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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유재석, 박명수를 감싸지 마라

대한민국 예능계를 대표하는 단짝을 꼽아야만 한다면 과연 어떤 이들이 대중들에게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옵션이 될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100에 90 정도가 유재석, 박명수 콤비를 최우선으로 선택할 것이다. 토크쇼 놀러와를 통해 진행자와 패널로 첫 만남을 가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은, 최근 방영되는 무한도전, 해피투게더에 이르기까지 벌써 몇 년째 명콤비로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긴 역사만큼이나 이들 콤비가 지금껏 거둔 성과는 대단히 훌륭하기 그지 없다.

유재석 박명수 두 콤비의 활약으로 시작점에 선 무한도전은 이후 발전을 거듭하며 다른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들을 재미, 의미 게다가 압도적인 스케일까지 더해 짓누르며 사실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으뜸 버라이어티로 자타공인 인정받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토크쇼 해피투게더 또한 몇 번의 개편을 거치며 이제는 완연히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목요일 심야 예능의 절대적 강자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사람이 지금까지 이렇게 긴 시간동안 콤비 플레이를 이어오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전무했다. 한때 유재석이 후배인 이혁재에게 박명수의 개그 스타일이 너무나 싫다고 토로했을만큼, 겉으로나 속으로나 이 두 사람은 도저히 들어맞는 부분이나 공통점 혹은 어울리는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이, 이 두 사람의 빛나는 콤비 플레이는 이런 불협화음 덕분에 가능했다. 박명수는 대단히 자기 중심적인 방송을 한다. 여타 MC들을 두 손 두 발 들게 만들만큼 방송인으로서의 자신의 고집과 주관이 강하고 스타일의 호불호가 뚜렷하다. 그런데 유재석은 대단히 이타적인 방송을 한다.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편안한 방송을 유도해내고 자신의 활약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끌어안는 포용력 또한 존경심이 일어날 정도로 드넓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는 가능하고, 유효했다. 어떻게보면 물과 기름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이들은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콤비 플레이에 영원이라는 표현을 쓰며 유효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는 회의적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이와 같은 콤비극이 이제 유재석의 능력을 깎아먹고 그를 뒷걸음질 하도록 만드는 악수가 된다는 점에 있다. 이를 다시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돌아와 상황을 대입시키면 악어새가 악어의 이빨에 낀 찌꺼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악어의 몸통까지 뜯어먹고 이빨을 뽑아내려고 시도하는 부분이 문제되는 것이다. 유재석은 막무가내인 박명수로 인해 자신의 포용력과 정리 능력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이미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박명수의 막무가내로 얻는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

사실 유재석은 다재다능하다. 그는 끌어안고 포용하고 정리하는 능력도 단연 국내 최고지만, 이는 그가 가진 수많은 최고의 장점들 중에 몇 가지 부분일 뿐이다. 그만큼 유재석은 토크, 꽁트, 연기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압도적인 능력과 실력을 두루 갖춘 예능계의 호나우두이며 메시다. 그러나 유재석은 유독 박명수와 방송하며 변화하지 않는 올곧은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며 끌어안고 포용하고 정리하는 스타일 외에 다른 부분들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박명수라는 특정 인물의 능력과 수준에 맞춰가느라 자신이 가진 여러 완벽하고도 훌륭한 기량들을 썩이며 대중들에게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유재석과 박명수 두 콤비가 지금 당장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전략적인 유대관계는 계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콤비 플레이는 분명히 아직까지 유효한 부분도 또 훌륭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예능인 박명수가 계속 발전 없이 지금 상태에서 제자리걸음만 반복한다면, 유재석이 무리해가며 그를 계속 끌어안는 위험을 감수할 수 필요는 없다. 유재석은 완벽하다. 깨끗한 사생활과 태도 기량을 두루 갖춘 그는 큰 이변이 없다면 앞으로 20년 혹은 30년 이상 대한민국 예능계의 중심에서 구봉서와 이주일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상징이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또 모르는 것이다. 10년전 당시 최고였던 이홍렬이 언젠가 케이블에서조차 외면당하게 될 것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또 5년전 당시 최고였던 신동엽이 시청률 1.8% 프로그램의 MC로 전락하며 그마저도 PD인 아내 덕분이라는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을 예측했던 이도 없었을 것이다. 유재석은 완벽하지만, 그는 유독 주변에 많은 불안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그 또한 무너질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벌써부터 유재석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이들의 수준에 맞춰가느라 자신의 높은 수준을 뽐내지 못하고 있다. 또 이런 현상이 이어지면 박명수가 유재석의 미래에 큰 걸림돌이자 위험요소가 될 확률이 아예 없다고 확언할 수 없다.

유재석은 지난 놀러와 절친 특집에 박명수를 섭외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박명수를 대동해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유재석도 그렇게 방송에서 박명수와 얽히게 되는 상황들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가 더 박명수를 무리해 감싸안으면 안을수록, 박명수는 지금처럼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박명수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할수록 부족한 단점이 많은 그는 더 퇴화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콤비극이 무너지는 상황과 더불어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대비할 틈도 없이 최고인 유재석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예능인은 늘 대중이 식상하게 느낄 상황이나 문제점들을 그들이 느끼기에 앞서 마땅히 경계하고 조심해야만 한다. 유재석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무려 10여년이 넘는 긴 무명생활을 겪어야만 했다. 그만큼 예능계와 연예계는 정당한 대접을 받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오직 실력과 의지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공간인 셈이다. 대중은 변덕이 심하고 서바이벌의 장에서 연예인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지켜보길 좋아한다.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발걸음이나 행동을 잘못했다가 무너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연예인들의 숫자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니 유재석도 이제 신중할 필요가 있고, 그가 박명수를 더 끌어안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 끝없는 불안요소를 굳이 그가 안고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리해서 내칠 필요도 없지만, 무리하며 감싸다 함께 죽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유재석도 롱런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실력자라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