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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라이프스타일

<인터뷰> 내가 방송국 작가생활을 포기한 이유

지난 2008년 10월, 방송국에 소속되어 있던 한 여성 작가가 자신의 회사 사옥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당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과 함께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화려하게만 보이는 방송국 내부의 다른 이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당시 안타까운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던 이는 방송국의 보조작가였다. 그녀는 수십만원의 박봉에 시달리며 24시간 내내 과다한 업무에 시달려야만했고, 이로 인하여 내외적인 스트레스를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故장자연씨의 자살 사건을 비롯 방송국과 방송 시스템 내부의 공정하지 못한 불균형적 시스템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이면에 둘러싸인 방송국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이며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일까. 이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필자는 한때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왔고, 글을 쓰는 일을 배우기 위해 대학을 다녔다. 그렇기에 학과 선배 중 방송국 작가나 언론사 기자로 취직한 선배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쪽이기도 했지만, 외부가 아닌 방송국 내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기에 여러 이야기들을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래서 평소 잘 알던 선배에게 아주 오래간만에 전화를 걸었다. 내 기억속의 선배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모 방송국 작가로 당당히 선발된 인재였다. 그녀는 재능도 있었고, 창의력도 있었으며,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노력파였다. 그렇기에 내 동기들을 비롯 학과 선후배들은 모두 그녀가 방송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래간만에 건 수화기 너머로 그 선배에게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의외의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선배는 이미 방송국 생활에 미련을 버리고 일을 그만두었으며, 지금은 평범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더 궁금증이 일었다. 그녀가 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방송국에 입사했음에도 꿈만 같다던 그 생활을 그만두어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결국 그녀를 조르고 졸라 인터뷰 형식으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공간의 내부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뷰라
어느 방송국의 작가로 일하셨으며, 그 방송국에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R(이하 가명)
A 방송국의 보조작가로 약 9개월간 근무하였습니다. 한 프로그램 구성작가의 보조작가로 일했죠. 벌써 퇴사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뷰라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방송국 작가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R
그랬죠. 입사 당시에 정말 치열한 경쟁이 있었죠. 정확한 경쟁률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 같은 경우는 케이블이 아닌 공중파 방송국었기에 더 높은 경쟁을 뚫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꼭 저 같은 과정만을 거쳐서 입사하는 작가분들만 있는건 아니에요. 뭐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웃음)

뷰라
그렇다면 왜 높은 경쟁률을 뚫고 꿈이었던 방송작가가 되셨는데 이를 포기하신 겁니까?

R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이 자리를 옮기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요. 여기서 제가 일을 그만둔 이유를 사회적인 현상과 연관지어 말한다면, 방송일이 너무나 힘들고 고되고 짜증스러워서 일을 때려치웠다고 말하는게 좋을거에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제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일단 집안 문제가 있었고,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더 좋은 제의가 들어왔고, 결국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아쉬워요. 내 현실이 조금만 더 괜찮았더라면 아마 방송 일을 계속했을테니까요. 방송작가는 어렸을적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이었고, 지금도 꿈이니까요.

뷰라
방송국에서 대우가 좋았습니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정식으로 입사한 것이라면 정규직이었나요?

R
아니요. 비정규직이었죠. 보조작가는 정식작가가 아닙니다. 뭐 말만 작가죠. (웃음) 저도 방송국에 채용되어 소속된 인물이었지만 정식작가로 등록되지는 않았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 외부인이었던 셈이죠. 대우야 사회에 뛰어든 초년생들과 다 마찬가지의 입장이었어요. 어떤 회사가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돈다발을 안겨주겠어요? 당연히 일을 끝마치고도 손에 남는 것보다 남지 않는 것들이 더 많았죠.

뷰라
방송국에서 정확하게 하셨던 일이 뭔가요?

R
방송인 K씨가 진행하는 S프로그램에서 일을 했어요. 흔하게 대중에 알려진 방송국 막내작가가 하는 보편적인 모든 일들을 맡아서 했습니다. 출연진들을 인터뷰하고, 메인작가 분들이 완성한 대본을 꼼꼼하게 살피고, 연출자분들이나 제작진에서 시키는 잡다한 심부름을 도맡아서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을 했어요.

뷰라
흔히 방송국 막내작가라면 24시간 잠잘 틈도 없이 일만 하고, 고통에 시달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접 경험해본 입장에서 정말 그러했나요?

R
다 차이가 있어요. 어떤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느냐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거죠. 실제로 흔히 언론에 알려진것처럼 정말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말하는 동료도 있었고, 반대로 좀 편안하고 느긋하게 정말 배우는 자세로 일할 수 있었던 분들도 가끔 봤어요. 물론 그 차이가 오직 어떤 프로그램의 막내작가로 일하느냐에 따라 갈려지는건 아니에요. 연줄이 있으면... (웃음) 아무튼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PD님이 분위기도 잘 이끌어주셨고, 함께 일하는 선배작가님들도 모두 친절했어요. 그때는 못견딜만큼 힘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다른 막내작가들과 비교해 편하게 일했다고 생각합니다.

뷰라
많은 대중들은 방송국이라는 공간을 꿈의 직장으로 여기며 모두 그 곳에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직접 일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대중들의 생각에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나요?

