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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꽃보다 남자, 디 워보다 위험하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이런 작품에 열광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왜 시청률이 '무려' 20%나 나오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마치 2007년 여름 극장 문을 나서던 그때 그 날이 다시 되돌아온 느낌이다. 그 당시 영화 디 워를 보고 난 뒤였다. 심형래의 눈물 애국마케팅에 낚여 디 워를 보고 극장문을 나설때 당하는 사람들이 민망함을 느낄 정도로 얼굴을 바싹 들이밀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관찰이 아니었다. 당신들도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계시겠죠. 이런 무언의 동의와 위로를 구하기 위한 제스처에 가까웠다. 난생 처음으로 할인받아 본 영화값이라 상대적으로 싼 4천원을 지불했음에도 차라리 그 돈이 불타는 모습을 봤어야했다고 자조하게 만들었다. 그게 영화 디 워였다. 그리고 한국판 꽃보다 남자는 간만에 디 워를 본 그 때 그 날로 나를 되돌려놓았다. 이걸 앉아 지켜본 72분을 되돌려 달라고 소리치게 만드는 작품. KBS라는 곳에 다달이 내고 있는 수신료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 어떻게보면 5천원을 투자한것보다 사람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어질어질했다.

일단 이 드라마 분명히 한국드라마다. 그리고 한국을 배경으로 찍은 드라마다. 나오는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이다. 그러니 한국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나오는 장면으로 봐서는 한국이 아니다. 이걸 한국이라고 생각하고 방송국에서 틀어준거라면 시청자를 아주 바보로 여긴거다. 그만큼 도통 현실적인 상황이 없고, 아주 다른 나라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소꿉장난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의를 구할 수 있을만한 사건들도 없는것이 그야말로 괴기스럽다. 이야기 전개는 제 멋대로 엿가락 자르듯이 마구잡이로 이동하고 건너뛰고 아주 엉망진창이다. 될대로 되라식의 '막장'드라마가 대세인 시대라지만,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막장 드라마들의 포스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뭔가 이야기가 있어야 진정한 드라마인데, 기본적인 이야기가 없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다큐멘터리로 찍어놓은 느낌이 든다. 확실한 것은 이건 한국을 찍어놓은 드라마라 불리기도 힘들다는거다. 아예 사람 사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한다. 사람 얼굴 가진 이들이 나오고 있지만, 사람들이 아니라 외계인이나 동물들이 연기를 펼치는 것처럼 해석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물론 PD가 이미 말했다. 이 드라마는 판타지라고,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주시라고. 배우들도 이미 말했다. 과장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겠지만, 재미있게만 봐주시라고. 물론 고개 끄덕이면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근본없는 연기 형편없는 각본과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고루 섞어진 잡탕밥이다. 그것도 먹기 힘든 잡탕밥이다.

