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뷰라의 연예스토리

꿀벅지는 성희롱, 살랑살랑 춤은 퍼포먼스(?)

현재 일고 있는 꿀벅지 명칭 논란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여성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성적 모욕감이다. 일부 여성들이 꿀벅지라는 명칭을 불쾌히 여기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사실 꿀벅지는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도 좋은 표현이라 보기 어렵다. 몇몇 남성 네티즌들이 여성의 허벅지를 먹는 식품과 비교해 놓고 극히 외설적인 성적 표현 발현만을 위한 목적으로 끌어다 쓴 명칭을 대중이 이해하고 납득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런 명칭을 몇몇 언론과 방송이 재생산해내며 마치 새롭고 대단한 신조어가 생긴 것처럼 인식해 대중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보편적인 문화의 단면으로 전파시키는 현실도 분명 큰 잘못이다. 이건 분명히 옳지 않다.

하지만 이런 꿀벅지 명칭사태에 숨어있는 성희롱 논란을 바라보는 일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이유는 오직 대중이 꿀벅지라는 표현 속에 숨어있는 여성의 성적 불평등과 성희롱 논란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몸짱 신드롬 당시 일었던 남성의 초콜릿 복근을 바라보던 일부 여성들의 삐뚤어진 시각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당시 방송과 언론을 통해 다수 여성들은 남성의 신체인 배를 초콜릿 혹은 빨래판에 대입시키며 자신들의 성적 목적 발현과 가치관의 적용을 위해 남성의 감정을 유린하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 당시 분명 토론이 필요했지만 긴 시간 이는 외면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꿀벅지라는 표현에 적극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동안 남성은 초콜릿 복근이라는 표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일까. 이는 사회 도처에 깔린 의외의 역차별이 만드는 문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권위를 상징하는 중심에 있으면서 한 편으로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그들은 무조건 여성과 동등하고 평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현대적인 의무감에 시달리지만, 한 편으로는 여성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해야 하고 참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와중에 남성은 은근히 표현되는 몇몇 차별에 시달리면서도 입을 다물기를 강요당한다. 불평등하고 좋지 않은 레이디 퍼스트 문화가 틀에 박혀버린 대한민국의 사회적 상황도 문제지만, 특히 민감한 것이 앞서 말한 성적인 문제다. 물론 여성과 남성의 상황을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더 성적인 차별과 불평등에 시달리는 이는 당연히 여성이다. 하지만 꿀벅지로 불평등과 고통에 시달린 이후 여성들이 발언권을 가지는 최소한의 기회를 가지는 것과는 달리 남성들은 초콜릿 복근에서 느낀 스트레스에 불만조차 터트릴 기회를 잡지 못한다. 이 사실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남성의 성적 유린이 만들어지는 현실과 이어지는 침묵 또한 생각하고 토론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최근 쥬얼리의 신곡 Vari2ty의 안무를 보면 대표적으로 이런 남성의 성적 가치관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여성성의 발현과 기치에 대해 말하는 이 곡의 가장 중점적인 클라이맥스 부분은 이들이 히트를 노린 것으로 보이는 살랑살랑 춤이 나오는 곡의 후렴에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남성 백댄서들은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은 손을 마치 코끼리 코처럼 흔들어댄다. 이는 오버일수 있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면 남성의 생식기를 비웃듯 표현한다고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퍼포먼스를 가장한 남성에 대한 성적 모욕 의도가 담긴 성추행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표현되는 이들의 모습은 퍼포먼스라는 당위성 아래 합리화되고 있고 남성의 관점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의 이야기조차 없었다.

물론 몇몇 이들은 꿀벅지는 성적인 관점에 이용되었고 초콜릿 복근은 건강한 관점을 바라보는 상황에 이용되었으니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강한 차별과 성적 모욕이 각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금 남성에 대한 성적 차별이라는 것이 실제 존재하고 그걸 말해야 할 필요나 있냐고 되묻기도 한다. 하지만 꿀벅지가 잘못되었다고 사회적 논의가 일어나면서도 명백히 남성을 모욕한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퍼포먼스에는 전혀 의혹조차 제시되지 않는 현실을 과연 옳다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남성들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다. 하지만 꿀벅지로 여성에게 가하는 불쾌감을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초콜릿 복근이라는 명칭으로 남성이 느끼는 불쾌감은 민감하고 예민한 것이라고 여기는 비틀어진 사회의 분위기에도 분명 잘못이 있고 문제가 있다. 꿀벅지라는 표현을 듣기 싫어하는 일부 여성이 당당하게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호소할 수 있는 것처럼, 쥬얼리가 남성 가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남성을 향한 성희롱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대중의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 평등이 열릴 수 있고 여성에 대해 이루어지는 잘못된 성의식과 차별 또한 뿌리 뽑을 수 있다.

차별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할 악이다. 그것은 여성에게든 남성에게든 모두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꿀벅지가 성희롱이라는 대중의 문제제기가 있으면서도 반대로 남성에 대해 음지에서 아는 듯 모르는 듯 진행되며 문제조차 제기할 수 없는 성희롱을 당연하다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는 부당한 것이다. 꿀벅지는 성희롱이지만 살랑살랑 춤은 퍼포먼스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한 이 사회에 제 2 제 3의 꿀벅지와 같은 용어가 생기고 이와 관련한 논쟁과 문제 또한 앞으로 계속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