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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버라이어티

무한도전, 아이돌의 법칙에 무너지다

무한도전 거성쇼가 진행되던 중 박명수는 소녀시대를 게스트로 초대한 이유로 그녀들을 예능에서 도통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는 박명수 특유의 오류를 앞서 판단하는 계산적인 개그였고, 은유적인 형태로 가해지는 소녀시대를 향한 무한도전과 박명수의 비꼼수였다. 이 멘트에 소녀시대는 손을 내저으며 "저희 요즘 예능에 많이 나와요." 라고 말했고, 뒤이어 노홍철은 "수도꼭지에요. TV 틀면 나와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소녀시대와 아이돌의 법칙을 깰 수 있었던 지점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녀시대와 함께한 무한도전 여성 특집편은 무한도전과 김태호 PD가 알고도 당해버린, 그리고 알고도 법칙을 깨지 못한 스테이지가 되고 말았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갑작스럽게 거성쇼를 컴백시킨 이유는 무한도전 특유의 엉망진창 분위기에서 터져나오는 웃음과 최근 날이 갈수록 노골적인 방법으로 더 독한 방법의 패러디를 시도하는 김태호 PD 특유의 분위기를 믹싱시키기 위한 조치이자 방법이었다. 즉 프로그램이 추구하려는 웃음은 바로 전주에 노홍철과 박명수의 심리 치료 상황극에서 보여준 것 같은 무한도전 특유의 엉망진창 상황극으로 만들어내고, 진짜 무한도전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거성 쇼와 매우 닮은 모습을 띠고 있는 박중훈 쇼를 패러디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거성 쇼 중간중간 유명 CF들을 패러디한 장면들이 계속 나왔던 것도 이번 무한도전 거성 쇼가 말하려고 하는 팩트가 바로 패러디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김태호 PD의 은유적인 장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참신할 것 같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 패러디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PD는 이를 애써 방송중 사용한 자막으로 이 모든 실패가 전적으로 진행자 박명수의 역량부족이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항변했지만, 정확하게 해석하면 이는 제작진의 실수라고 봐야 함이 옳다. 거성 쇼의 박중훈 쇼 패러디가 실패한 이유는 결국 패러디를 위해 프로그램의 밑바탕을 깔아놓고는, 패러디해야 할 대상을 제대로 조롱하지 못하고 되려 그들의 약점들을 고스란히 떠안은 문제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박중훈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게스트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상황을 비판하였고, 자신만은 쇼에 출연해준 게스트를 편안하게 모시는 토크쇼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은 한때 박중훈이 자신이 이끄는 쇼의 라이벌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무릎팍도사를 의도적으로 겨냥해 비난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며 예능프로그램에서 진짜 무례한 방식의 프로그램이 무엇인가를 놓고 격론까지 일으킨바 있었다.

만약에 정말 무한도전이 박중훈 쇼를 제대로 패러디하고 싶었다면, 바로 이 부분을 패러디해야만 했다. 게스트를 모셔놓고 호들갑떨며 그들을 반겨주고 치켜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박명수가 처음 보여준것처럼 소녀시대를 향한 호통과 무례한 모습들을 조금 더 살려나갈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나로 뭉쳐 소녀시대를 몰아붙여야만 했을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 누구도 박명수의 호통이나 스타일을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게스트로 출연한 아이돌 그룹의 의도대로 무한도전은 그녀들의 노래가 연달아 흐르는 쥬크박스용 박중훈 쇼 시즌 2가 되고 말았다. 김태호 PD는 거성 쇼의 마무리 순간까지 오늘 즐거우셨냐며 박중훈 쇼의 클로징 멘트까지 패러디하였다. 그만큼 끝까지 패러디 한복판을 만들어놓고 박명수의 발목을 늘어잡으며 소비하는 모습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패러디라는 성취도 방송의 재미도 수확해내지 못했다. 박중훈 쇼를 패러디하면서도 결국 박중훈 쇼와 같은 모습으로 게스트를 향한 아부성 자막과 멘트들만 가득한 무도를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최근 거의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게스트를 모셔다놓고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들어만주고 포장해주고는 한다. 특히 몇몇 아이돌 그룹들을 향한 예능 프로그램 PD들과 진행자들의 도를 넘은듯한 아부성 멘트들은 그들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살이 찌뿌려지는 불쾌감까지 주고 있다.  

필자는 최근 무한도전, 김태호의 패착이 부른 위기라는 글을 포스팅하여 본의 아니게 김태호 PD의 패러디 대상이 된 바 있다. 그리고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직접적 패러디 대상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무한도전의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촌철살인의 내부적인 속성을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번 거성 쇼 특집의 패러디가 아쉬웠던 것은 무한도전만의 가장 중요한 촌철살인은 정작 누락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아마 진정한 무한도전 매니아들이 바라던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패러디는 게스트와 아이돌에게 아부를 답습하는 예능 제작진과 PD들을 향한 전체적인 촌철살인이었을것이다. 또한 그들은 소녀시대에게 기대고 아부하는 모습으로 실패한 아이돌의 법칙을 그대로 뒤따라가는 무한도전의 모습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지겹게 강조하는 말이지만, 무한도전은 대단히 특별한 예능프로그램이면서도 그 대단함을 강조하지 않는 순간부터 진정 돋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거성 쇼와 여성의 날 특집이 가진 의도는 그런 부분에서는 참 좋았다. 또한 작은 미덕을 알고 웃음의 포인트를 성실하게 프로그램 내부의 아이템으로 찾으려하는 제작진의 의도도 훌륭했다. 하지만 파고들어가지 못하고, 표면만 겉핥는 부분은 무한도전답지 못해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좋은 주제를 잡았어도 그것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톰 크루즈가 게스트로 등장하든 소녀시대가 게스트로 등장하든 무한도전만의 스타일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번 거성 쇼와 여성의 날 특집은 소녀시대라는 게스트의 출연으로 단순간 무한도전만의 모든 것이 헝클어진 특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거성 쇼 특집은 앞으로 다른 게스트들이 무한도전에 출연했을때 일어날 수 있으며 재차 발생할 수 있는 숙제와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남겨준 특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