재벌집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고 있는 여자의 집에 등장한다. 불쾌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서민'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의 등장에 여자의 부모 동생들은 한바탕 난리를 친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세상에 이런 황송한 일이 또 있냐는식으로 무릎을 끊고 앉아 밥을 갖다바친다. 재벌집 아들은 당연하다는듯이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반찬들을 천천히 음미한다. 아 이게 멸치인가. 아 이게 갈치인가. 무릎 끊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뜬금없이 이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재벌집 아들이 똑똑해서 환호성을 내지르는건지 그들이 멍청해서 환호성을 내지르는건지 아니면 단체로 정신이 나가서 이러는건지 전혀 모른다. 아예 설명이 없다. 그들은 그냥 와 소리를 지른다. 멍했다. 딸을 팔아치우려는 심봉사 나오는 심청전도 아니고 이게 뭐지.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딱 디 워다. 이야기가 없다. 이해도 없다. 가장 쉬운 판타지를 보여준다면서 유치원생도 이해 못할 상황을 강요하는 것이 딱 디 워다. 그리고 비쥬얼로 밀어붙이며 뻥뻥 터트리고 빵빵 난리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수준도 딱 디 워다. 초호화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막장입니다. 초호화로 잘생긴 네 남자 얼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물론 연기는 한심합니다. 이것부터 저것까지 너무 닮아서 놀라울 지경이다. 닮은 것만 찝어서 뽑아도 아마 논문이 한 편 나올것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꽃보다 남자는 이보다 더 위험하고 불쾌하다. 그러니 디 워만도 못하고, 디 워보다 훨씬 더 경계해야한다. 디 워는 처음부터 상상이 불가능한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그렇다해서 꽃보다 남자처럼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제 멋대로 흘러가는 것을 용납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꽃보다 남자와 흔히 비교되는 궁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현실세계에서 갑자기 공룡이 나타나 난리치는 상황은 없을것이고, 현실세계에는 지금 왕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렇기에 그 작품들을 봐도 그것들을 진정한 판타지로 받아들이고 허구임을 인식한다. 그런데 꽃보다 남자는 그런 것조차 없다. 판타지라면서 아주 현실적인 단면들을 계속 들이밀고 강요한다. 서민이라는 표현을쓰는 재벌집 네 자식들이 왕자님 대우받는 현실이라니. 살기 어려워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싸그리 외면당한 지옥과 같다. 그런데 그걸 현실로 강요하고 있으니 위험성은 심각하다. 두 처자가 비행기로 납치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고등학생에 불과한 처자들이 왠 남정네들과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로 점프뛰게 되는 상황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토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부모는 어떻게 생각할까. 여권은 있는걸까. 저거 지금 계절이 저게 맞나. 그런데 연출자는 죽집을 보여준다. 이 두 처자가 없어져서 죽집은 위기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쭉쭉빵빵 모델들이 대신 투입되어서 더 인기를 끌고 있군요. 시청자 여러분 걱정하셨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집은 문제없습니다. 연출자는 이걸 강조한다. 그리고 죽 만드는 장면과 과정까지 친절하게 찍어 보여준다. 현실적인 부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강조해주는 것이다. 진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그냥 판타지니까 이해하라고 강요하고, 작은 현실은 아주 디테일하게 이러니 저러니 설명하다니. 정말 위험하다. 자기네들이 판타지라고 해놓고 결국 현실을 운운하고 있으니 진짜 위험하다.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면 대단히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악당인 조커는 영웅을 자처하는 배트맨에게 말한다. 네 정체를 밝혀라 안 그러면 사람들을 죽일거다. 그런데 배트맨이 이를 거부하고 안 밝힌다. 그러니 조커는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배트맨에게 네가 정체를 안 밝혀서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에 배트맨은 고뇌하고 괴로워한다. 사람을 죽게 하지 않으려면 내가 정체를 밝혀야하나. 고민하고 고민한다. 아마 악당 죽이고 악당 쫄개 죽이는건 기본옵션이었던 80년대 슈퍼히어로들이 보면 배잡고 웃을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디테일이고 세련된 방법의 연출법이다. 굵직한 것을 우선시하고 전달하려하는 주제가 우선시되는 것. 사실 배트맨의 세계는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되는 세계다. 검은색 옷을 입은 박쥐인간이 날아다니는 세계가 무슨 현실이겠는가. 재벌집 자식들이 왕자로 대우 받으며 몇 천만원 마음껏 뿌려대는 세계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연출자는 그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무서운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준다. 비현실 속에서 현실을 정확하게 캐치해낸 것이다.

꽃보다 남자도 원칙대로라면 이렇게 되어야한다. 새롭게 창조한 자신들의 비현실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을 끄집어내야만한다. 그런데 그러질 못하고 비현실을 시청자들에게 현실로 강요하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납득시키려고 애쓰고있다. 굉장히 위험한거다. 꽃보다 남자가 정말 자신들이 말하는 판타지를 강조하고 싶은거라면,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제대로 그어야하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리더라도 굵직한 주제의식을 가진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줘야만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유치원생도 이해 못할 판타지극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인 현실을 납득시키려는 순간 발생하게 될 위험성을 논하자면 왕따, 고등학생 클럽문화, 재벌미화등의 문제점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어린 대중들은 드라마를 바라보며 누구나 다 저렇게 어처구니 없는 삶을 산다고 착각할수도 있다. 차라리 납득이 불가능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이미지 위주의 화보집 드라마를 보여주거나 화끈하게 판타지를 강조하는 만화같기를 바란다. 디 워는 무식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꽃보다 남자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리면서도 마치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서 위험천만하다. 왕처럼 대우받는 재벌집 고등학생 자식들이 영웅대접받는 사회라니. 정말 지옥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