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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박중훈쇼, 시청자 기만한 사기극


      




정말 나를 서스름없이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가끔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고, 아무렇게나 말하며 때로는 나를 툭툭 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뭔가 맞는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기에 결코 외롭다는 생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어색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항상 고분고분하며 내 기분에 맞춰 말하고 나를 어려워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렇지만 예의있는 이 사람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실제로 이렇게 비교되는 두 사람이 곁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더 가깝게 느끼고 호감이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둘 중에 나를 진짜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모두가 겉으로는 나를 몰아붙이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할것이며, 고분고분하게 말하지만 전혀 편안한 상황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할것이다. 아마 백이면 백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박중훈쇼가 처음 등장한다고 했을때 대중들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매너리즘에 빠져 난무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올드스타일의 화려한 귀환이었을것이다. 대중들은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원한다. 하지만 그 새로운 것이 너무 넘쳐 범람하게 되면, 새로운 것을 식상하게 여기고 어느 순간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버린 과거 스타일을 다시 새롭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흔한 액션 영화와 멜로 영화가 영화계에서 판치고 있을때 대중은 거한 사투리를 써대며 한없이 올드한 복고풍 노스탤지어 스타일의 영화 친구에 열광했고, 판에 박힌 댄스 음악과 미디풍의 발라드 음악이 판치고 있을때 어머나를 외치며 깜찍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원더걸스의 80년대 디스코 스타일곡 Tell Me를 원했다. 대중이 박중훈쇼에 갈구했던 것도 그러한 것들의 연장선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상황이 대세가 되어있는 현재 방송계의 트렌드에서 무게감 있는 정통토크쇼로서의 가치를 박중훈과 박중훈쇼가 보여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박중훈쇼는 과연 대중들에게 과거의 향수와 올드한 것에 대한 무게감있는 기대치와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아니다. 박중훈 쇼는 올드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 대중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부한 올드함으로 프로그램 전체를 칠해놓고서는 대중들에게 쌍팔년도 마인드로 방송을 봐주길 요구하고 있다. 이러니 보는 대중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TV에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교양있고 권위있는 사람들인양 무게감있게 행동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리고 비꼬며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다하고 교양있는 이야기 비전을 갖춘듯한 그럴싸한 거짓들을 마구 쏟아낸다. 국회에서는 조폭들 깡패 부럽지 않은 막말을 주고받는 분들인데 어찌 TV 앞에서는 교양이 넘치는 수준높은 동업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대중들에게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다가 종극에는 코미디보다 더 웃긴 말도 안되는 제스처를 취한다. 얼마전까지 주먹질하던 사람끼리 팔씨름을 한다. 노래자랑을 펼치고 어깨동무를 한다. 아예 국민들을 서커스장에서 불구덩이 뛰어넘는 호랑이보며 박수치는 바보로 보는듯한 태도다. 이 70년대 대한뉘우스에서나 어울릴법한 장면들은 2009년도에 공중파 방송국에서 방영되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박중훈쇼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다.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정치에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라도 오늘 박중훈쇼에 등장한 세 사람이 며칠 전까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알고 있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는 다른 집단이 반대한다고 문을 걸어잠그고 자기네들끼리 국가의 중요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자기네들이 싫어하는 공산주의 정권에서나 가능한 독재행위를 저지른거다. 또 한 집단의 우두머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대적한다고 국민들의 자산인 국회를 제 집 안방인양 점령해놓고 전기톱으로 문짝을 그었다. 법없는 조폭 깡패집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또 한 집단의 우두머리는 자기네 머릿수가 부족하다고 성향이 다른 사람과 손잡고 이리저리 물타기를하며 이리저리 붙고있다. 사기가 직업인 분들이 자주 하는 짓이다. 이렇게 소위 그 분들 부럽지 않은 스펙을 고루 갖추신 분들이 공중파 프로그램을 점령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나와서 훌륭한 드라마를 한 편 찍으며 대중과 국민을 기만한다. 또 호스트는 그걸 보면서 웃고 환호하며 앉아있는 방청객들에게 말한다. "박수 좀 주세요!"

아마도 닐 암스트롱이 오늘날 박중훈쇼를 보았다면 먼 옛날 자신이 달에 착륙한 그 날을 떠올렸을거라 생각한다. 올드한 것의 결정판. 대중과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뻔뻔함. 막장으로 추락해가는 어색한 하하호호까지. 대통령 욕했다고 사람 잡아가 삼청교육대 집어넣던 그 시절의 부활은 어쩌면 미네르바의 구속이 아니라 박중훈쇼가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박중훈쇼는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산물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오늘날 결국 중재를 한다고 하면서 정치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고분고분한 태도로 그들의 기분에 맞추며 당당한 척하며 어려운 이야기는 이리저리 돌려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박중훈을 보면서 어색함 이상의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국민들이 박중훈쇼를 보면서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국민들을 진짜 불쾌하게 만드는 그 원흉들을 데려다놓고 무례하게 팍팍 치면서 보는 사람을 시원하게 만드는 장면을 기대했을 것이다. 공중파 방송국 토크쇼에서 제 할말만 하러 나온 약장수들의 호객행위를 들어주고 중재하라고 그 자리 앉혀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중훈쇼에 기대했던 과거와 오늘날 형식이 결합된 통쾌함은 없었다. 박중훈쇼는 정치인들의 입발린 사과쇼 및 그들의 한시간짜리 제 할말 떠벌이는 홍보무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은 누구 말처럼 뻗치는 성질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박중훈은 요즘 토크쇼의 경향을 지적하면서 출연진을 배려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 위주의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크쇼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크쇼가 진행되는 이유는 대중이 스타와 공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다. 또한 박중훈쇼가 존재하는 것도 박중훈이 배우로서 존재하는 것도 약장수만도 못한 정치인들이 존재하며 여전히 허허 웃으며 공중파 방송국에서 전파낭비를 하며 가식을 떨 수 있는 것도 다 대중이 있고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박중훈이 진정 성공한 토크쇼 진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출연자들을 배려하기 이전에 시청자와 대중을 배려하는 미덕부터 배워야한다. 누가 주객이 전도가 되어 시청자를 우롱하는 사기극을 보며 환호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