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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K리그

이천수, 제대로 알고 죽여라

이번 이천수 파동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해석하든 일단 이천수가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본의가 아니었음에도 기자가 악의적인 목적으로 소설을 썼든, 사실이 아닌 내용이 부풀려져 그의 의도가 크게 왜곡되었든, 어쨌든 그는 다시 대중들의 입방아와 구설수 위에 오르고 말았다.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다짐을 한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고, 위기의 순간 자신을 믿어주고 신뢰했던 스승과의 약속을 저버린 배신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픈 사건이다. 그렇기에 일각에서 일고 있는 이천수에 대한 비난 섞인 의견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다시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이천수에 대한 대중들의 격렬한 비난을 지켜볼수록, 무언가 중요한 다른 핀트 한 가지가 누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천수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천수를 엇나가도록 만든 전남 구단과 K리그 연맹 그리고 언론의 태도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엄연히 따지고 보면, 지금 전남 구단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나 K리그 연맹, 언론 크게는 타 구단들까지도 이번 이천수 파문 사건의 명백한 가해자들이다. 애당초 이천수를 이렇게 엇나가도록 만든 이면에 K리그 구단들이 보여준 담합과 집단이 가진 폭력과 힘의 논리가 큰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천수가 누구의 말처럼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지어도, 어찌되든 그가 대한민국에서 정상급 재능을 가진 축구선수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겨울이적 시장에서 수원에서 임의탈퇴 된 그를 원하는 구단은 K리그에 없었다. 수원에서 그가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구단간 무언의 담합이 있었고, 이는 기사로도 밝혀진 사실이다. 이천수가 실력은 있지만 태도가 불량하기에 K리그와 구단들이 집단의 힘을 이용해 그를 외면하고 왕따시키는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전남의 박항서 감독은 왜 위험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모두가 외면하던 이천수를 영입한 것일까. 정말 그가 대표팀 시절의 애제자인 이천수에게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영입한 것일까. 물론 그랬을 확률이 아주 제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천수의 축구 실력이 없었고, 그의 필요성이 없었다면 박항서 감독이 그를 끌어안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의 그라운드 위에서의 재능과 실력 그리고 상업적인 이슈를 전남과 박항서 감독은 탐냈고, 그런 이유로 그를 영입한 것이다.

이천수는 전남 입단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스타 이천수의 가세는 전남에게 큰 이슈를 제공했다. 또한 K리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MVP까지 차지한 경험을 지닌 이천수는, 꼴찌였던 전남을 나락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천수는 실력과 마케팅에서 모두 기대 이상의 실적을 구단에 제공했음에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구단은 그의 연봉을 백지위임했다는 이유로 큰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그의 연봉을 다른 구단의 간판급 선수들과 후배들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책정했다. 이천수는 최고의 실력을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줬음에도 자신이 뿌린 죄의 대가라는 이유로 돈을 받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프로선수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구단은 계속 신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좀 더 솔직해지자. 선수와 구단은 본래 상업적인 파트너 관계다. 프로의 논리에 신의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신의만으로 프로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전남은 과거 팀의 상징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도근의 가치가 떨어지자 그를 수원에 팔아넘겼다. 또한 2002년 월드컵 이후 팀의 상징이던 김남일도 자유계약 선수로 풀릴 것이 예상되자 돈을 챙기기 위해 재빨리 수원에 팔아치웠다. 또한 그들은 고종수를 팀에 데려왔지만, 임의탈퇴 상태로 그의 발목을 묶어두다가 방출시키기도 했다. 그 뿐인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연습생으로 있었던 기존 선수들도 꽤나 많이 해고했다. 물론 이런 전남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프로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통용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인 것이 왜 구단은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울 때는 신의를 운운하면서, 선수 개개인의 입장을 내세우는 순간에는 돈을 중요시 여기냐는 것이다. 솔직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의가 아니라 돈 아닌가.

그리고 이천수가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전남 구단은 과연 이천수에게 신의를 지켰나. 이천수는 올초 자신의 잘못이라지만 굴욕적인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소속팀 전남은 연맹이 내린 결정에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과거 수원의 용병이었던 데니스는 경기 도중 상대팀 부산의 선수인 김주성의 얼굴을 밟는 행동으로 큰 구설수에 올랐지만, 소속팀 수원은 적극적으로 그의 변호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일반적인 구단이 자기 선수에게 애정과 신의를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당시 전남은 이천수를 거의 완전히 외면했다. 당시 언론들의 기사만 놓고 보면 전남 구단은 도리어 이천수를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이천수라는 선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금전적으로도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도 그를 진정한 프로 선수로 대우하지 않고 마치 종처럼 부렸다. 그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연승행진으로 이끌었음에도 보너스나 당근이 아닌 다른 팀으로 가버릴 상황을 우려해 위약금을 물어내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도록 종용한 것이 실제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물에 빠진 네 놈을 우리가 건져 올려줬으니 우리 마음대로 쓰고 버리겠다. 선수에게 신의를 강조하는 전남 구단은 막말로 이런 식의 지독한 상업적인 논리를 자신들에게만 적용시킨 것이다.

이천수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천수, 분명히 잘못했다. 그러나 신의라는 것은 결코 선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고, 선수 혼자 짊어져야 할 멍에가 아니다. 이천수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그를 싫어하던 기존 언론은 또다시 그를 죽이기 위해 사실을 왜곡, 과장하고 있고, 밉보인 이천수를 더 가혹한 방법으로 내치기 위해 정작 자신들은 상업적으로만 행동하는 구단과 연맹은 신의를 운운하며 이천수를 비난하고 있다. 평소 자신들 직원과 선수를 해고하고 연을 끊는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칼날 같은 이들이 정작 프로선수에게 자신들은 베풀지도 않은 신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추측과 구단이 제공한 언론 기사를 근거로 물고 늘어져 마구잡이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전직 대통령을 자살하도록 만든지 이제 몇 개월이 지났나. 신의라는 단어 하나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이를 감상적인 차원으로 끌고 가는 행위는 정말이지 위험한 짓이다. 이천수가 신의를 지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구단 또한 이천수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수차례나 강조했지만, 분명 이천수가 잘못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를 죽이더라도 도대체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알고, 구단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제대로 알고 확인한 뒤에 죽이자. 도대체 이천수만 무슨 죽을죄를 저지른 것처럼 묘사하며 이렇게 호들갑들을 떠는 이유가 과연 무엇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