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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김구라,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김구라가 과거 연예계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용서받기 힘든 행동들로 가득했다. 그는 인터넷 방송국에서 타인에 대한 비방과 욕설 그리고 근거없는 루머를 기반으로 방송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렸던 인기와 캐릭터를 바탕으로 공중파에까지 진출했다. 이는 김구라라는 인물이 이제 공중파에서 가장 잘나가는 MC로 거듭난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라는 의구심이 생길만한 쇼킹한 사건이었다. 그는 현재도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에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을 데려와 그들의 과거를 들춰내는 저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욕설과 비방 그리고 추측이 사라졌을뿐 기본적인 밑바탕은 프로의 제목만큼 그가 과거 인터넷 라디오 시절 보여주었던 컨셉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붐의 라디오스타 출연에 그가 자연스럽게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준코! 준코! 를 외친 것은 그의 과거와 캐릭터 그리고 오직 김구라만이 버라이어티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연장선이다.

최근 희석되었다고 여겨졌던 김구라의 태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김구라에게서 비롯되는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대중들의 반감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김구라가 과거 저질렀던 행동은 그가 방송에서 자주 비판하는 음주운전, 마약복용에 뒤지지 않는 인격적인 범죄행위였다. 이는 김구라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가 방송계에서 은퇴하는 그 날까지 안고가야 할 업보이기도하다. 대단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김구라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것은 이와 같은 그의 잘못된 과거에서부터 비롯되는 비호감이 대중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김구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은 어떻게보면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의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성급한 오류일수도 있다. 또한 이는 김구라의 과거와 현재를 동등한 시각에서 놓고 대비시키는 첫인상이 남겨놓은 주홍글씨이며 오류이기도하다. 왜냐하면 최근의 김구라는 일반적인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막말을 내뿜는 역할을 자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라디오 스타' 에서 준코의 입장을 고려하고 않고 성급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마구 꺼낸 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은 경솔한 행동이었을뿐 과거 인터넷 시절과 비교할 수 있는 막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터넷 시절의 김구라는 막말을 위해 막말을 꺼냈다면, 지금의 그는 다르다. 무릎팍에서의 강호동이 그러하듯이 까발리지만 궁극적으로는 포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공중파 진행자의 모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공중파에서 김구라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허나 그가 원하지도 않는 컨셉을 잡아 그것을 바탕으로 공중파에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성공하게 된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이너적인 요소와 좋지 않은 과거가 가진 피해의식을 밑바탕에 깔아두고,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키려는 김구라만의 독특함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절친노트에 나와 자기 스스로가 못할 짓을 저질렀다고 인정한 하리수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뒤엎기보다는 이를 긍정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런 치열한 과정을 거쳐 등장하게 된 것이 김구라의 현재스타일이다. 적극적으로 까발리지만 포장해주자. 티를 드러내지만 털어주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해주자. 이는 과거를 주홍글씨로 새겨놓고 있지만 털고 나아가고 싶은 김구라 입장에서도 다른 연예인들을 향해 선호할 수밖에 없는 진행스타일이기도했다.


최근의 김구라는 처음 공중파에 등장했을때에 비해 많이 독해진 측면이 적지 않다. 이는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켰을때 닥치게되는 위기를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밤의 세바퀴나 절친노트에서의 모습은 김구라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과 두려움을 제대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틀이 잡힌 형태와 공격해야 할 대상이 부족한 버라이어티에서 김구라는 자신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는 결국 자기가 구축하고 있는 틀안에서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모습의 형태로 진화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스타일에서마저 밀려나간다면 그는 한순간 방송계에서 필요없는 무쓸모한 캐릭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한계를 더 독해지는 형태로 더 사악해진다는 평가로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비난에 시달리더라도 비판에 시달리더라도 표면만 쓸어대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김구라의 이러한 선택이 과연 성공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실패로 귀결될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인터넷 방송에서 멘트의 50%를 욕으로 가득 채워넣었던 김구라가 지금 공중파 방송국의 유력한 최우수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리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가 앞으로 승승장구할지 아니면 실패를 맛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다. 김구라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그를 싫어하고 그의 스타일을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김구라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이와 반대로 그만큼 그의 모습을 지지하고 필요로 여기는 대중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흑은 백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결코 그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옳고 그런 것에 대한 구분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불특정 다수로 대변되는 대중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 누구도 꽃보다 남자와 아내의 유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현실적이라고 느끼지도 않고, 그들에게 공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그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캐릭터와 드라마를 열광하며 지지한다. 김구라가 추구하는 본인의 모습은 그런 것이다. 욕을 하면서도 보게 되는 흥미진진함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고, 과연 어떤 튀는 행동으로 보는 이를 당황시킬지 예측하기 어려운 맛. 김구라에게는 그런 맛이 있다. 그리고 이는 김구라만이 가지고 있는 김구라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모두가 같은 얼굴로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김구라를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리고 주관적이던 객관적이던 스스로도 말했듯 그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모습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을 상대로 너희 드라마는 너무나 저질스러운 드라마라고 손가락질 할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당장 드라마 작가를 노희경으로 바꾸라고 소리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말해도, 어떻게 설명해도 김구라는 유재석이 될 수 없고 스스로도 강조했듯이 명품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김구라는 욕하면서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다. 그런 그를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다. 그냥 편안히 그를 보고 즐기며 소비하든가. 끝임없이 비판하고 비난하든가. 변화는 없을테니까 결국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