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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라의 연예스토리

장서희, 막장드라마의 딜레마


     




자메이카의 단거리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마라톤을 뛰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한국의 마라토너인 이봉주나 황영조가 단거리 100M 달리기를 시도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사실 이와 같은 가정은 흥미롭지만, 어쩌면 답변이 필요없는 헛질문이다. 그만큼 결과가 뻔히 보이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거리를 뛰는 선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간적인 속도와 순발력 그리고 폭팔력이다. 또한 이와 반대로 장거리 마라톤을 뛰는 선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꾸준함과 호흡능력 그리고 지구력이다. 이처럼 이들은 같은 육상선수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즉 대중들에게는 같은 존재로 분류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동업자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배우 장서희는 자신의 긴 연기인생에서 진정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그녀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으로 MBC 일일극시청률을 50%까지 끌어올렸다. 그 당시 그녀가 인어아가씨에서 보여준 소름끼치는 연기는 비록 드라마의 작품성은 형편없지만 장서희만큼은 완벽하다는 평가로 이어졌고, 연말 연기대상은 당연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 주목받는 아역스타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내내 조연에 머물러야했던 그녀 연기인생의 화려한 제 1막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인어아가씨 아리영을 이어나가는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로 1막만큼이나 화려한 제 2막을 맞이하고 있다. 그녀가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있는 아내의 유혹은 시청률 35%에 근접하며 40%의 시청률을 바라보고 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만큼 대단한 시청률이다. 그동안 각 방송사는 아내의 유혹이 방영되고 있는 7시 20분 시간대는 실상 내버려두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 시간대에 드라마 하나로 40% 혹은 그 이상의 시청률을 노릴만한 프로그램이 탄생했다는 것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춤을 출 일이다. 가히 이 정도의 스코어는 KBS나 MBC 8시 30분 드라마 시청률 50%의 시청률에 맞먹는 기록이라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내의 유혹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재? 사실 SBS의 일일드라마는 아내의 유혹 이전의 드라마 모두 기획단계부터 드라마의 소재가 아내의 유혹와 흡사하거나 더 자극적이었다. 유선이 나왔던 드라마 그 여자가 무서워는 지금의 아내의 유혹과 같은 배신당한 여자의 복수를 주제로 한 작품이었고, '80년대의 김태희' 차화연의 복귀작인 애자언니민자 또한 동생의 딸을 키우는 언니에 혼전임신등 그야말로 자극적 상황을 모두 가져와 비빈 한 편의 잡탕극이었다. 10% 내외의 평범한 시청률에 머물렀던 전작 일일연속극들이 자극적 소재로만 놓고보면 아내의 유혹보다 더하니 지금의 시청률 35%의 원동력이 꼭 소재때문만은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의 원동력은 배우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아내의 유혹이 인기를 끌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은 장서희다. 아내의 유혹의 인기는 시나리오 안에서 그 인물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장서희라는 원톱배우의 역량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내의 유혹은 여러모로 인어아가씨를 닮은 작품이다. 변변찮은 조연이었던 그녀는 인어아가씨라는 한 방의 원동력으로 대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아내의 유혹은 인어아가씨 이후 계속되는 하락곡선을 그리던 그녀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인어아가씨와 연장선을 함께한다. 자극적인 소재 그리고 드라마의 작품성은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 또한 일맥상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서희의 연기력은 드라마에 대한 악평과 반비례한다는 것 또한 같은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장서희는 거의 같은 드라마의 같은 배역으로 나왔을때 관심권 밖에서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위치로 올라선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공교롭게 평가받을 부분일까. 그렇지 않다. 반대로 장서희는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서 주목받을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타입의 연기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장서희는 작은 체구에서 풍겨져나오는 여린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드센 캐릭터에 능숙하다. 그런데 문제는 드세고 강한 캐릭터에 체질화되어있는 관계로 평범하고 지고지순하며 조용조용한 캐릭터를 맡았을때는 눈에 띠지 못하고 반대로 연기력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글의 첫 단락에서 말했던 단거리 육상 선수와 마라톤 선수와의 비교가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배우지만 강한 캐릭터와 자신을 주요 인물로 내세울 수 있는 맞춤형 드라마에서 배우로서 더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와 반대로 약한 캐릭터로는 연기력과 스타성에서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또다른 작품이 그녀가 출연했던 주말극 회전목마와 사랑찬가다. 회전목마에서 그녀는 애인이던 김남진을 배신한다. 그런 김남진이 그녀를 납치해 겁탈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현실을 이겨내려는 강한 독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고지순한 수애와 비교되는 장서희의 독종연기 덕분에 회전목마는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두 달 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었던 사랑찬가는 달랐다. 그녀는 사랑찬사에서 아리영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착하고 지고지순한 평범하고 보편적인 신데렐라형 주인공 캐릭터를 맡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시청률과 평가 모두 좋지 않았으며, 그녀는 연기력까지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아야만했다. 결국 드라마의 종영과 동시에 그녀 또한 브라운관에 등장하지 못했다. 장서희는 이토록 롤러코스터를 탄것처럼 어떤 드라마를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극과 극의 평가를 오갔다. 이는 그만큼 그녀가 뛰어난 연기자지만, 뛰어난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가지고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장점은 단연 강한 캐릭터와 리딩력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카리스마이고, 단점은 자신의 도드라진 캐릭터 덕분에 드라마 이상의 파급력을 늘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장서희는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보면 대한민국 막장 드라마 구조가 만들어낸 스타이며 동시에 희생양이다. 드라마로 되돌아와 이야기를 지속시키면, 아내의 유혹은 정말 눈살이 찌뿌려지는 드라마다. 물론 대중이 드라마를 바라보고 소비하는 취향차이는 존중해야겠지만, 심청이가 인당수 빠진 스토리를 가져온듯한 내용부터 같은 인물이 설정상 다른 인물로 등장해 남편을 유혹한다는 초등학생이나 가능할만한 발생이 기초가 된 스토리까지 도대체 상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플롯으로 내용이 가득하다. 이런 드라마에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대중들이 전국민 35%라는 것은 그만큼 대중문화가 깊이 병들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만큼 드라마 시장에서 통속적인 것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길만하다. 왜 장서희의 카리스마는 이런 통속극에서만 사용되어야 하는가.

