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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불필요한 김혜수가 이지아를 죽였다

일부 축구 평론가들이 골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가함에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건 축구가 11명이 하는 스포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지성은 그라운드 위의 조연이다. 주연처럼 빛나지 않고, 주연처럼 화려하지 않고, 주연처럼 나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기 위치에서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는 인물이고, 그래서 동료들과 팬들 그리고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인정받는 선수로 불린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해보자. 만약 경기장 위를 달리는 11명의 선수가 모두 주인공 역할만 하려고 든다면, 그 팀은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비하는 선수도 필요하고, 공격하는 이를 뒷받침해줄 선수도 필요하다. 그만큼 주연의 자리에서 골을 넣는 선수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조연의 역할은 중대하고 또 중요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축구의 법칙은 드라마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한 편의 드라마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주연의 역할만큼 조연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조연이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주연의 캐릭터가 자리 잡고 완성되어야 할 시점에 조연이 자기 캐릭터만 주구장창 드러내며 선두로 뛰쳐나가 버린다면? 만약 호날두가 공격을 전개하는 시간에 박지성이 전혀 이를 커버해주지 않고 자기도 골 욕심을 부리며 앞으로 뛰쳐나갔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맨유는 승리할 수 있었을까. 아마 십중팔구 패배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 여기서 이 기준과 법칙을 다시 드라마에 적용시켜보자. 최근 몇몇 대중들은 스타일의 주연 이지아를 비판하느라 바쁘고 비판의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드라마 속 조연을 맡은 김혜수보다 훨씬 뒤떨어지며 약해 보이고, 드라마 속에서 김혜수보다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주연인 그녀의 모습을 오직 두드러지는 조연 배우와 비교하며 약하니까 또 약한게 조연보다 연기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평가는 옳은 것일까.

물론 김혜수의 연기는 뛰어나다. 그녀는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완벽한 분석 아래에서 100% 아니 120% 이상의 모습으로 풍부한 감수성까지 곁들여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하지만 김혜수가 스타일 속에서 주연인 이지아보다 두드러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그녀의 연기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원래 그녀가 빛나게 해줬어야 할 이지아의 희생, 즉 주연의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몇몇 대중들은 스타일의 주연은 이지아인데 왜 김혜수만 빛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지만, 어느 누구도 왜 이지아가 빛나지 못하고 김혜수만 빛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제대로 뜯어보면 드라마 속 이지아는 연기력을 떠나 김혜수에게 도저히 캐릭터로 상대가 될 수 없다. 저녁 먹었냐는 질문에 쿨한 표정으로 끊었다고 말하고, 아부를 떨어대는 상사와는 달리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적극적인 키스로 쟁취해내려는 너무나 완벽해 흠 잡을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조연을 상대로, 자기가 맡아야 할 임무 내팽개치고, 어린 여자 친구를 대동한 남자 친구를 상대로 찌질하게 육탄전이나 벌이는 주연을 좋아할 수는 없다. 애당초 이건 관계가 역전된 상황극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생각해보라. 베토벤 바이러스 속 강마에를 앞에 두고 당해줘야 할 송옥숙이 도리어 그에게 야 이 똥덩어리 같은 자식아라고 외쳤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강마에가 주연으로서 유지해야 했을 카리스마와 권위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택도 없는 소리다. 즉 드라마 속에서 골을 넣어야 했을 이지아는, 조연을 맡아 뒤를 봐줘야 했을 김혜수의 독단적인 플레이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원래 주연은 그녀고, 그녀가 좀 더 두드러질 수 있도록 또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 임무를 맡은 이가 김혜수였음에도 그녀는 가차 없이 자기만 빛났고, 주종관계를 역전시키며 드라마를 아예 비틀어놓는 비극을 만든 것이다.

현재 스타일은 전작 찬란한 유산의 인기를 이어나가지 못하며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그리고 김혜수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좋지만 드라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평가들은 냉혹하고 싸늘하기 그지없다.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세계문학상을 받은 탄탄한 원작 소설 스타일 속에서는 김혜수가 맡은 박기자라는 인물은 큰 비중을 지닌 캐릭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은 드라마로 옮겨지면서 또 김혜수라는 거대 스타가 캐스팅 되면서 유지해야만 했던 소설 속의 내러티브를 잃었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종류의 미국산 칙릿을 따라하는 한국판 짝퉁 칙릿 소설이 되었다. 소설 원작이 추구하던, 스테이크를 썰면서도 은은한 된장국 냄새가 흐르도록 만들었던 희망 섞인 문학은 사라지고, 된장국을 먹으면서도 뉴요커처럼 포크로 국을 떠먹는 기이한 장면을 보여주는 미국산 짝퉁 드라마를 내보내고 만것이다.

기대작 스타일은 이지아가 아닌 김혜수 때문에 엣지도 스타일도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박지성이 공격하느라 호날두가 수비하고, 박지성이 단독 돌파하느라 루니가 패스해주는 그런 기이한 맨유 경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과연 그것이 정상일까? 불필요한 조연 김혜수는 이지아를 죽였고, 드라마 전체를 죽였다. 조연 하나를 빛나게 만들기 위해서 주연부터 드라마의 내용까지 모두 산으로 보내는 우를 저지르며 스타일은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