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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라이프스타일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지인을 만났습니다


      



1)
저는 경기도 화성 사람입니다. 이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저 또한 누구나 그렇듯이 화성이라는 도시를 생각할때마다 가장 먼저 '연쇄살인'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립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더 유명세를 탄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도시가 바로 제가 살고 있는 이 도시 화성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섯 명의 피해자를 강간살해하고 암매장한 범인이 경찰에 검거되었습니다. 온 대한민국이 이 희대의 살인마가 벌인 범죄행각에 치를 떨며 분노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감정들에 앞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두려움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은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리고 제가 몇 번이나 차를 끌며 오갔던 39번 국도에서 피해자들을 무참히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피해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살해된채 흙더미에 파묻혀 있는 그 도로를 몇 번이나 아무것도 모르고 스치듯이 지나친 셈입니다.

화성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낙후된 도시는 아닙니다. 어느 도시나 그렇듯이 농촌도 있지만 화려하게 발달된 시내도 있고 상가도 존재하며 아파트 단지와 대학교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 도시 사람 중에 한 명이고, 이 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사건의 피해자와 연결된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
2004년 10월 27일 밤 8시 35분쯤에 화성시 봉담읍에 사는 여대생 노모양(21)이 집에서 2km 떨어진 화성 와우리공단정류장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실종 46일만인 12월 12일 싸늘한 주검이 되어 실종된 곳에서 5km 떨어진 야산에 옷이 모두 벗겨진채 반백골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녀는 가해자에 의해 강간당한 흔적을 가지고 있었고, 목이 졸려 숨진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동물들에 의해 몸의 살점이 뜯어먹힌 흔적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생전 마지막으로 탔던 버스는 34번 버스였는데, 이 버스는 당시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저도 늘 올라타야만했던 버스였습니다. 그녀가 실종되고 저는 버스 안에 붙어있는 실종자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며 저는 아주 짧게 "불쌍하다." 라는 생각을 가진바 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살해되었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고, 또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고 별 특별한 생각없이 평소 알고 지내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잘 지내느냐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너무나 괴롭고 힘들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제게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알던 언니가 이번에 잡힌 살인마에게 5년 전에 살해당한 것 같아요."


3)
참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럴만도 했습니다. 가장 친한 언니였지만 벌써 세상을 떠난지 5년이나 지났기에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5년 만에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보낸 언니를 다시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괴롭고 무서운 방법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회상해야만 했습니다.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떡해요."

그녀는 이내 눈물을 펑펑 흘려댔습니다. 피해자와 함께 했던 추억들 함께 나누었던 우정들 모든 기억들을 눈물로 쏟아보내는지 그녀는 펑펑 울어댔습니다. 그녀는 묻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언니를 그렇게 만든 살인마에게 왜 그렇게 했어야만 했느냐고 묻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보다 꿈이 많았고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던 언니를 꼭 그렇게 보내야만 했느냐고 묻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장례식장에서 만난 피해자 부모님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자신이 왜 여기에서 딸의 시신을 태워야 하는지도 모른채 넋이 나가버린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던 그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차마 이번에 잡힌 범인은 2004년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과는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으며, 언니를 살해한 범인은 아직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았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부른 자리에서 자칫 저의 잘못된 한마디가 그녀를 더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4)
저는 개인적으로는 가해자의 신원과 얼굴을 재판 전에 공개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가해자가 범죄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범죄자로 오해받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이 있기 전에 가해자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죄가 명백히 밝혀지기도 전에 대중들에 잘못된 법적인 지식아래 가해자를 향한 마녀사냥이라는 폐단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는 가해자가 무죄일 수 있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개인적으로는 재판 후라면 모를까 재판 '전'에 가해자의 신원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사람이 인격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살고 있는 사회에서 흉악범이라도 인권은 있어야하고 누구의 인권이든 소중한 가치를 가져야만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제가 깨달은 한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가해자의 인권 그리고 가해자 주변인들의 인권만큼이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친구 친지들의 인권입니다. 저도 범인의 자식들과 친지들이 과거 연좌제에 걸린것마냥 이 살인사건의 또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도 이해합니다. 범인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서 대중들의 분노과 복수심을 그것 하나만으로 몰아세우려는 위험도 경계합니다. 하지만 딸을 잃고 친지를 잃고 친구를 잃은 사람의 마음이 과연 어떨지 먼저 헤아려주길 원합니다.

저는 범인의 얼굴 공개에 반대했습니다만, 이미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자신이 강간하고 목졸라 죽인 사람들을 묻어버린 장소를 자백하는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이 사회의 미성숙과 대중들의 값싼 분노를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수 대중들은 모두 사고할 수 있으며 감정을 지닌 지극히 사회적인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해 여자를 납치 강간해 목졸라 죽인 사이코패스들이 아닙니다.

저는 대중에게 가해자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이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정답이 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제 3자의 입장이 아닌 피해자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좁은 식견이 결코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을 울분을 토해내듯 쏟아냈습니다.

"돈(보험금) 때문에 아직도 그 자식은 우리 언니 죽였다는거 부인하고 있다면서요? 비슷한 장소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범죄 저지른 그런 싸이코패스가 세상에 둘이겠어요? 그놈 범행이 확실한데 왜 얼굴은 공개하지 않는거죠? 그런 흉악한 놈 얼굴 마스크로 가려주고 신원 보장해주는게 옳은거에요? 우리 언니는? 5년 전에 그렇게 당해버린 우리 언니는? 그렇게 언니 보내버린 부모님은? 그런 흉악한 자식 인권을 보호해주니까 계속 이런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는거 아닌가요."


5)
모 국회의원은 이번 사건의 범인을 끌어와 자신들의 정적들과 비교하는 '초딩'만도 못한 비유법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뻔뻔한 작태를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이에 비교당한 정당도 지지 않겠다는듯 이 사건의 살인마를 그 국회의원과 비교하며 '초딩'만도 못한 추악한 혓바닥 전쟁의 개막전을 선포하였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는 집단들도 이 사이코패스라는 떡밥을 빌미로 빨갱이들은 싸이코패스다. 수구꼴통들은 싸이코패스다. 이렇게 시끌벅쩍합니다. 정말 허탈할 뿐입니다. 결국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려버린 상태니까요.

피해자 주변인을 만나고 울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옳고 그른 절대적인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경계라는 것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이 사건도 5년전 살해당한 제 동생의 언니가 잊혀진것처럼 그렇게 잊혀질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 문제로 싸우고 다투고 있습니다.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국회 점거한 니들이 싸이코패스다 대운하 파려고 하는 니들이 싸이코패스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도 무덤덤합니다. 진정 이 사건을 체감하며 느꼈을 피해자를 만나니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은 것은 살해당한 사람들의 펼치지 못한 아까운 삶이고, 그렇게 목숨을 잃은 당사자의 가족과 주변인들의 고통뿐입니다. 결국 그것만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아까운 삶이 가엾고 피해자 가족 친지들의 고통이 안타깝습니다.

모두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어주길 바랍니다. 그들을 이용하며 서로 자신의 의견이라는 빌미로 격한 욕설을 주고받으며 이 사회에서 동떨어진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그들의 혼령을 이용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의 친지와 가족들을 먼저 생각해주십시오.

정말 이 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당사자는 누구였을까요. 확실한 것은 이 사건을 빌미로 서로 다투는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