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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이다해, 낙후된 드라마 제작환경의 희생양




                





배우 이다해의 에덴의 동쪽 중도하차 선언과 이어진 일련의 이야기들은, 낙후된 대한민국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재성찰의 계기를 준 중대한 사건이다. 단순히 이번 일을 드라마 주연배우가 극이 흘러감에 따라 자신의 비중이 줄어든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어 제작진에 항명하였고, 결국은 언론에 불만을 떠벌린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은 알맹이를 보기에 앞서 모래알을 보는 것에 그친 옳지 않은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의 흥행성적이 나쁜 상황도 아니고 한창 시청률이 정상권에 머무르고 있는 시점에서 출연중인 드라마에 대해 좋지 않은 푸념을 늘어놓았다는 점은 다른 면에서 해석하면 배우 입장에서 프로다운 행동이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모든 잘못을 이다해에게만 전가할 수 있을까?


이다해는 에덴의 동쪽 홈페이지에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괴롭고, 자신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지 알 수 없었으며, 이에 연기자로서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고 밝혔다. 스스로 자기 캐릭터에 이입되어 연기를 펼쳐야하는 배우 입장에서 이리저리 널뛰기하듯이 매주 바뀌는 시나리오와 자신의 캐릭터가 전혀 스토리와는 개연성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우회적인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그리고 이다해의 말처럼 에덴의 동쪽은 정말 '막장' 드라마가 지니고 있는 여러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가 기본적 구성과 흐름조차도 매끄럽지 않은 드라마다.

이다해가 맡은 혜린역은 당초 시놉시스에 의하면 송승헌이 맡은 동철역과 연정훈이 맡은 동욱 형제 사이를 오가며 팜프파탈적인 매력을 뽐내는 스토리 안에서 비중있는 이중적 카오스를 지닌 캐릭터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시놉시스와 현장에서의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며 혜린역은 선역도 악역도 아닌 주인공의 주변인물에 머무는 평면적이고 재미없는 캐릭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는 이다해가 자기 비중이 줄어든 것에 불만을 터트리고 치기어린 행동을 저질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캐릭터는 스토리가 흘러가는 도중에 드라마를 위해 필연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 아니라, 몇몇 캐릭터의 독단적 구성과 흥행성만을 노린 자극적인 상황에서 희생되었다. 만약에 그녀도 스토리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도중에 캐릭터의 희생을 요구받았다면, 캐릭터의 변화와 희생을 이해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변화에 전혀 개연도 없고, 스토리가 더 엉키는 문제만 발생했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에덴의 동쪽에 처음 등장했을때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캐릭터의 성격은 현재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전혀 개연성 있는 변화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다해가 맡은 혜린역뿐만이 아니라 연정훈이 맡은 동욱역과 박해진이 맡은 명훈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순수하고 바른 청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동욱은 극중 아버지인 신태환의 대사처럼 핏줄을 운운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 발맞춰 점점 폭력적이고 악독한 성향으로 바뀌어가고 있고, 지현을 겁간하고 동욱을 감옥으로 몰아붙이며 사악한 모습을 선보이던 명훈도 어느새 멍하고 선한 눈빛을 보이며 핏줄을 따라 순수하고 바른 청년이 되어가고 있다. 초반 드라마가 가지고 있던 시놉시스와 스토리 전개 그리고 인물들이 지닌 캐릭터의 모습들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모습으로 각본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에덴의 동쪽의 개연성을 가지지 못한 시나리오 변화는 많은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의구심을 불러일으켜왔다. 사실 위에 거론된 상황뿐만이 아니다. 여러모로 에덴의 동쪽은 시청자들의 입장을 등한시하는 시나리오와 시대를 제멋대로 건너뛰는 상황들 나이를 먹어감에도 전혀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때문에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원수간의 화해와 그 사이에서 피어날 인간적인 용서를 표현하겠다는 드라마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자극적인 복수와 조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낡고 구태의연한 출생에 대한 비밀 터트리기로 드라마의 인기를 유지시킨다는 비난도 일었다. 이다해의 발언은 높은 시청률에 가려져 그동안 타부시되어 거론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공개적인 석상으로 끌어왔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자신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만 그 캐릭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출연중인 드라마의 문제점과 이야기 주제를 내던진 이다해의 발언은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대다수 시청자들의 입장을 대변한 용기 있는 행동이기에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최근 KBS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과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연기중인 두 남자 주인공들이 연기력 논란속에서 희생양이 되고 있다. 강호세 역할을 맡은 박재정과 정교빈 역을 맡은 변우민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형편없는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하지만 배우를 비난하기에 앞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과연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가 연기 가능한 현실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대중이라면 배우의 잘못보다는 배우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환경과 여건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이다해 사건은 드라마의 모든 잘못이 오직 배우의 역량으로 귀결되는 나쁜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촬영 직전까지 확정되지 않은 쪽대본에 의지해야하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현실은 배우를 현실성 없는 캐릭터와 평면적인 뻣뻣함으로 내몰고 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주연배우인 문근영의 부상으로 몇 주 후도 아닌 바로 그 다음주 드라마 방영조차 하지 못했다. 제작사는 배우를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생각이 필요하다. 또한 흥행성만을 노려 자극적인 상황들을 끌어들이고 그 자극적 상황들에 제작환경을 내몰고 있는 제작사들의 행동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겉으로는 드라마 공화국 혹은 한류의 일등공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대한민국 드라마는 밑바닥부터 잘못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제작사들은 조금 장사가 되기 시작하자 한류 스타라는 이유로 배우들에게 억대의 개런티를 스스로 주고 스타들에게도 비정상적인 몇 천만원 개런티를 마음껏 뿌려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되려 자신들이 뿌린 씨앗임을 모르고 징징대며 배우들 때문에 드라마 산업이 망한다고 말했다. 바닥부터 잘못된 대한민국 드라마계의 현실은 결국 자신들간의 이전투구와 시청자들을 기만하고자했던 제작사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에도 그 책임은 정작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다해의 이번 중도하차는 어떤 의미에서든 배우의 입장과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해 대중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있고 복잡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제작사부터 변해야 한다. 그리고 낙후된 대한민국 드라마의 제작현장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다해처럼 낙후된 드라마 제작환경에서의 제 2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