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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정형돈의 희생정신, 프로그램을 살린다

사실 정형돈이 버라이어티에 처음 입성했을때 그가 지금까지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주축 캐릭터로 종횡무진 맹활약을 펼칠거라 예상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개그콘서트의 유치개그와 도레미 트리오, 개그콘서트의 갤러리 정으로 재주 있는 스탠딩 개그맨이라는 평가는 받았으나, 예능에 입성한 뒤로는 어설픈 말솜씨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버라이어티에 도통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규라인에 편입되어 동향 출신인 이경규의 도움으로 수많은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과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나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정형돈의 모습에 비판의견을 쏟아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버라이어티 입성 4년차를 맞이해가는 지금의 정형돈은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윤활류로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에서의 희생


그의 첫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상상원정대의 조연출이 바로 현재 무한도전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김태호 PD였고, 그는 과거의 인연을 바탕으로 자신이 재구성한 무한도전 - 퀴즈의 달인의 고정 멤버로 정형돈을 합류시켰습니다. 당시 무모한 도전의 주축 멤버였기에 고정 출연이 확실시되던 쿨의 김성수가 드라마 촬영을 이유로 고정합류를 고사한 것 또한 그에게 호재였습니다. 그가 무한도전의 고정 멤버로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연이은 행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렵사리 무한도전에 입성했으나 그는 도통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호통개그로 절정의 인기를 달리던 박명수가 애써 벌이는 상황극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며 프로그램을 루즈하게 만들었고,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에도 원할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캐릭터가 없이 자주 붕 뜨는 문제점들을 노출하였습니다. 그나마 유지하던 뚱보 컨셉조차 식신 정준하의 무한도전 고정 합류로 어려워졌고, 그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내몰립니다. 하지만 그 순간 하하에 의해 건방진 뚱보 컨셉에 실패한 그에게 성공적인 캐릭터가 하나 주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어색한 뚱보 컨셉입니다.


이는 정형돈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색한 뚱보 컨셉은 무한도전내에서만큼은 상당히 좋은 캐릭터가 될 확률이 높았으나, 프로그램외 다른 버라이어티에도 출연해야 할 그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 그는 무한도전보다 훨씬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나 다름없던 상상플러스의 고정MC였기에 자신의 캐릭터를 희생해가며 무한도전에 충성심을 보일 필요성은 없었습니다. 웃기지 않고 어색하다는 이미지는 버라이어티에 출연해야 할 개그맨에게는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정형돈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이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정형돈의 무한도전내 이미지 정착이 이루어지고, 하하와 정형돈의 친해지길 바래가 방영된 이후 무한도전은 특유의 캐릭터 놀음이 완전히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시청률은 급경사하기 시작했고, 무한도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허나 시청률 급경사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데로 정형돈의 어색한 컨셉은 그에게 좋지 않은 독으로 작용되고 맙니다. 그는 출연중이던 다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어색하다는 낙인이 찍힌채 자신감을 살리지 못하며 어려운 방송을 해나갑니다. 무한도전은 날이 갈수록 우리나라 최고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있었으나, 캐릭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그는 기여한 것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데 성공합니다. 하하의 입대 공백으로 생긴 무한도전의 결점을 가리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에 진가 또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그의 헌신적인 희생은 곧이어 새로운 성공으로 귀결됩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섭외 1순위로 통하는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맨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프로그램을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내던졌던 정형돈의 진심어린 승부는 이렇게 통한 것입니다.

정형돈의 승부수는 계속된다


그는 최근 2-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절대적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에 MC로서 출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오리와 함께 커플을 이루어 아예 프로그램에 가상 부부로서 직접적으로 참여하였으나, 곧장 많은 대중들의 비판들 속에서 하차하는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마초적인 이미지가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생활에서 아무리 그가 우결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 형편없이 나쁜 남자라도, 프로그램에서 사오리에게 일을 모두 떠넘기고 진상을 부리는 모습들 모두 정형돈 개인의 판단으로 일으킨 일들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알렉스나 서인영과 같은 우결의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리얼버라이어티라지만 우결 역시 작가의 꼼꼼한 각본 아래에서 쓰여지는 캐릭터 놀음을 지닌 엄연한 방송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정형돈은 애초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우결 내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희생섞인 변신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호불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실상 우결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플을 꼽아보라면 단연 서인영 - 크라운J 커플을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서인영은 우결 덕분에 된장녀라 불리며 지탄받기도 했던 현대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고, 랩퍼로서 데뷔하였으나 그닥 인지도 있는 가수는 아니었던 크라운J 또한 우결 덕분에 톱스타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개미커플에게서 전과 같은 활력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보여줄대로 보여준 재미요소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해볼만한 것들도 모두 다 해본 상태라 가상 신혼 생활의 긴장감과 재미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 와중에 새로운 커플들과 함께 여행형식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개미투어가 실패로 끝난것도 그들에겐 악재로 작용되었습니다. 일각에서 솔비 - 앤디 커플처럼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들 커플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커플의 가상 신혼생활에 정형돈이 새롭게 투입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투입 자체는 사실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실패를 겪은데다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기억되었던 캐릭터 그대로 합류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형돈의 마초적인 캐릭터는 서인영의 발랄하고 톡톡 튀는 캐릭터와 부딪쳐 엄청난 재미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확률이 큽니다. 실제 그의 투입 첫 회가 방영된 직후 그가 프로그램에 매우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실패를 겪은데다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만 안겨주었던 우결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같은 캐릭터로 합류하기로 결정한 그의 희생정신은 확실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신과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예능인 정형돈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과거 무비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정형돈을 말하며 비상하게 머리가 좋고 훌륭한 예능감각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프로그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인물이라며 그를 칭찬한 바 있습니다. 한참 정형돈의 버라이어티 무임승차 논란을 일으켰던 때의 인터뷰라 당시에는 그 말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최근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긍정적으로 느껴집니다. 

실패하더라도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자신을 바꿔가려 노력하는 정형돈. 그를 보는 일이 점점 즐거워지는 이유입니다.


- 날이 쌀쌀합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십시오. 감기에 걸린 탓에 열이 42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