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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해외축구

박지성의 교체, 맨유 대패의 원인

프리미어리그 29R 맨유와 리버풀전은 한 팀에게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가능성의 칠부능선을 넘게 해줄 게임이었고, 다른 한 팀에게는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프리미어리그 우승 가능성의 마지막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게임이었다.

맨유로서는 이번 홈게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자신들보다 한 게임을 덜 치룬 3위 리버풀과의 승점차가 10점차로 벌어지면서 사실상 리버풀을 우승 레이스에서 탈락시킬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리그 우승의 가장 라이벌이자 걸림돌이라 할 수 있는 첼시와의 승점차도 그만큼 벌어지기에 더 이상 빅팀과의 맞대결이 없는 일정상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는 게임이 될 수도 있었다. 맨유의 주축 공격수인 웨인 루니가 이번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리버풀의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이 게임이 향후 프리미어리그 우승 레이스의 향배를 가를만한 빅게임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게임에 박지성의 선발 투입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는 올해 맨유와 동등한 전력을 지닌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어김없이 선발명단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물이었고, 공격진영에서의 활발한 움직임과 무브먼트로 다른 맨유 공격수들의 화력을 살려내는 키 포인트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지성으로서도 저번 FA컵 풀럼전에 이어 다시 올시즌 3호 골을 충분히 노려볼만한 게임이었다. 인터 밀란전에서 맞상대했던 마이콘과 같은 공격력이 강한 윙백들과는 달리 리버풀에서 맞상대하게 될 리버풀의 아르벨로아와 인수아, 캐러거의 공격적 오버래핑 능력은 상대적으로 이에 뒤떨어지는 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성으로서도 리버풀전에서는 조금 더 자신의 본래 임무인 공격적 본능에 충실할 수 있었고, 공격적인 임무와 상황이 많이 주어질 확률이 높기도 했다.

전반 24분 박지성이 반칙으로 페널트킥을 유도해낸 상황은 퍼거슨이 원하던 맨유 특유의 다이나믹하고 빠른 공격템포가 만들어낸 결정판과 같은 장면이었다. 오프 더 볼에서의 뛰어난 움직임으로 빈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박지성의 능력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고, 그 상황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킬패스를 찔러넣어준 테베즈의 경기장을 넓게 보는 시야 또한 훌륭했다. 그리고 박지성이 얻어낸 페널트킥으로 결국 호날두가 골을 완성해 1-0으로 앞서가는 순간까지는 모든 것이 맨유의 뜻대로만 될 것 같은 게임이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놓치게 된다면 사실상 우승의 꿈이 요원해질수밖에 없는 리버풀로서는 거센 반격으로 승부수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리버풀의 공격이 거센 상황에서 수비수인 네마댜 비디치의 결정적인 실수로 토레스에게 한 골을 실점하게 된 상황은 맨유로서는 뜻대로 되어가던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패배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달려들던 리버풀와 토레스의 오버페이스가 눈에 띠도록 극대화 된 상황이었기에 맨유 입장에서는 더욱 아쉬움이 진할 수밖에 없는 비디치의 실수였다. 이후 한 골을 쫓아들어온 리버풀의 페이스가 거세졌고, 홈에서 한 골을 앞서나가며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상황을 잃게 된 맨유의 페이스는 급격하게 다운되기 시작했다.

