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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백지영, 불쌍하지 않은 당당한 뮤지션

백지영이라는 연예인이자 가수를 떠올리면, 그녀에게서는 발라드를 '잘'이 아닌 '멋지게' 소화해낸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가끔 인터넷이라는 익명이 보장되어 있는 공간을 누비다가 그 안에서 그녀를 향해 가해지는 모멸적인 단어들로, 그녀가 떠들석한 사생활 비디오 유출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어도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멋지다는 이미지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다.

지난해 가수 백지영은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발라드곡으로 우리나라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다. 이수영을 비롯한 솔로 여성 발라드 가수 경쟁자들이 즐비했고, 원더걸스와 빅뱅과 같은 후크송 열풍을 주도한 아이돌들이 시글시글했지만 그 누구도 백지영이라는 가수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혹자는 백지영이 부른 노래가 좋았기 때문에 백지영이라는 가수가 사랑받을수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아마도 백지영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로 그녀의 노래가 그녀만의 스타일로 소화되지 못했다면 수많은 백지영의 히트곡들은 결코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이유는 여타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백지영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 특별함은 늘 그녀의 발라드를 더 빛나게 만드는 음악에 대한 훌륭한 조미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타의 발라드 가수들보다 목소리가 뛰어나거나 성량이 뛰어나거나 테크닉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목소리 안 울림으로 존재하고, 이것은 백지영이라는 평범한 발라드 가수를 '멋지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백지영이라는 가수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매력이며 아름다움이다.


발라드라는 장르를 떠올리면 누구나 눈물 흘리는 장면이나 처진 어깨로 청승을 떠는 모습 혹은 죽음과도 같은 비극적인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이는 발라드가 가지고 있는 느린 템포와 잔잔한 색깔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기에 그 누구도 변명할 수 없는 진리로 통용되고는 했다. 하지만 백지영의 발라드는 약간 다른 맛이 느껴진다. 마치 쾌활함 속에 날카롭게 숨겨져 있는 바늘처럼 특별하게 쏘는 그런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바늘들은 발라드라는 잔잔한 음악과 백지영의 즐겁고 다양한 모습들과 충돌하며 이내 멋진 옷을 꿰어주고는 한다.

혹자는 어떻게 백지영이라는 인물이 저렇게 뻔뻔스럽게 TV에 얼굴을 들이밀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그녀가 TV에 나올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일신의 영위를 위해 함부로 몸을 굴린 여자라고도 말한다. 참 아주 슬프지만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는 곳이 이 사회다. 그들은 백지영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심지어는 불경스럽다고도 말한다. 물론 살아온 가치관과 환경의 차이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참 슬프지만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들이 과연 자신들이 주장하고있는 논리의 밑바탕에 자신에 대한 잣대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잣대도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남을 향해 세차게 돌을 던지며 모두가 금욕적으로 살길 바란다고 말하는 자들이야말로 더 돌을 맞는 것을 두려워하고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구성원들에 섞여 이중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히 받아들이고는 했다. 그리고 백지영은 그동안 그런 자들에게 꾸준히 어퍼컷을 날려왔다. 스스로 돌을 맞으면서도 높디 높은 편견이라는 장벽과 맞서 싸워온 것이다.


그녀는 몇몇 소수에 의해 뻔뻔한 여자로 몰렸고, 더러운 여자로 몰렸으나 결코 그런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많은 비판과 손가락질이 있었음에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고 반대로 당당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마치 죄인처럼 불쌍한 태도로 일관하고 움츠러드는 행동이 당연했던 여자 연예인들의 삶.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반복되는 역사와도 같았던 그런 여자 연예인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준 사람인 것이다.

그녀는 실제 매우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TV안에서 비춰지는 모습이지만, 평소 브라운관 안의 백지영에게서는 어둡거나 안절부절하고 어려워하는 모습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모습들 안에는 분명 사실이 아닌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인간인 이상 자신을 향해 가해지는 모멸적인 고통과, 날라오는 돌에 맞아 생긴 상처에 쓰라림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진 뒤 숨어있던 호텔에 머무르며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과 비난 그리고 편견에 맞서서도 담대했고,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위선적인 사람들의 뇌리속을 헤집어놓은 것이다. 지금 대다수 대중들은 댄스곡을 부르며 춤을 추는 백지영의 모습을 되려 어색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라드 여가수로 거듭나기까지 그녀는 모든 고통을 감내했다. 스캔들을 터트린 연예인이 아닌 좋은 가수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갈고 닦으며 뼈저린 가시밭길을 헤쳐온 것이다. 


최근의 무릎팍도사는 홍보팍도사나 세탁팍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무릎팍도사 백지영편은 그런 일부시각들의 비판을 덮을 수 있는 무릎팍도사만의 확실한 방향점을 느끼게 해주는 방송이었다. 누가 백지영에게 그 사건을 묻고 그 사건에 대해 인간적이고 소탈한 고백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며, 그녀의 당당함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불쌍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내며 여성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강호동이라는 MC가 아니었다면,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이와 같은 일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실한 백지영의 모습은 예상했고 그려왔던 가수로서의 백지영의 모습 그대로 멋있었다. 그리고 당당함과 맞서 싸우고 편견과 맞서 싸운 그녀의 이야기는 또한 감동적이었다. 자신을 손가락질하던 사람들마저 진정한 가수이자 뮤지션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늘 자신만만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발라드를 부르면서도 슬픔이 아닌 힘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가수 백지영, 그렇게 당당해서 참 좋았다. 앞으로도 불쌍한 모습으로 움츠러든 백지영이 아닌 당당한 모습으로 활기차게 웃는 뮤지션 백지영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