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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최양락, 록키 발보아가 되어라


      




1976년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수작들의 동시다발적인 경쟁이 있었던 해였다. 페이 더너웨이의 열연이 빛난 방송사간의 시청률 경쟁을 이야기한 작품 '네트워크' Are you talking to me?(지금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거야?) 라는 명대사를 남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 '택시 드라이버'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같은 영화들이 작품상 후보목록에 있었다. 당시 함께 작품상 후보목록에 있던 실베스타 스텔론의 '록키'도 대단한 흥쟁작이었으며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권투영화가 다른 수작들을 누르고 작품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들의 극소수에 불과했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흥행작이나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작품보다는 자신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작품을 주로 우대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올해 영화 다크 나이트가 대단한 흥행성적과 좋은 비평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스타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 결국 지명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당시 록키는 작품상 후보에 오른것만으로도 자신들이 해야할 몫은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수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록키는 그런 평가를 뒤짚고 모두의 예상을 깨부수었다. 록키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차지하였고, 수많은 수작들을 누르고 아카데미가 인정한 그 해 최고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미국인들에게 록키라는 인물이 큰 위로와 희망의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뒷골목에서 변변찮게 행동하던 젊은 건달이 극강의 세계챔피언을 링 위에서 맞이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모습. 이는 비록 패자의 눈물을 상징하고 있었지만, 승자의 환호성보다 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개그맨 최양락이 왕이 귀환했다는 높은 평가속에서 다시 버라이어티 주무대로 되돌아오고 동시에 대중들의 큰 관심까지 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와 같이 패배자의 리턴매치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1976년도의 미국을 닮은 대한민국이 현재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국인들이 모두 패배의식에 젖어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때 패배자였던 록키를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듯이 한국인들 또한 이미 흘러갔거나 별볼일 없다고 생각되는 이가 다시 회심의 강펀치를 날리며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 시대의 현실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하다. 최양락은 박미선이나 이영자가 그러했듯이 대중들의 그러한 기대와 희망 속에서 다시 부각될 수 있었다.

예능계에는 벌써 유재석 강호동의 투톱시대가 굳건하게 자리잡힌 상태다. 두 사람은 이제 예능계에서 천하의 요새를 상징하는 성벽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이들은 벌써부터 20년이상의 롱런을 예측하는 전문가가 나오고 있을만큼 역대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MC들과 비교해도 우위를 점할만한 완벽한 능력과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 뒤를 이어나갈 것으로 예측되는 후발세대 MC들이 몇몇 존재하고 있으나 사실 지금까지 실적만 놓고보면 그들은 대단히 실망스러운데다가 능력 또한 부족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올드한 개그맨들은 또한 이런 현상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는 무적무패의 챔피언 아폴로의 상대로 무명의 복서 록키가 지목된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아폴로와 록키의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록키가 패배할 것을 알았다. 이는 애시당초 두 사람은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폴로가 독립기념일 이벤트 차원에서 록키에게 기회를 주었듯 올드 개그맨들의 버라이어티 귀환은 특정 MC들이 굳건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는데 하나의 양념을 칠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최양락 또한 이와 같았다. 최근 가장 성공적으로 버라이어티에 복귀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올드 스타일 개그우먼 박미선의 첫 방송복귀작은 유재석이 진행하는 해피투게더의 보조MC직이었다. 이는 유재석보다 선배인 그녀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사실상 유재석을 넘을 수 없을것이라는 기존 MC군단의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링 위에 올라섰더라도 그 위에 올라서면 누구나 투지를 불살라야만한다. 록키가 1회에 KO 당할 확률이 높은 결과가 뻔한 경기를 치뤘음에도 결코 끝날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버텼듯이 올드 개그맨들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때 누구보다 더 투지를 불사르는 투혼이 필요하다. 그런 투지와 자신만만함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을 다시 링 위로 올려보낸 대중들의 기대치를 향한 예의이기도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박미선보다 최근의 이영자의 모습을 더 높게 평가하고 귀감이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이들은 이영자가 기회를 잡았음에도 결국 또다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그녀를 낮게 평가했으나, 이는 결코 그렇게 평가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록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과거 클래스에 걸맞는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대중들이 그녀를 링에 밀어넣어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후회하지 않을만큼 한 판 신나게 싸우고 또 싸운 것이다. 

물론 오래간만에 다시 링 위에 올라선 최양락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이다.  그가 이영자와 같이 실패하는 모습을 되밟아가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한 판 신나게 싸우고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그 의지만큼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강호동의 곁에서 과거 이야기와 현재 방송에 적응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지나간 스타일 혹은 불쌍하거나 옛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최양락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자신은 유재석과 강호동에 미치지 못하기에 2인자의 위치에서 롱런하며 꾸준히 오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결정했더라도 야성을 키우고 다시 자신을 필요로했던 시청자들 앞에서 당당히 선 챔피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잊지 않기 바란다. 60세의 나이를 넘기고 전성기가 훨씬 지나 필라델피아에서 닭요리를 구으며 살아가던 록키는 30년만에 현시대의 최고 챔피언과 다시 맞설 기회를 잡는다. 대중과 여론은 60대의 퇴물 복서가 20대의 전도유망한 챔피언을 맞서는 선택을 조롱한다. 심지어는 록키의 아들조차 그의 출전을 막아서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을 선택한다. 다시 싸울 수 있는 자신의 정신력과 용기를 믿는 것이다. 젊은 챔피언은 퇴물이 된 늙은이 록키에게 "적당히 하는 것이 좋을겁니다. 내가 그럼 봐 드릴 수 있어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록키는 젊은 챔피언에게 이렇게 화답한다. "이 라스베가스(권투경기가 이뤄지는 도시)에는 패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아. 모두가 내가 패배할거라 말하며 나를 조롱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결코 이 도시에 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네. 최선을 다할거야."

돌아온 최양락에게는 지금 그 무엇보다 승리를 향한 굶주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유재석, 강호동을 누르고 최고로 우뚝서겠다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을지라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영자가 그러했듯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승리를 위해 자신을 불사르던 록키는 결국 젊은 챔피언에게 패배한다. 하지만 그는 패배자라는 오명을 쓴채 모두의 질타 속에서 부끄러운 얼굴로 링을 빠져나가지 않는다. 모두가 아름다운 도전자이자 패배자인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록키는 당당히 손을 들어올리며 대중들의 환호와 갈채속에서 퇴장한다. 이는 록키의 승리하고자하는 욕구와 마음가짐이 권투경기를 지켜보는 모든이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최양락은 한때 최고였다. 록키가 챔피언이었듯이 그는 한때 대한민국 코미디계를 주름잡던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물론 지금의 최양락은 링 위에 서기 전의 록키가 그러했듯이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버라이어티라는 링 위에 서서 상대를 노려보고 할 수 있다는 정신력과 용기를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결코 흘러간 옛 사람, 퇴물, 불쌍한 사람으로 기억되어서는 안된다. 록키 발보아가 그러했듯이 패배하더라도 멋진 한 방을 날리며 그를 링 위에 세워놓은 국민들을 다시 기쁘게 해줄 수 있기를. 최양락이라는 남자가 다시 그렇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