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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아이비의 진실이 슬픈이유


      




2007년 상반기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두가 아이비의 팬이었다. 대중은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 위에서의 섹시미와 카리스마 완벽한 가창력을 사랑했고, 그녀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에 열광하며 아이비에게 열렬한 사랑의 총알을 날려댔다. 남성들이 그녀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녀가 너무나 섹시했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인데, 그녀는 이런 섹시함 말고도 다른 섹시 가수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장점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보수적이고 순종적인 캐릭터였다. 이효리가 섹시함 뒤에 숨겨진 털털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듯이 아이비에게서는 섹시미 뒤에 숨겨져있는 보수적인 언행과 행동이 있었다. 그녀는 쇼 프로그램에 나와 혼전순결을 지지하는 입장임을 밝혀 나는 뿌리고 다녀도 괜찮은데 무조건 내 여자는 첫 여자여야한다는 몇몇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고, 군인인 아버지 덕분에 외박은 꿈도 꾸지 못했으며 통금 시간이 있다고 말하여 21세기 시대에 순종적인 조선시대 여성을 찾아 헤매는 몇몇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시켰다. 무대 위에서는 섹시한 몸동작을 보여주며 모든 것을 다 드러내줄것만 같은 그녀가 무대 밖에서는 조용조용하며 말까지 잘 듣는 순종적인 여성상이라니. 아이비는 그야말로 남자들이 꿈꾸는 완벽한 존재였다. 그리고 남성들의 상상력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기에 충분한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최고의 성녀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딱 그때부터 그녀를 향한 관심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여주고 보여주려는 모습 속에서 박은혜라는 한 여성이 담고 있는 진실한 모습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속으로는 피식했다. 혼전순결?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하기 전에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죄도 아닌데 왜 그걸 남들에게 허락받으려 하는거지? 통금시간? 밤에 일 있으면 나갈 수 있는거지 꼭 제한이 있어야하나? 아버지가 군인? 내가 있던 부대의 행보관님의 딸은 어느날 코와 귀를 뚫은채 가출을 감행해 그 분이 자기 직무실에서 꺼이꺼이 울었는데? 군인딸이 보수적인거랑 무슨 상관? 나는 아이비에게 눈이 먼 주위 사람들에게 끝임없이 이야기를 꺼내며 아이비라는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들은 아이비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내가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처럼 몰아세우며 나를 삐딱한 놈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완벽한 아이비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냐며 핀잔을 주었다. 졸지에 억울한 놈이 되어버린 나는 꿈에 취한 얼굴로 아이비를 그리며 갈구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비가 싫지는 않아. 근데 답답해. 꽉 막혀있잖아.

알다시피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었던 지금의 아이비는 성녀가 아니다. 그녀는 모두가 아는 전 남자친구와의 스캔들로 급작스러운 추락을 맞이했다. 물론 이는 연예인 아이비의 거짓말에서부터 비롯된 상황이었기에 결국 인간이자 한 여성인 박은혜가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었다. 그녀는 그 댓가로 가수로서 컴백하지 못했고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녀를 이제 다른 표본이자 새로운 기준점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 남자와 교제하고 다니는 여성의 표본. 몇몇 남자의 기준에서 지저분한 여자의 표본. 말 그대로 몇몇 대중은 그녀를 외면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징그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거짓말에 지독한 배신감을 느낀 정도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철저하게 차가운 시선이었다. 대중은 그렇게 아예 아이비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서 올해 또 스캔들이 터졌다. 곡을 만들어주고 있는 작곡가와 만나고 있는 파파라치 사진이 발표된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몇몇 대중은 그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사건을 일으키고도 또 감히 남자를 만날 생각을 하다니. 혹시 그 남자 이용해서 어떻게 해보려는거 아니냐.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 남자를 이용하려는거 아니냐. 참으로 뻔뻔한 계집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용히 있던 그녀도 참기 힘들었는지 홈페이지를 통해 항변했다. 아니 남자 사귀는게 죄인가요? 이런걸로 마케팅 하는 사람 있습니까? 저 연예인 안해도 되거든요. 저도 사람이에요. 이 말을 들은 나는 한때 아이비에게 눈이 멀었으나 이제는 그녀를 외면하는 정도를 넘어서 미워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반대로 물었다. 불쌍하지 않느냐. 가엾지 않느냐. 하지만 그들은 침을 튀기며 아이비가 못되먹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워하던 내가 왜 그녀를 옹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듯 말했다. 그 계집애는 거짓말쟁이야. 아무 남자나 만난다고. 그들은 아이비를 옹호하지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옹호? 그런데 나는 아이비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론 그녀가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게 막말을 쏟아내는 이들에게 변론을 펼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언플설을 흘리는 기자와 대중을 향해 아니라고 말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상에 있을때는 거짓된 이미지를 보여주던 사람이었고, 최악의 상황에 몰리자 솔직해졌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아이비를 옹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불편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비가 보여주려는 진실속에서 우리가 가진 이중적인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 어찌보면 우리가 더 아이비보다 야비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소속사의 강요로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했었고,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줘야했었다고 고백한 그녀의 진실마저 우리가 외면할 이유는 없는건데도 우리는 외면하고 비난했는데, 그게 너무 야비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녀에게 야비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그녀가 꺼낸 거짓말만큼이나 그녀가 보여주는 진실을 우리가 더 불편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실이 아닌 거짓말에 더 익숙한 상태라는 것. 아이비는 지금 자신을 야비하다고 느끼는 대중들에게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쯤에서 아이비와 비교될만한 한 여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효리는 어떠한가.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이며 셀러브리티다. 그녀는 대한민국 연예계 정점의 가장 화려한 위치에 속해있는 최고의 톱스타다. 하지만 그녀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패밀리가 떴다에서 얼굴에 분장칠을 하고 바보스러운 춤을 추며 논밭을 뛰어다닌다. 그리고 그것은 이효리의 진실이 아니지만, 대중은 그런 이효리의 모습을 진실로 여기며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마치 아이비가 쇼 프로그램에 나와 혼전순결을 약속하고 통금 시간이 있다고 말한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대중은 그것을 진실로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진실로 믿고 싶어한다. 진실로 믿지 않게 될만한 어떤 계기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야 편하니까. 대중은 일단 보이는 것만 믿고 마는 것이다.

