 방영되는 1박 2일과 너무 비슷한 포맷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껍데기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실상 알맹이는 똑같았고 차별화되는 부분이나 색다른 부분도 없었다. 실제 남자들끼리 뭉쳐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과 남자들끼리 뭉쳐 무언가 해낸다는 설정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도 별로 없을뿐더러, 그나마 같은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인지 1박 2일의 필승공식을 그대로 표절해나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진부한 설정에 진부한 이경규의 캐릭터까지 뭉쳐 짬뽕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자의 자격이 방영되고 있는 시간대에는 SBS의 초절정 인기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가 방영되고 있다. 과연 시청자들이 이 진부한 래퍼토리가 이어지는 남자의 자격을 시청하기 위해 패떴을 버릴까. 그리고 이경규가 왔고, 일밤을 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채널을 기꺼이 돌릴까. 시청자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이미 뻔하다. 새롭지 않은 식상한 조합만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애시당초 해피선데이 제작진에게 남자의 자격이 방영되는 시간대는 소위 내다버리는 시간대였다. 1박 2일의 대박흥행신화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최근의 해선은 단 한 차례도 시청률 20% 고지를 넘겨본 적이 없다. 남자의 자격 이전에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던 불명과 꼬꼬관광은 종합 시청률이 채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경규는 일밤을 버리면서까지 해피선데이에 입성했으나, 해피선데이 제작진은 이경규가 망하든 말든 전혀 동요하지도 책임감을 느낄만한 처지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그들은 망해도 좋으니 시청률 5%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 아래에서 1박 2일의 패턴을 그대로 뒤쫓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예능감이 부족한 배우 두 명과 버라어이티에 처음 입성하는 개그맨. 이미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있고 이미 해와서 웃음 패턴까지 딱 그대로 진부한 김국진, 이윤석과. 거기에 대단히 물질주의적이고 정치적인 작가 이외수를 마치 도인처럼 포장한 방송 내용까지. 첫 회 방영된 남자의 자격은 그만큼 뻔히 보이는 쓴웃음과 실망스러움만이 가득한 방송이었다. 진부해서 사라졌으나 다시 돌아와서도 진부했던 불명이나, 90년대에 가능한 러브 버라이어티로 역대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한 꼬꼬관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물론 앞으로 프로그램이 또 어떻게 변화해나가는지 지켜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필자의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이 너무나 이른 설레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밤을 상징해왔던 이경규가 결국 예능이 곧 강호동이라는 법칙을 가진 해피선데이 제작진의 손길 아래에서 강호동의 짝퉁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매너리즘과 진부한 답습을 그대로 밟아가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일 또한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