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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나의 형이자 친구였던 원빈을 기억하다

오늘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봉준호 감독님의 신작인 영화 마더가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더군요. 대한민국 최고 흥행작을 연출하신 감독님의 신작이라, 대중들의 관심들이 꽤나 높은 것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지난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신 김혜자 선생님의 영화 복귀작이고, 군 제대 이후 처음 작품에 복귀하는 한류스타 원빈의 컴백 작품이기도 하죠. 저도 꽤나 주목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영화 자체만 놓고봐도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지만, 출연진 중에 한때 저와 동거(?)했었던 분이 이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에 각별한 관심이 갑니다. 당연히 김혜자 선생님은 아니고, 저에게는 도진이 형이라는 이름이 익숙한 배우 원빈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동거라는 표현을 사용하니까 뉘앙스가 좀 이상해지는데, 군대에 있던 시절 형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법한 지병을 하나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군대 시절 이게 문제가 되어 잠시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었죠. 그리고 그 곳에 입원해있으면서 형을 만났었습니다.


처음 만났었을 당시 형은 왼쪽 무릎에 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군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상태가 꽤나 심각했고, 좋지 않았습니다. 무릎 주위에 수술 자국도 심했죠. 당시 형을 담당하던 군의관이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경상도 분이었는데, 형의 무릎 MRI 사진을 보고 각종 사투리들을 섞어가며 어떻게 이 무릎으로 지금껏 군생활을 했느냐고 반문할 정도였죠. 하여튼간 무릎에 지지대가 되어줄 보조기를 착용하고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목발을 끼고 살았어야 했을만큼 형의 당시 상태는 꽤나 심각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형과 제가 어느 날부터인가 병원에서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처음에는 형이 워낙 대스타이고 군병원 안에서도 많이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 가까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 병실이 달라 마주칠 일도 없었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제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져서 여기저기 거치다가 형과 같은 병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서로 교류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뻘쭘하기만 했었죠. 그런데 서로 아프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곧 급속도로 단짝처럼 친해졌습니다. 

그 뒤로 같이 재활훈련도 받고 치료도 받아가면서 같은 병실에서 군병원 생활을 함께 해나갔습니다. 물론 군병원이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냥 가만히 편안하게 치료만 받을 수는 없었죠. 일도 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바깥 세상에서는 대스타에 한류스타로 불렸던 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도 병실 청소를 했었고, 병실 밖 복도 청소도 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식사를 끝내고 발작을 일으켜서 형이 제가 먹은 식판을 옮겨다준 적도 있었죠.

아무튼 그때 제가 경험하고 함께했었던 형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큰 꿈을 가지고 있는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었죠. 사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연예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연예인은 일반인들과 다른 세상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사는 기득권 세력처럼 보여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었죠. 

하지만 제가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바로 곁에서 함께 지내며 지켜보았던 형은 참 소탈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군병원 내에서도 성실하게 생활해서 병원내 간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병사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때 여러 고민들이 많았었는데, 제 고민들을 함께 덜어주며 형이 많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힘든 군생활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글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될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 인연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올려야하나 말아야하나 오랜 시간 갈등도 생겼고, 고민도 생겼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형은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에게 군대 의병 전역과 관련한 문제로 큰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인 군생활 회피를 위한 쇼가 아니었냐. 스타라고 준 특혜가 아니었냐. 이런 비난들이 아직도 인터넷상에서는 심하더군요. 그런 분들의 입장이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저도 형과 함께 생활해보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런 오해를 했을테니까요. 하지만 당시 형은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바로 옆 침대를 썼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당시 형의 몸상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새벽에도 무릎통증이 심한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끙끙대는 날이 많았었습니다. 괜찮냐고 물으면 늘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만, 사실은 많이 아팠을 겁니다.

또 결과론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 형은 군의관에게 소속부대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몇 차례나 피력했었습니다. 지금 당장 짧게 보고 중간에 전역하기보다는, 군생활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활동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형은 이 문제 때문에 꽤나 고민이 깊었습니다. 앞으로 군생활이 1년 3개월 정도 남았는데, 이 기간을 정상적으로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11년 아니 22년을 비난받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부대로 복귀해 군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군의관에게 간청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담당 군의관은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형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지금 상태로 군생활을 지속했다가는 평생 후유증이 올텐데 그 책임을 자기가 떠맡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형은 그 때문에 결국 의병 전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형이 당시 예상했던 그대로 지금까지도 몇몇 분들에게 비난받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네요. 진실과는 다른 내막이 있는데, 그 부분이 싸그리 무시당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아무튼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뭐 형은 지금도 몇몇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있는 처지에 있지만, 앞으로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이를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얼마 전에는 아프리카에 봉사활동도 다녀왔더군요. 또 좋은 감독님의 작품에서 건강을 회복한 모습으로 복귀한 것을 보니 반갑기도 했습니다. 함께 병원에 있었을 당시에 영화 이야기도 자주 주고받으며 곧 개봉할 작품이라며 영화 괴물 이야기도 서로 했었는데, 그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것이 운명같기도 합니다.

헤어지던 날에 나중에 내가 형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어 내 싸인을 받으러 찾아오게 만들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니까 형이 선물이라고 남겨준 싸인에 ‘정신차리고 다녀라’ 라며 웃으면서 싸인을 해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저도 벌써 사회인 딱지를 달고 바쁘게 세상을 누빈지 2년이 되어가고, 나름 지금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사느라 정신이 없네요. 아마도 형보다 유명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죠. 저는 형이 지금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이루지 못한 꿈까지 이룩해내 그때 가졌던 꿈처럼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그때부터 앞으로 하게 될 작품들에 기대와 꿈이 많았던 형이 부디 곧 공개될 새로운 신작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기를 바라고, 또 좋은 성과도 더불어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먼 곳에서 팬의 입장으로 앞으로 더 발전해나갈 형의 모습을 조용히 응원해주고 싶네요. 배우 원빈.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