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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

박주영, 포스트 박지성이 될 수 있다


이번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가 끝나고 대한민국 팀의 저조한 공격력에 대한 모든 비판의 화살이 이근호에게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저조한 유효슈팅과 극히 효율성 낮은 공격만 전개하던 대표팀 공격진용에서 톱의 다른 일원인 박주영이 보여준 움직임 또한 충분히 문제시 삼을 수 있다며 그의 퍼포먼스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박주영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의 소속팀에서의 저조한 득점력을 문제삼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가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하기에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물론 몇몇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의견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만큼 모나코 진출 이후의 박주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수치의 저조한 득점력으로 최전방 공격수로서의 기록이라고 보기에 다소 실망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K리그 데뷔 첫해였던 2005년도에 박주영은 무려 30경기에 출전해 18골을 쏟아부었다. 당시 국가대표 출신의 수비수이자 울산의 주전 수비수였던 조세권은 그를 상대한 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있으며 용병까지 통틀어 K리그 최고의 공격수"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 박주영의 득점감각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또한 대단했다. 그는 대표팀 데뷔전이었던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팀을 패배의 수렁에서 구해낸 극적인 동점골을 작렬시키기도 했고, 이어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선취골까지 기록해내며 대한민국팀의 월드컵 본선티켓을 확보해낸 주역이기도 했다. 그 당시 박주영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득점기계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갓 스무살을 넘긴 나이에 주목받았던 그의 봄날은 그닥 길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 16강 진출 티켓이 걸려있던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 선발 출전하는 기회를 잡았으나, 장신의 유럽 수비수들에게 철저히 힘에서 밀리는 모습을 노출하며 자신의 한계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또한 이와 같은 현상은 프로 무대로 연이어졌고 힘을 주무기로 거칠게 대인마크를 가하는 K리그 수비수들에 밀려 그는 이듬해 18골이던 골 기록도 8골이라는 수치로 추락하고 만다. 이장수 감독은 연이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박주영보다 김은중과 정조국을 스타팅으로 기용하는 횟수를 늘려나갔고, 그는 이내 프로 무대에서마저 벤치로 밀려나며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박주영이 그 당시 외면당한 가장 큰 이유는 팀원들과의 유기적인 움직임 부족과 몸싸움과 체력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게 눈에 띠었기 때문이었다. 득점기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팀 플레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선수에 가까웠던 것이다. 당시 박주영의 소속팀에는 이을용이나 이민성과 같은 수비능력이 좋은 미드필더들이 든든하게 허리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지 못하고 늘 거칠게 달려드는 상대 수비수들의 마크를 이겨내지 못하는 박주영은 공격진용에서 자기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번뜩이는 재주로 어메이징한 골을 완성해내는 경우도 있었으나, 뛰는 폭이 좁은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으니 상대 미드필더진의 압박에 팀 전체가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 때문에 팀 플레이와 조직력까지 완전히 와해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났다. 수비수들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는 박주영에 대한 무조건적인 특혜가 팀 전체가 망가지는 악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던 것이다. 귀네슈 감독이 새롭게 서울의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에도 이같은 이유로 박주영은 긴 시간동안 스타팅에서 배제되는 일이 잦았다. 이청용 기성용과 같은 젊은 선수들이 팀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각광받기 시작했음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서 정체되며 발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어렵사리 르샹피오나 모나코로 도전을 결정한 이후부터의 박주영은, 예전의 모습들보다 훨씬 발전되고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앞서 말했던 것처럼 득점력에 있어서만큼은 그닥 만족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청소년 무대에서나 통할법한 골기록으로 겉만 번지르르했던 과거와는 달리 점점 속이 꽉찬 실속있는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큰 무대를 누비며 훌륭한 경험들을 쌓아나가고 있고, 유럽 선수들과 맞붙으며 몸싸움에 대한 적응능력이 한차원 높아진 상태다. 팀원들과의 유기적인 움직임 능력 또한 K리그 시절때보다 훨씬 향상된 상태다. K리그에서 뛰던 당시 마토나 산토스와 같이 힘과 기술을 갖춘 용병 수비수들을 상대로 늘 헤딩경합에서 밀려나던 경우가 잦았던 그는 최근에는 소속팀과 대표팀에서의 헤딩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전담 타켓의 역할까지 수행해내고 있다. 허정무 감독이 전형적인 타켓인 정성훈이 아닌 박주영을 자신의 투톱 카드로 뽑아들고 있을만큼 그는 제공능력마저 갖춘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점점 개인기량을 보여주며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박주영이 지금의 모습보다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는 어쩌면 박지성 아니 그 이상의 족적을 남길만한 선수로 기억될런지도 모른다. 천재라고 불리었던 시절처럼 진짜 천재적인 공격수로 거듭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박주영은 본래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는 선수였다. 과거 청소년 시절 뽑아낸 무수히 많은 골들이나 모나코 데뷔전에서 터트린 퍼펙트 퍼스트 터치에 이은 단독 돌파 골은 그의 완벽한 개인능력을 증명해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박주영이 박지성과 같은 희생정신과 팀 플레이 기술까지 점차 더 익혀나간다면 어떤 선수가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밖에 없다.

박지성 또한 에레디비지에 풀시즌 첫 해에 전방 공격수 역할을 맡아 팀전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바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팀의 후보로 밀려나야했고, 심지어는 K리그로의 복귀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그는 점차 큰 무대에서 적응해나가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곧장 자신보다 남을 빛나게 해주는 팀원 중에 한 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이와 같은 활약은 네덜란드 무대를 떠나 잉글랜드 그것도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성원이 되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박주영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실속있는 선수로 또한 팀원들을 위한 선수로 거듭난다면 정체되어 있는 득점감각 또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모나코 출신의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에마뉴엘 아데바요르는 지난해 아스날에서 24골을 뽑아내며 프리미어리그 득점랭킹 2위에 올라선 스트라이커다. 그 또한 모나코 시절에는 그렇게 대단한 득점기록을 쌓아올린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을 쌓고 팀 플레이에 능숙해지며 한 계단씩 밟아나가더니 결국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에 한 명으로 거듭났다. 박주영 또한 이와 같은 코스를 밟아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박주영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지금처럼만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신을 갖추고 그라운드를 누빈다면,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선수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박지성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게 될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