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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신동엽, 차분함과 경솔함의 중간지점



      





여러가지 뒷이야기들을 제공했던 2008년도 방송 관련 시상식들이 모두 끝났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상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유독 눈에 띠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단연 정상급으로 분류되는 MC 신동엽이었다. 신동엽은 이번 연말 시상식에서 유재석과 강호동이 모두 거절한 시상식 MC자리를 유일하게 두 개나 맡은 MC였으며, 맡아 진행했던 KBS 연예대상과 MBC 연기대상에서 숱한 뒷이야기들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신동엽이 보여준 진행능력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그는 KBS 연예대상에서는 노련하고 경험많은 베테랑 진행자답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MBC 연기대상에서는 부적절하고 주책맞은 진행을 펼쳤다는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왜 신동엽은 연말 시상식장에서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에 시달려야만 했을까. 이 해답은 공교롭게도 현재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신동엽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그리고 신동엽의 현재 상황과 맞붙려 있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매우 흥미롭다.


현재 신동엽은 자신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이어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이효리와 함께 이끌어나가던 주말 예능프로그램 체인지는 한때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의 화제와 호응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나, 참신한 소재개발에 실패하면서 7개월만에 폐지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곧장 체인지의 후속 프로그램 골드미스가 간다로 컴백하였으나 선보인지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시청률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또한 그의 MC로서의 영향력도 6명의 골드미스가 보여주는 비중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 그나마 노홍철이 보여주는 강렬한 캐릭터에 묻혀 튀지도 못하고 있다. 신봉선과 함께 진행하는 샴페인 또한 명랑히어로와의 시청률 대결에서 쉽지 않은 전쟁을 벌이고 있고, 과거형 토크쇼라는 일각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덕분에 시청률 또한 10% 내외의 벽에 부딪치는 모습을 보이며 신동엽이라는 이름값에 견주는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상에서 서서히 내려온 시점부터 그가 눈길을 돌렸던 교양 프로그램에서의 신동엽의 진행자로서의 실적은 어땠을까. 그는 두 달전 2년간 진행하던 경제비타민이 폐지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올해 초에는 야심차게 기획해 내놓았던 대결 8대1이 3개월만에 폐지되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 덕분에 교양국에서 1순위로 섭외되는 MC로 손꼽이고 있으나 이는 어찌보면 씁쓸하기만한 현실이다. 한때 러브하우스, 쟁반노래방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작들의 메인MC였던 그는 현재는 공중파 버라이어티에서  자신을 대표할만한 프로그램 하나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2000년대 최고의 버라이어티 진행자였던 그는 소리없이 꾸준한 하락세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일단 신동엽 본인이 말했듯이 그의 개그와 진행방법은 데뷔때부터 지속되었던 성인취향적이며 매니아적인 취향이 더 극단점을 향해 흐르고있다. 또한 이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진행방법이기도하다. 신동엽이 과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적절한 애드립과 순발력 그리고 게스트들을 휘어잡으며 프로그램을 리딩하는 노련함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최근 사랑받는 톱MC들에게서 통용되는 공통점은 노련함 못지 않은 친화력과 리얼함이다. 한때 신동엽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유재석은 허약한듯 하면서도 친화력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막강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시대에 맞춰가는 진행자로 거듭나며 결국 국민MC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는 함께 방송하는 사람들과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모든 대중은 정상에 위치에 서있는 유재석을 마주함에도 그를 마치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며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유재석과 맞서고 있는 강호동은 어떠한가. 그는 겉으로는 투박하게 보이지만 힘과 파워풀한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리얼함을 갖추고 있다. 이는 박수홍이나 김국진과 같은 과거형 MC들이 지니고 있던 순박하고 지고지순한 먹물을 먹은 듯한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대치점에 있는 진행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신동엽의 주특기는 강호동이나 유재석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는 크게 동떨어져있다. 신동엽 본인이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것처럼 그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어색해하고 어려워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헤이헤이헤이 시즌2와 TVN의 감각제국에서 선보였던 성인 취향용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다. 잔재미가 있지만 보는 사람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매니아적 개그에는 박수를 쳐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KBS 연예대상 시상식장에서 그의 진행이 호평받았던 이유는 그 특유의 자잘한 재미에 반응하는 예능인들의 마인드가 오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개그 취향이 통하는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하다. 하지만 MBC 연기대상에서의 그의 개그는 다소 틀린 방법으로 전달되어왔다. 진행하는 내내 멘트가 너무 많은 애드립만으로 가득차 있어서 조마조마했고 아슬아슬했다. 그로서는 연기대상이라는 분위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딱딱함을 진행자로서 이겨내고, 시상식장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을것이다. 하지만 함께 사회를 진행하던 한지혜와 과거 연인관계에 있던 이동건을 이용한 방법의 진행을 추구한 방향이나, 과거 이동건 집안에 있던 안타까운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 살얼음판 걷는 애드립은 지켜보는 이들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배려가 없었고 친화력이 없었다. 이와 같은 신동엽의 진행방법은, 조용히 배우들의 입장에서 깔끔하게 진행을 주도한 SBS 연기대상 진행자 류시원이 극찬을 받은 것과는 반대되는 진행방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동엽은 어떤 길을 가야할까. 일차적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파악이라 할 수 있다. 본인 스스로 말했듯 지금은 신동엽의 시대가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개그가 환영받는 시대 또한 아니다. 바꾸는 것은 쉽지도 않고 옳지도 않으니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틈새시장이다. 그 틈을 노리고 파고들어야만 하고, 맞춰야만한다. 최고의 버라이어티 MC였던 남희석이 미녀들의 수다를 매끄럽게 받아주는 방법을 익히고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듯, 그 역시 주변을 파악하고 자신이 추구할 방향을 조금은 숨길 필요가 있다. 부적절한 말이 늘어나면 좋지 않은 결과만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물론 지금의 신동엽도 충분히 훌륭하다. 또한 지금 예능과 교양 사이에 서 있는 신동엽의 위치를 끌어내릴만한 MC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다소 쉽게 또 소리없이 단번에 미끄러진 박수홍이나 남희석과는 다르게 그는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단단한 동앗줄을 쥐고 있기도하다. 하지만 훌륭하고 매끄러운 진행솜씨 뒤에 숨겨진 특유의 칼날을 너무 대중에게 들이댈수록, 그가 다시 톱으로 가는 반전의 기회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위치를 지키는 것은 쉽겠지만, 정말 그가 원하는 스타일의 개그를 추구하는 시대가 다시 왔을때 기회를 잡고 치고 올라갈 기회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말 시상식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대중이 그를 소비하는 하나의 패턴에 대해 더욱 더 자세한 해답을 남긴 계기가 될 것이다. 한 쪽 대중과 언론은 그에게 호평과 찬사를 보냈고, 한 쪽 대중과 언론은 그에게 비판과 악평을 쏟아냈다. 이토록 신동엽은 현재 차분하고 진지한 하나의 지점과 가벼우면서도 위트넘치는 한 지점의 중간 사이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 다시 톱의 위치로 올라설만한 반전의 기회를 잡길 바란다. 2008년 예능에서 부진했던 신동엽에게 2009년 새해가 새로운 반전의 계기가 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