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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김제동, 그는 왜 몰락하는가


       




MC들 사이에서는 우스개소리지만 이런 말이 있다. KBS 연예대상을 받은 자는 그 뒤로 징크스에 시달리면서 전성기 시절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점점 하락한다. 물론 증명된 것은 결코 아닌 떠도는 낭설 혹은 징크스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미있는것이 공교롭게도 연예대상을 받았던 신동엽, 박준형, 김제동, 이혁재, 탁재훈 모두 자신의 최절정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모습에 비해 최근의 활약이 극히 저조하다. 물론 2005년도에 대상을 받은 유재석이 지금까지도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 최고 MC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두 들어맞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예대상의 저주에 대해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성 또한 분명 존재한다. 2007년도 KBS 연예대상을 받은바 있는 탁재훈은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등장해 대상수상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또한 대상 수상 이후 높아진 주위의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신을 한없이 누르고 부담스럽게 만들었다고도 말했다. 최고라는 자리에 올라선 뒤에 이어지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지둥댔다는 것이다.

김제동은 2006년도 KBS 연예대상의 수상자였다. 당시의 그는 최고 절정기를 맞이하며 PD들이 모두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최고의 MC였다. 하지만 2009년을 맞이한 지금의 김제동은 어려운 경제사정만큼이나 차가운 개편의 칼날 밑에서 부들부들 떨어야 할 처지의 진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동안 훌륭히 진행해왔으며 큰 애착을 보였던 연예가중계 MC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에 이어 이번에는 새롭게 개편되어 시즌2로 방영되고 있었으며, 김제동이라는 인물을 스타급 진행자로 도약시켜준 야심만만에서조차 하차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이 최고였던 김제동의 발목을 틀어잡고 그를 몰락의 길로 향하도록 만들었을까.


다시 KBS 연예대상 이야기로 넘어오면, 연예대상뿐만이 아닌 KBS에서 수여되고 있는 연말 시상식은 특히 더 자사의 방송이익과 공헌 그리고 충성심을 보인 자를 우선시하기로 유명하다. 다른 방송사 연예대상 또한 마찬가지지만, KBS는 특히 더욱 더 그러하다. 박준형, 이혁재, 탁재훈은 전체적인 예능계 판도를 놓고보면 연말시상식의 대상수상자로 지명되기에는 부적합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들이 방송국에 한 해동안 보여준 성실성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박준형은 주축들이 모두 떠난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을 30%로 되려 상승시킨 일등공신이었고, 이혁재는 스펀지의 닥터 리로 KBS에서 최고 수익을 얻고 있던 진행자였으며, 탁재훈 또한 불명과 상플을 꾸준히 진행하며 KBS에 남다른 공헌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상이 주는 상징성이다. 그들은 활약만큼이나 남다른 성실성으로 사실상 공로상에 가까운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후에는 최고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김제동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2006년도에 그는 한 방이 있는 임팩트보다는 KBS에서 3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성실성 덕분에 대상을 받을 수 있었다. 김제동 또한 실상 당시에 연예대상을 꿀꺽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징에 가로막혔다. 천천히 기지개를 펴야했는데 준비도 없이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김제동은 공교롭게도 대상을 받은 직후 방송환경의 변화라는 또다른 벽을 맞이해야했다. 2007년도에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예능인은 단연 박명수였다. 그의 호통개그와 비난개그는 그 당시 방송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배려의 밑바탕 아래에서만 용인된 웃음을 누리던 시청자들은 박명수의 제멋대로 엉망진창인듯하지만 폭소와 웃음을 위주로 터지는 그의 비난개그에 짙은 쇼크현상을 일으켰다. 김구라는 이에 적극적으로 가세한 경우다. 그의 독기가 철철 흐르는 개그는 박명수가 뿌린 기름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잘못조차 덮어둘 수 있을만큼 대단한 임팩트을 선보이며 전방송사를 누비고 다녔다. 공교롭게도 김제동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방송환경은 이렇게 두 사람에 의해 단순간에 바뀌어버렸다. 예능계가 배려보다는 강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서바이벌의 장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김제동은 이에 직격탄을 맞았다. 왜냐하면 그의 스타일 때문이다. 일단 그는 너무 순하다. 좋은 진행력과 입담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치고 나갈 뻔뻔함을 지니지 못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말할 기회를 주고 말해야 할 상황이 와야 입을 열고 말을 시작한다. 지금도 김제동의 멘트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도통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이 문제다. 수만명을 앞에 두고 몇 시간동안 대중을 제압했다던 그의 입은 도통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먼저 열리지가 않는다. 왜일까. 이는 김제동이 무릎팍도사에 나와 말했던 자신의 과거. 바로 수만명을 앞에 두고 타인을 제압했다던 그 과거에서부터 비롯된다. 그의 진행은 일방적으로 곧게 지르고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피드백 뒤에 벌어지는 이차적 상황극에서 기초한다. 즉 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들어주고 그것을 해석해 이차적으로 터트리는 진행방법에 능숙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대학교 레크레이션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MC들이나 보조적 진행을 맡은 MC들의 보편적 진행방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그의 스타일은 현재 예능이 추구하고 있는 스타일과는 동떨어져있다. 현재 예능계가 원하는 인물은 1할타자지만 엄청난 홈런을 날려대는 신정환과 같은 인물이다. 김제동은 메인의 위치에서 단타를 꾸준하게 날렸지만 큰웃음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이것 또한 KBS 연예대상의 잘못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김제동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1인자에 가까운 2인자의 자리였다. 야심만만에서 메인 진행자인 강호동을 압도하던 보조 출연자의 자리.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는 그 자리였다. 마치 지금의 윤종신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그는 최고라는 타이틀 덕분에 1인자에 가까운 2인자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에게 덧씌어진 KBS 연예대상이라는 타이틀은 진정 그에게 불행한 상징이 되고 만 것이다.

