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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전지현과 블러드, 영상 테러의 가해자

블로그를 통해 연이 닿은 기자분 덕분에 배우 전지현의 해외 진출작 ‘블러드’를 극장 개봉 전에 미리 감상하는 행운을 안았다. 간략하게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공짜로 감상한 작품이었는데도, 영화를 지켜보았던 내내 이해 안되는 부자연스러운 스토리 전개와 완성도에 미치지 못한 액션신들 때문에 대단히 큰 실망스러움을 느꼈다.

사실 애당초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미 디워를 보며 노골적으로 액션만 강조하며 세계화를 운운하는 영화에 기대를 가질수록, 더 데이기만 한다는 쓰라린 경험을 미리 겪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종류의 영화로 소개되고 있지만 지적인 영상미학을 보여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급 영상은 애당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리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최소한 디워보다는 나을거라는 기대감 하나 가지고 극장 안으로 들어섰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상한 뒤 바랬던 결과는 상상 그 이상으로 처참했다. 영화에 투자했다는 제작비 500억을 불태워 공중에 잿더미로 흩날린건지, 아니면 땅 깊숙한 곳에 묻어 잠자도록 만든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화끈한데다가 완성된 형태의 진화적 액션신을 선사하겠다는 유일한 공약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단 한순간도 지켜지지 못했다. 조잡한 CG와 맥아리 없는 칼부림만 상영 내내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뿐이었다. 뱀파이어 요괴들과 싸우고 그들을 베는 만화같은 장면들은 끔찍하기보다는 우스웠고, 처절하기보다는 안쓰러웠다. 스포일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마지막 장면에서 최종보스와의 전형적이고 어설픈 매트릭스 따라하식 액션 대결에선, 정말 입가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근래 보았던 꽤나 많은 영화 중 코미디 영화를 포함해서도 가장 최악이다 싶을 정도로 극히 낮은 완성도의 작품이었다.

다행인 것은 이 끔찍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영상이 그나마 관객의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짧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1시간 20분을 갓 넘긴듯한 상영 시간 내내 계속 시계를 쳐다보느라 바빴고, 엄청난 괴로움을 느꼈기에 사실 이는 장점도 되지 못했다. 그만큼 짧은 상영 시간과 관객이 느끼는 체감적인 고통은 반비례했다. 길고 지루하고 극히 짜증스럽기만 했다.

주인공인 전지현에 대해서는 이 영화 한 편만으로 연기에 가혹한 잣대나 평가를 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사실상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줄만한 기회도 거의 없었고, 어설프게 처리된 CG의 향연 속에서 그녀도 영화의 피해자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듯한 전지현만의 고정적인 연기 패턴과 제자리걸음의 반복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실망스러웠다. 그만큼 이 영화 속에서의 전지현은 이제는 진짜 남아있는 약간의 기대감마저 접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일 정도로 처참했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속에서 단순하게 화장을 하지 않고, 발랄하지 않다고 엽기녀를 벗어던졌다고 여기는 듯했던 그녀에게 느낀 실망감은, 그만큼 이 영화에서도 유효하게 유지되었다. 그녀는 극중 캐릭터인 뱀파이어 헌터처럼 무색무취한 영화 속에서 관객들을 향한 무시무시한 살인자이며 가해자였다.

시종일관 딱딱한 표정으로 기계적인 스킬로 내뱉는 대사에서는 전혀 관객과의 감정적인 교류를 찾아볼 수 없었고, 이는 그나마 없어 보이는 캐릭터의 표면적이고 단순한 모습에 불을 지르는 악수가 되었다. 또한 감정적인 장면뿐 아니라,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액션신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들 또한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예쁘게 찍어주려고 아예 작정 하고 들어오는 듯한 얼짱 각도식 카메라 앵글 속에서, 전지현은 뱀파이어 헌터로서 제대로 된 힘과 파괴력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장면들이 거의 전무하다. 영화 킬빌에서 우마 서먼이나 루시 리우에게 느껴지던 지독한 살기 혹은 파괴력과 힘은 이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만화처럼 흩뿌려지는 피다발 속에서 그저 웃음만 터지는 서커스같은 장면만 가득하고, 지극히 한심하다. 이토록 영화가 심층적으로 강조하고자하는 액션신에서조차 전지현은 무기력했다. 윤발이 형님이 나와 80년대 쌍권총 날리던 홍콩 느와르도 아니고, 수백번의 칼질을 마친 헌터의 옷에 피 한방울 묻지 않는 리얼리티와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의 착지만 연속해 보여주는 이 영화의 액션신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실망스러운 영화 관람을 끝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여러 고급 소식들이 가장 발빠르게 올라오는 다음뷰에도 블러드 관련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곳이기에 흥행에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일본 현지에서도 이 영화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뉴스를 읽으며 절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극장에 가서 - 물론 돈과 시간이 매우 많으시다면 - 확인하시길. 그나저나 이 영화 3부작으로 준비했고, 그래서 앞으로도 2부작을 더 제작한다는데. 음. 그냥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제발 좀. 이런 영상 테러의 가해작을 한 편도 아닌 두 편이나 더 보고 싶어할 관객들은 전무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