특히 맨유 전술의 핵심이던 기동력과 무브먼트가 상대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직후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부진한 퍼포먼스와 맞물려 있었다. 퍼거슨 감독이 베르바토프를 선발로 투입시키지 않고 테베즈를 선발로 투입시킨 것은, 호날두 - 루니 - 테베즈 삼각편대가 만들어내는 스위칭과 기동력으로 속도전 승부를 펼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퍼거슨의 치밀한 이 계획은 박지성의 활약으로 얻어낸 골에도 불구, 호날두의 부진과 동시에 실패쪽으로 점점 기울어들기 시작했다. 호날두가 막히면서 공격이 되지 않고 팀의 전체적인 리듬까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맨유로서는 베르바토프가 없으니 사실상 롱 볼 플레이와 타켓 플레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에 단조로운 맨유 특유의 공격마저 호날두부터 막히게 됨으로서 사실상 모든 맨유의 공격루트가 차단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제라드에게 PK로 골을 허용하며 홈에서 뒤지기 시작했음에도 아무런 반격을 하지 못하고 손놓고 계속 당하는 상황이 이어졌던 것은 철통같이 믿었던 호날두의 부진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이전에도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몇몇 있었다.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최근의 맨유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패한 유일한 경기이자 2년전 0-3 완패의 씁쓸한 기억을 안겨주었던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원정 4강전이다. 이 경기에서 모든 맨유 공격루트의 선봉장이었던 호날두는 상대편 수비형 미드필더인 젠나루 카투소에게 막혀 봉쇄당했고 맨유는 결국 경기가 끝날때까지 어떤 공격의 실마리도 풀지 못한채 완패하고 말았다. 이번 리버풀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날두를 위한 호날두만의 맨유가 가진 딜레마가 만들어낸 AC 밀란전 악몽의 데자뷰였던 것이다.

경기 중반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와 루니의 위치를 바꾸어 루니를 왼쪽 미드필더로 호날두를 전방 공격수로 올려놓았다. 이에 부진하던 호날두의 위치에서 루니가 제 몫을 해주면서 공격은 훨씬 원활해졌고, 박지성의 환상적인 오퍼 더 볼의 움직임 또한 살아나면서 공격이 훨씬 원활해졌다. 실제 2-1로 뒤지고 있었음에도 후반 25분경까지 맨유는 테베즈의 결정적인 찬스를 비롯 공격적 상황에서 리버풀을 계속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후반들어 캐릭의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며 선수들이 전부 그라운드를 넓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단신이지만 빠른 테베즈와 움직임이 좋은 박지성의 공격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뒷심이 약한 리버풀로서는 더 밀리게 된다면 실점을 허용할 확률 또한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퍼거슨은 팀 공격력이 살아나고 있는 시점에서 부진한 호날두를 남겨두고 박지성과 미드필더진을 한꺼번에 3명이나 교체하는 악수를 내던지고 말았다. 전반 오버페이스로 인해 상대 미드필더인 제라드와 루카스의 상승세도 떨어져가고 있었기에, 조금 더 골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근본적인 문제였던 호날두를 교체해야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날두만을 위한 전체적인 공격진의 밑그림만 그리다가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결국 아무 의미 없는 함성이 되어, 뒤이어 치욕스러운 2실점으로 이어졌다. 

물론 퍼거슨 감독은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비디치가 예상치 못한 반칙까지 저질러 퇴장까지 당할 것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진했지만 점점 살아나며 후반 질높은 패스를 뿌리던 캐릭과 가장 좋은 베스트 퍼포먼스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던 박지성 카드를 내다던진 선택은 변명하기 어려운 실수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호날두를 위한 호날두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딜레마에 빠진 퍼거슨의 잘못된 선택이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하였다. 끝까지 호날두를 믿느라 좋은 모습을 보이며 살아나고 있던 박지성을 교체함으로서 대량 실점의 빌미이자 대패의 실마리를 상대팀에게 제공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 경기가 시작되기 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마법같은 신화와 성공가도를 써나가고 있는 거스 히딩크 첼시 감독은 "리버풀이 이겨 프리미어리그 선두 경쟁이 향후 치열해지기를 바란다" 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게임은 히딩크의 바램대로 리버풀의 승리로 끝남으로서 앞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 레이스가 한층 더 안개 속에 휘말림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부디 퍼거슨 감독에게 이번 게임이 자신의 절대적인 호날두에 대한 믿음으로 인한 실패의 쓴약이자 박지성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을 믿지 못한 잘못된 선택의 교훈이 되었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