대중에게는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다. 거짓을 진실로 알고 진실을 거짓으로 아는 그것이 진실이다. 정치도 그렇고 연예인도 그렇고 세상사 모두가 그렇다. 국회에서는 난장판 욕설로 씨름판을 벌이는 국회의원들이 선거철만 되면 하하웃으며 시장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같은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패밀리가 떴다는 시트콤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사실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사실이었다. 1시간 30분동안 찍어내는 프로그램 안에서 모두 리얼한 상황만 있을리가 없었고 작가가 존재한다면 당연히 배우들에게 대사를 배분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 결혼했어요도 시트콤이었다. 핏대를 높이며 화분을 열창하던 알렉스는 신애가 필요하자 헤어졌고 필요하자 다시 만났다가 필요하자 헤어진 뒤에 이젠 연락도 않는다. 그리고 김현중은 드라마 출연이라는 야망때문에 우결에서 하차했음에도 황보와 헤어지기 싫다며 산에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딱 보이는 것만 믿고 만다. 그리고 아 사실이겠지 하고 넘어간다. 뒤늦게 그들이 패떴의 대본이 공개되었다는 말에 충격적인 표정으로 어머나를 외치고 이니셜로 실제 우결 커플이 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에 좌절한 것은 어찌보면 진짜 이상한 일이다. 전부 다 아는 이야기가 나와 그냥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불과한데 지금껏 모른척했으면서 뒤늦게 알아 놀랐다고 하는 셈이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패떴PD와 우결PD의 태도다. 패떴PD는 시트콤을 찍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리얼이라고 우긴다. 우결PD는 그런 이니셜 커플은 없었다고 발뺌한다. 왜 그럴까. 진실을 알려주기 싫은거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되면 모두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아이비의 현재 모습처럼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거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을 속편하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개개인은 똑똑하지만 집단이 되면 우매하고 위험해진다. 사실 우리가 우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작 아이비의 경우로 무슨 이효리에 패떴에 우결커플까지 나오나며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비는 우리에게 영리한 것에 대한 그리고 영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우리는 영리하면서도 사고할 수 있음에도 계산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더 옳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비에게 백지영처럼 정석테크를 밟으라는 조언이 빗발치는 것일게다. 근데 아이러니 한 것이 또 그게 옳지 않으면서도 옳다. 또 아이비가 다시 성공하려면 그렇게 가는 것이 옳은 것이다. 다 알고있지만 속아줄 대중을 화려한 치장으로 속이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누군가가 드러난 것 이면에 있는 여자 박은혜의 진실을 봐주길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속을 걸 알면서도 속아준다. 속으면서도 속는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그게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직 끝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결과는 모르겠지만, 뒤늦게 진실을 토로하는 아이비는 더 나쁜 사람이 되고 있다. 냉혹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아이비가 보여주는 진실한 모습에 그녀가 좋아졌고,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 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