그는 얼마전 웃음을 주었기 때문이아닌, 특이하게도 100분토론에 나와 큰 칭찬을 받았다. 이는 날을 세우고 독기를 뿜어내며 들어주는 것보다는 혀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한 얼굴로 양쪽의 말을 다 들어주는 특유의 그의 제스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그의 모습이 과연 칭찬받을만한 모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그 자리에 토론자로서 입장을 가지고 나왔다고 보기에 상당히 부적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어려운 질문에 땀을 뻘뻘흘리고 있었다. 토론이 존재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절충되지 않은 의견의 틈새를 좁히기 위함에 있다. 즉 어떤 입장이든 그에게는 의견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프로그램이 아닌 100분 토론에 나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고, 이는 옆에 앉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명하는 신해철과는 비교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만족하는 그를 보면서 어쩌면 그의 몰락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와 같은 행동은 결코 스타일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동적이지 못한 자는 결국 뒤로 처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그 원칙은 예능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최근 예능에 나온 김제동을 보고 100분 토론에서처럼 보는 대중은 만족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실수가 적은 대신 잊혀져가고 기회를 잡지 못한다. 박수홍이나 서경석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없다. 하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적다. 김제동에게 현재 상황은 결코 좋다고 고개만 끄덕거릴 상황이 아닌 것이다.


박중훈은 자신의 토크쇼 기자간담회에서 문제가 될만한 발언을 꺼냈다. 그는 현재 예능이 무례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토크쇼나 예능프로그램이 말하기 싫어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연예인에게 무례하게 뽑아내도록 강요하는 것이 대세가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프로그램의 진행자라면 대중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곁에 다가가 먼저 스타일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태도가 우선시되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변한 것에 불평을 터트리기보다는 왜 시대가 변했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애초에 연예인과 진행자가 대중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대중의 유희가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진행자도 대중의 변화된 스타일에 따라가는 것이 마땅히 옳다. 고로 따라가지 못하는 자가 불평을 터트리기보다는 변화된 시대상에 발맞춰 같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분명히 현재 김제동은 몰락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시대가 원한 방송변화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2인자의 위치가 어울렸던 그가 너무 빠르게 최정상을 상징하는 위치에 서 버렸기 때문이었다. 대중은 그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먼저 말을 열고 유재석처럼 좀 더 친근한 방법이든, 강호동처럼 좀 더 화끈한 방법이든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김제동에게서는 이와 같은 사람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대중의 곁에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이 김제동에게서 변화의 의지가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간다 투어와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출연을 시도했고, 스타 골든벨에서는 여장을 시도하며 앉아서 농담 따먹는 방송에 익숙하다는 일각의 혹평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김제동이 박중훈과 다른 점은 결코 시련을 맞이하게 된 상황을 외부적인 요인에 떠넘기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분명히 김제동은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부활할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이 부활해 큰 웃음들을 대중에게 다시 전달해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