뜬금없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장서희와 김명민을 비교해보자. 김명민은 여러모로 장서희를 닮은 배우다.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내세운 드라마에서 매우 훌륭한 카리스마와 연기력을 선보인다. 하얀거탑의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온전히 김명민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장서희처럼 약하고 표면적인 캐릭터에서는 한없이 밋밋하고 반대로 연기력이 좋지 않았다는 평가에 시달려야만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드라마 불량가족과 영화 무방비도시였다. 두 작품은 평가도 그닥 좋지 않았고 김명민의 연기력 또한 수준이하라는 평가가 빗발쳤던 작품이었다. 그는 장서희처럼 다른 타입의 작품에서는 지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연기자지만 또다른 타입의 작품에서는 기본이 부족한 배우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만큼 김명민 또한 드센 캐릭터에 강점을 보이며 주위 캐릭터들까지 잠재울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명민과 장서희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바로 대한민국 드라마 산업의 틀과 구조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작품의 수준차이에서 비롯된다. 김명민과 장서희는 유사한 타입의 배우지만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와 하얀거탑이 있었다. 그만큼 드라마 시장에서 남자 배우로서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중심에 설 수 있을만한 작품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서희에게는 그런 드라마가 없었다. 그녀에게 원톱으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줄 것을 요구받았던 작품은 아줌마용 불륜용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먼 형태의 시청률만 높은 통속극 드라마 인어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두 배우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이다. 만약에 장서희가 남자 배우였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을까. 아주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흥미로운 상상이다. 아마도 장서희도 지금 가지고 있는 재능 아래에서 좀 더 스펙트럼 넓은 드라마를 선택하며 여배우로서 딜레마 없이 좀 더 폭넓은 선택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결국 이런 딜레마도 대한민국 드라마 시장이 병들었다는 증거다. 기본 시나리오조차 안된 아내의 유혹과 같은 드라마가 발붙일 수 있는 공간이 넓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가 잘되면 잘될수록 이와 같은 현상. 막장 불륜 패륜용 드라마는 계속 지속화되고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여배우는 마치 장서희가 그랬던 것처럼 아줌마들을 끌어모으는 통속극의 호객꾼으로 전락해 계속 다람쥐 챗바퀴통을 돌게 될 것이다. 장서희 입장에서 과연 아내의 유혹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기쁠까. 대한민국 드라마 시장에서 그녀가 대변하고 있는 여배우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구조적 병폐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반대로 아내의 유혹으로 인해, 장서희의 제 2의 전성기로 인해 이러한 딜레마는 더 심화되었을 뿐이다. 아내의 유혹은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가 만들어질 기회를 막고, 좋은 배우에게 훌륭한 연기를 펼칠 기회를 가로막는다. 그것이 통속극이 위험한 이유다. 이런 딜레마가 아내의 유혹을 곱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며, 또한 막장드라마를 곱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