R
음 물론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이야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저도 그런 꿈을 꾸었었고, 실제로 경험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나왔음에도 지금도 그곳을 꿈과 같은 공간이었다고 느끼니까요. 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 다 비현실이고 현실이 아니니까 방송국에 절대 작가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일을 일찍 그만두어서 더 쓴맛과 단맛을 맛보지 못했기에 그렇게 말할 권한이 없는지도 모르고, 일이 싫고 고되고 힘들어서 그만둔 것은 아니었으니까 더욱 그렇게 말할 수 없죠. 하지만 이 일을 지망하는 분들이 모두 최소한의 현실적인 감각은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힘들어요. 많이 힘들어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방송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욕도 먹고 구박도 받고. 다 그렇죠. 그런데 뭐 그런건 모든 직장에서 누구나 다 당하는 일 아닌가요? 그건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더 심한것 같은데 (웃음) 아무튼 그런 것들만 견뎌낼 수 있다면 방송국이라는 공간에 꿈을 꾸는 것도 괜찮을거에요. 저는 그 곳에서 저만 느끼는 이기적인 고통을 경험하지는 않았거든요.

뷰라
이기적인 고통이요?

R
아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저만 힘든게 아니었다는거에요. 그러니까 PD님들도 작가님들도 프로그램을 어떻게하면 더 재미있게 만들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했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진들도 말을 재미있게 많이 해야한다 웃겨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고통이 있었다는거죠. 이건 짧은 에피소드인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신인 여배우가 한 명 있었어요. 말을 재치있게 잘하는 개그우먼도 아니고 또 방송쪽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도 아닌 신인 여배우니까 당연히 어리버리하고 말도 잘 못했죠. 그런데 문제는 녹화가 진행되는데 심지어 준비되어 있는 대사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거에요. 당연히 PD님은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분위기가 안 좋아지니까 진행자분께서 잠시 쉬었다가 하자고 녹화를 끊더라구요. 그러니까 여배우 매니저는 제작진 분들과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며 진땀빼느라 정신없고, 진행자분은 또 어쩔 줄 모르며 울먹거리기 직전의 여배우를 상대로 이것저것 말하며 달래고 타이르느라 바쁘고. PD님은 PD님대로 딜레이되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의논하느라 바쁘고. 하여튼간 쉬운건 없어요. 일이 헝클어지면 여배우도 매니저도 PD님도 진행자도 다 피곤하고 힘든거죠.

뷰라
겉으로만 보이는 것 외에도 프로그램 하나를 완성하가 위해 고통을 분담하는 분들이 많이 존재한다는거군요.

R
그렇죠. 실제 현장에서는 편집되어 한 시간 남짓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수십명의 스태프들이 모두 수시간 큰 고생을 겪어요. 촬영, 음향, 조명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고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 모두가 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해요. 제가 그런 곳에서 저 혼자 힘들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이기적인 고통인거에요.

뷰라
지난해 말에 한때 같은 입장에 있었던 모 방송국의 막내작가가 과도한 업무량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난바 있습니다. 그때 심정이 어떠했나요?

R
놀랐죠.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고 또 안타까웠죠. 당사자가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조금 더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뤘으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분명히 주위에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을만한 사람이 있었을테니까요. 최근에 여러 사건들이 많은데... 방송국이 결코 만만한 공간은 아니죠. 저도 표면적으로는 대우가 좋은 곳의 제의를 받아 회사를 나온거지만 결국 그만둔 이유는 보수와 업무량의 문제였으니까요. 이건 결국 당사자가 얼마나 자신 앞에 놓인 고통과 현실에 맞서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봐요.

뷰라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실 분들께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R
사실 저는 방송국에 머물렀던 기간도 짧았고 다른 분들에 비하면 경험도 많이 하지 못해서 제가 말한 부분들이 명쾌한 답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철없이 잠깐 왔다간 사람이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간이나마 방송쪽 일을 지망하는 분들에게 이 인터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후배도 경험이 좀 있으니까 (웃음) 알아서 잘 정리해서 올려주리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까 말했듯이 방송국에서 일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꿈에 도전해보는 것이 결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약간이나마 이 인터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나는 방송국이라는 공간에 많은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마련한 이 인터뷰도 인터뷰 당사자의 연예계 비화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폭로하는 형식으로 흘러가기를 솔직하게 원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한 사람만이 축약된 형태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닌,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한 형태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방송국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혹독하고 냉혹한 현실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아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때가 있다. 밝은 표정으로 말하려 애쓰고 있었으나 선배는 꽤 고통스러워했다. 막내작가 생활을 하던 당시에 느꼈던 차마 인터뷰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고통들과 결국 꿈을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여건에 있었음에도 조건과 현실에 굴복해버린 자신의 모습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 인터뷰 내용을 보고 누군가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난 사람의 추억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배가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웃으며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고통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이야기하고 함께 헤쳐나가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선배의 말처럼 어려운 일이 있을때 함께 나눌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 결국 그것이야말로 방송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자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 블로거뉴스 기자 뷰라입니다. 자신의 특별한 이야기나 기존 언론이나 언론사 기자를 통해서는 말하지 못했던 억울한 사연 혹은 여러 이야기들을 자신의 시각 그대로 축약없이 표현하고 싶으신 분들의 메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자는 기존 언론들의 성향에 치우신 시각에 따라 임의대로 편집된 인터뷰가 아닌, 인터뷰하는 당사자의 시각과 의견을 몇몇 소수라도 읽는 분들께 공평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존 언론사 기자들이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평범한 사람의 시각에서 전혀 내용의 축약없이 담담한 방법으로 읽는 분들께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인터뷰 당사자께서 한국에만 계시다면 제가 직접 찾아뵙거나 서면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으며, 신원 공개를 원하시지 않는 분들은 익명을 철저하게 보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표현하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qbfk1980@gmail.com 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